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불거진 서울반도체 방사선 피폭사고가 거센 후폭풍을 낳고 있다. /서울반도체 홈페이지
지난 8월 불거진 서울반도체 방사선 피폭사고가 거센 후폭풍을 낳고 있다. /서울반도체 홈페이지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지난 8월 서울반도체에서 발생한 방사선 피폭 사고가 거센 후폭풍으로 이어지고 있다. 서울반도체 측은 방사선 노출 의심자 모두 정상 판정을 받았고, 설비 및 운영에 문제가 없었다며 각종 의혹과 지적을 부인한 반면, 피해자 및 노동시민사회단체에서는 사고 은폐 의혹을 제기하고 있고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조사대상을 퇴사자 등 2,500여명으로 확대한 상태다.

“방사선 피폭사고로 23살 제 아들이 아픕니다. 대학 등록금을 갚기 위해 사회에 첫 발을 내딛은 제 아들은 너무나도 어린 나이에 신체적 고통 뿐 아니라 앞으로 수십 년을 백혈병과 암에 걸리지 않을까하는 미래의 불확실성으로 스트레스, 우울증, 대인기피증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라온 서울반도체 방사선 피폭사고 피해자 이모 씨 아버지의 글 중 일부다. 청원글에 따르면 1996년생인 이씨는 모 대학 2학년 2학기 장기현장실습생으로 지난 7월 15일 서울반도체 하청업체에 입사했다. 이후 17일 동안 방사선 설비 안에 손을 넣어 작업을 하는 업무에 투입됐다. 이씨는 입사하자마자 방사선 취급 업무에 투입되고도 필수 안전교육을 받지 못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안전장치를 해제한 채 작업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렇게 5일 만에 이씨는 손가락 피부가 벗겨지고 극심한 통증을 느꼈지만 제대로 된 검사조차 받지 못한 채 작업에 투입됐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고통에 퇴사를 결심하고 나서야 전문병원에서 정밀검진을 받을 수 있게 된 그다.

이씨는 지난 8월 세간에 적잖은 충격을 안긴 서울반도체 방사선 피폭사고 핵심 피해자 2명 중 1명이다. 나머지 1명 역시 이씨와 마찬가지로 1993년생, 20대 중반의 젊은 나이에 같은 작업을 하다 같은 피해를 입었다.

이후 방사선 피폭사고 및 그 배경에 대한 각종 의혹이 제기된 가운데, 서울반도체는 지난 17일 공식입장을 발표했다. 우선 “현재까지 진행된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 조사 결과 방사선 노출 의심자 7명 모두 혈액검사가 정상으로 판정됐고, 추가 정밀검사 결과를 기다리던 2명의 염색체 이상 검사결과도 모두 정상으로 판정됐다”고 밝힌 서울반도체는 안전장치를 해제한 채 작업을 해 피폭사고가 발생한 배경에 대해 “협력사의 지도 소홀”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해당 장비의 위험성 및 물량 압박 등에 대한 의혹에 대해서도 조목조목 부인한 서울반도체 측은 “더 많은 이익을 내기 위해 임직원들의 안전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며 “비상경영의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생산기지를 국내에 유지하며 1,000여명의 젊은이들과 치열한 생존경쟁을 하고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방사선 피폭사고 피해를 입은 이씨의 손가락. /반올림
방사선 피폭사고 피해를 입은 이씨의 손가락. /반올림

하지만 이후에도 후폭풍은 점점 더 거세지는 모양새다. 피폭사고 피해자 측과 서울반도체 노조, 노동시민사회계 등은 서울반도체의 공식입장이 나온 직후 기자회견을 통해 은폐 의혹을 제기하는 한편 철저한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나섰다. 원청인 서울반도체가 사고를 올바로 수습하기보다는 축소 및 회피하기에 급급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서울반도체 노조 측은 “사측이 방사선 피폭으로 10년 뒤에 백혈병, 20년 뒤에 식도암 등의 직업성 암이 발병할 수 있다는 사실은 외면하고 있다”며 “사고 처리 및 대책을 논의하는 과정에서도 노동자들의 의견이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노동시민사회단체는 “서울반도체에서는 이전에도 최소 2명 이상의 혈액암이 발병했고, 과거에도 상당수의 노동자가 안전장치를 해제하고 작업했다”며 서울반도체 현장 실태 등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촉구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원안위의 행보 또한 주목을 끌고 있다. 서울반도체 공식입장의 근간이 된 원안위는 같은 조사 결과에 대해 상당한 온도 차이를 보인 바 있다. 원안위는 피폭자 7명 모두 혈액 및 염색체검사 결과 정상으로 확인되지만, 통증, 변색 등의 증상으로 보아 선량한도 이상으로 추정되며, 이에 대한 조사는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서울반도체가 혈액 및 염색체 검사 결과에 무게를 둔 반면, 원안위는 피폭자의 증상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피폭사고 피해자 측은 “서울반도체는 검사 결과가 정상 수치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방사선 사고로 인해 혈액검사에서 문제가 발견되는 것은 며칠 뒤 사망하는 아주 심각한 경우에만 해당된다”며 “홍반, 변색 등의 증상은 일반인 허용 선량의 약 5,000배까지 노출돼야 나타난다는 게 전문가 의견이고, 이 정도 방사선에 피폭되는 경우 10년 뒤 백혈병, 20년 뒤 식도암이나 피부암, 혈액암 등이 발생할 수 있다”고 호소한 바 있다.

또한 원안위는 지난 3년간 서울반도체 및 협력업체에서 문제의 장비를 사용한 경험이 있는 직원과 퇴사자에 대해 조사를 확대한 상태다. 조사 대상은 어느덧 250여명까지 늘어난 것으로 전해진다.

이 같은 유형의 산재사고는 인과관계 입증이 복잡할 뿐 아니라, 질환이 발현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는 점에서 갈등과 논란이 끊이지 않는 사안이다. 앞서 삼성 반도체공장 직업병 논란 역시 수년간에 걸쳐 극심한 진통을 겪은 바 있다. 서울반도체의 피폭사고 사태 역시 그 전철을 밟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는 이유다.

우려의 목소리는 이미 정치권까지 번졌다. 채이배 바른미래당 의원은 최근 최고위원회의에서 서울반도체 방사선 피폭사고를 언급하며 철저한 조사와 엄중한 처벌, 근본적 재발방지대책을 촉구했다. 정의당 강민진 청년대변인 역시 서울반도체 방사선 피폭사고와 관련해 원안위와 고용노동부의 대처가 미흡했다고 지적하며 엄중 처벌을 강조했다.

한편, 이에 대해 서울반도체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앞서 발표한 공식입장 외에 추가로 밝힐 입장이 없다”며 “우선은 원안위의 조사에 적극 협조하고, 조사 경과에 따라 입장을 발표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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