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원내대책회의에 나경원 원내대표와 원내지도부가 참석하고 있다. / 뉴시스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원내대책회의에 나경원 원내대표와 원내지도부가 참석하고 있다. / 뉴시스

시사위크=은진 기자  자유한국당에서 국회가 정부의 행정입법에 제동을 걸 수 있도록 한 국회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청와대와 정부가 각종 시행령으로 국회의 입법 없이도 정책을 집행하는 이른바 ‘입법 패싱’ 상황을 견제하겠다는 취지다. 이 법안은 지난 19대 국회 때 여당(당시 새누리당) 원내대표였던 유승민 바른미래당 의원이 통과시켰다가 박근혜 정부 청와대와 극심한 갈등을 겪고 원내대표직을 사퇴한 계기가 됐었다. 현재 여야가 바뀐 상황에서 이 법안의 통과 여부에 이목이 쏠린다.

김현아 한국당 의원은 지난 18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국회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법안의 핵심은 현행 국회법 제98조의2 제3항을 고쳐서 국회 상임위가 시행령 등 정부의 행정입법에 문제점이 있다고 판단할 경우 수정·변경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또 수정·변경을 요구받은 행정기관은 요구사항을 처리하고 처리 결과를 국회에 보고하도록 명시했다. 현행법에서는 행정입법이 제정·개정·폐지될 때 10일 내에만 해당 내용을 국회 소관 상임위에 제출하면 된다.

이는 2015년 ‘배신의 정치’로 요약되는 유승민 의원의 ‘국회법 파동’을 연상시킨다. 당시 유 의원은 여당 원내대표로서 야당(당시 새정치민주연합)과 합의해 정부의 행정입법에 제동을 거는 국회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 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고 유 의원을 비롯한 여당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현직 대통령이 여당 원내대표를 겨냥해 “배신의 정치는 반드시 선거에서 국민께서 심판해 주셔야 할 것”이라고 한 발언은 정치권에서 한동안 회자되기도 했다. 이후 국회로 돌아온 국회법은 새누리당의 표결 거부로 19대 국회 임기 종료와 함께 자동 폐기됐다.

김현아 의원의 국회법 개정안은 ‘국회법 파동’ 당시 법안과 내용이 같다. 두 법안 모두 국회법 ‘제98조의2 제3항’을 개정해 국회의 견제 기능을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한국당의 전신인 새누리당이 폐기시켰던 법안을 다시 추진하고 있는 셈이다.

명분은 법무부의 검찰 공보준칙 개정 시도, 교육부의 유치원 3법 관련 시행령 개정 등 청와대와 정부의 ‘국회 패싱’이다. 한국당의 반대로 입법 논의가 진전되지 않고 있는 사안에 대해 정부여당이 행정입법으로 정책을 추진하는 것을 국회법 개정을 통해 원천적으로 견제한다는 것이다.

김 의원은 “피의자 조국 장관이 자신과 가족의 범죄 혐의를 숨기기 위해 피의사실 공표를 제한하는 공보준칙 개정에 나섰다”며 “문재인 정권이 국회를 제치고 행정입법으로 국회의 입법권을 무력화시키는 시도가 도를 넘었다”고 했다.

한국당은 이 법안을 이번 정기국회에서 중점 법안으로 추진하겠다는 방침이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24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행정부는 국회에서 논의해 만든 법의 테두리 안에서 입법 취지에 따라 법을 집행해야 하는데 문재인 정권은 시행령과 각종 행정규칙을 제멋대로 고쳐가며 의회를 ‘패싱’하고 있다”며 “문재인 정부가 행정권을 남용하고, 한마디로 입법부를 무력화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나 원내대표는 “한국당은 이번 정기국회에서 행정입법에 문제가 있을 경우 해당 기관장에게 시정을 요구하고, 처리결과를 보고하지 않을 경우 국회가 효력을 상실시키는 국회법 개정안을 반드시 통과시키도록 노력하겠다”며 “그것이 바로 입법부가 바로 서는 일이고, 그것이 바로 국민의 권리를 지키는 일”이라고 했다.

상황이 달라진 것은 한국당 뿐만이 아니다. 여야가 바뀌면서 집권여당이 된 더불어민주당도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19대 국회 때 민주당의 전신인 새정치민주연합은 같은 내용의 국회법 개정안을 수차례 발의했었다. 다만 정권 교체 후 ‘공수’가 바뀐 민주당은 이번 김현아 의원의 법안에 대해 “자세한 내용을 몰라서 아직 논의하지 않고 있다”는 입장만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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