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0-18 21:38 (금)
[정숭호의 ‘늦은 수다’] 개XX들보다는 착한 말을
[정숭호의 ‘늦은 수다’] 개XX들보다는 착한 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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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9.30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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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숭호   ▲언론인 ▲전 한국신문윤리위원
정숭호  ▲언론인 ▲전 한국신문윤리위원

“이번 칼럼 제목 정했어요?”

“예. ‘개새끼들보다는 착한 말을’이라고 하려고요.”

“법무장관과 그 가족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을 보고 욕을 퍼부을 생각이었는데 마음을 바꿨다는 뜻?”

“맞아요. 원래는 그냥 ‘개새끼들’로 하려 했지요.”

“잘 바꿨어요. 아무리 속이 뒤집어져도 칼럼 제목이 욕이 되어서는 안 돼지요. 더군다나 점잖으신 언론인이신데.”

“내가 점잖다고요? 천만에! 설령 그렇다고 해도 그것 때문에 바꾼 게 아니에요. ‘개새끼들’이라는 소설도 있었고, ‘개새끼’라는 칼럼도 있었어요. 내가 그 제목으로 글 못 쓸 건 없지요.”

“그래요? 자기 글에 그렇게 막가자는 제목을 단 사람들이 있었어요?”

“그럼요. 소설 ‘개새끼’들은 2009년에 75세로 별세한 소설가 정을병 씨가 34세 때 썼어요. 그게 1966년인데, 정씨는 더 젊었을 때 국토건설단이라는 데에 끌려가서 무지하게 고생했나 봐요. 국토건설단은 5.16 직후인 1961년에 군사정부가 만든 건데, 군기피자들을 집어넣어 도로공사에 투입했지요. 군대를 면제해주는 조건으로. 근데, 배고프고 추운 건 당연하고 온갖 욕설에 무자비한 폭력이 끊이지 않았던 모양이에요. 착취에 갈취도 극심했고. 때리는 사람들은 맞는 사람들에게 ‘개새끼들!’이라며 매질을 했고, 맞은 사람들은 피 터지도록 맞아 신음하면서 때리는 사람들에게 ‘개새끼들!’이라고 속으로 욕했다는 거지요. 그게 제목이 된 거예요. 정씨는 몇 년 후 문인간첩단 사건에 연루돼 옥살이를 심하게 했는데 이 소설 때문일 겁니다.”

“5공 때 삼청교육대 같았나 보네. ‘개새끼’라는 칼럼은 어떤 내용인데요?”

“2012년에 실린 신문 칼럼인데, 한 야당 국회의원이 그때 대통령인 MB에게 ‘개새끼’라고 한 걸 두고 ‘언어폭력이 이념과 진영을 증명하는 인증욕이 되어서야 되겠냐’고 꾸짖었어요. 결론이 재미있어요. ‘개 주둥이에서 상아가 나올 리 없지만(중국 속담) 이런 욕이 들릴 때마다 욕한 사람을 모두 함께 혼내야 한다’고 했지요.”

“입에 ‘개새끼’라는 욕을 담지 말라는 거잖아요. 그런데 왜 ‘개새끼들’이라는 제목으로 이번 칼럼을 쓰려고 했어요?”

“여러 날 됐어요. 법무부 장관과 그 가족에 대한 수사를 보도하는 TV나 신문, 페이스북 따위를 볼 때마다 뱃속 저 아래에서 욕이 치밀어 올랐어요. 어떤 날은 혼잣말로 그 욕을 수십 번 하고 있더라니까요. 나 같은 사람들이 참 많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내가 글로써 대신 욕을 해주려고 한 거지요.”

“개새끼는 남자들에게만 하는 욕이잖아요? 여자들에게는 뭐라고 할 건데요?”

“여자들도 남자들을 ‘개새끼’라고 부르기는 하지요. MB에게 그 욕을 한 국회의원도 여자였어요. 개새끼에 상응하는 여성용 욕이 없지는 않지요. 하지만 그것까지 쓰면 내가 너무 나가는 게 될 걸요.”

“맞아요. 그런데, 제목을 ‘개새끼들’에서 ‘개새끼들보다는 착한 말’로 바꾼 이유는 뭔가요?”

“어제 칼럼을 준비하다가 ‘인생에는 늘 바람이 분다’라는 글을 읽게 됐어요. ‘얼굴에 마주치는 바람이 인간을 지혜롭게 한다’로 시작되는 글인데, 중간에 이런 게 있었어요. ‘어릴 적 강원 산골의 겨울은 뼛속까지 시리게 추웠습니다. 방 안에 있어도 외풍이 어찌나 셌던지 자리끼가 꽁꽁 얼어붙을 정도였지요. 아침이면 찬 공기가 몹시도 싫어 이불 속에서 버티다 엄마한테 엉덩이를 한 대 맞고서야 마당에 나가 세수를 했습니다. 부리나케 고양이 세수만 하고 방 문고리를 잡으면 손이 쩍 하고 달라붙었지요. 그러면 오빠 언니 동생이 다 같이 입을 모아 언 손에 하~~ 하고 입김을 불어줬어요. 돌아가면서 네 번(2남3녀)을 하고 나면 방 한가운데 아침밥상이 차려졌답니다. 그날의 그 바람이 몹시 그리워 두 손을 오므리고 하~ 하고 불어봅니다. 어찌나 따뜻한지 눈물이 주루룩 흐릅니다.’ 이거 보고 내 글 제목을 바꿔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알겠어요. 개새끼라고 욕하면 그 순간에는 시원할지 모르겠지만 그게 또 다른 욕을 낳게 되고, 그러면 서로 감정은 더 쌓이고 분열의 골 또한 깊어진다, 그런 거지요?”

“맞아요. 지금은 서로서로 욕을 퍼부을 때가 아니라, 강원도 산골 추운 집에서 겨울을 나는 5남매가 서로 언 손 불어주듯 따뜻함으로 서로가 서로를 북돋워줄 때가 아닌가 생각했어요.”

“좋은 생각인데요, 누가 그런 착한 마음을 악용하려들면 어떡하지요? 악한 자는 항상 약한 자를 이용해 먹잖아요?”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그래도 오늘 이 글 제목은 ‘개새끼보다는 착한 말을’이라고 하겠어요. 욕을 너무 많이 했어요. 그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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