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재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박영재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성찰배경: 오늘날 이웃종교 간의 교류가 점점 활발해져 가고 있습니다. 특히 지난해에는 열린 개신교인으로 널리 알려진 서강대 길희성 명예교수께서 <종교에서 영성으로>(북스코프)를 출간하셨습니다. 여기에서 그는 “영성을 자각하고 실현하는 일이야말로 종교의 근본목적이기에 종교를 평가하는 기준이 한 가지 있다면 나는 이제 주저 없이 한 종교가 얼마나 많은 영적 인간들을 만들어내는가에 있다고 말할 것이다.”라고 단언하셨습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최근 필자는 감리교 차흥도 목사께서 주관하시는 영성세미나에서 ‘화두(話頭)로 일상(日常)을’이란 제목의 강연을 했습니다.

한편 필자는 지난 2년 동안 시의적절한 주제와 연관 지으며 칼럼 ‘향상일로’를 통해 나름대로 종교와 관계없이 누구나 쉽게 자기성찰의 길로 들어설 수 있도록 도움되는 글들을 기고해 왔습니다. 그런데 최근 이 강연에 대한 이웃종교인들의 호의적인 반응에 이제 때가 되었다고 판단되어 이번 글에서는 언행일치(言行一致)의 영성적 삶을 살아가게 하는데 매우 효과적인 ‘화두’에 초점을 맞추어 필자의 일상을 소개드리고자 합니다.

◇ 화두 보기: 삼세심불가득화(三世心不可得話)

우리들 대부분은 철이 들 무렵 머리로는 동서양의 영적 스승들의 삶을 잘 이해하고 과거를 냉철하게 돌아보며 잘못된 점을 뼈 속 깊이 반성하고 다시는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서원을 하고, 미래를 전망하며 일생을 바칠 만한 가치가 있는 꿈과 목표를 세우고 이의 실현을 위해 현재에 충실해야겠다고 결심을 합니다. 그러나 이해의 차원과 실천의 차원, 즉 있는 그 자리에서 온몸을 던져, 함께 더불어 지금 이 순간 하고자 하는 일에 몰입하는 것과는 전혀 별개입니다. 그래서 이원적 분별에 의한 논리적 판단에 익숙해 있는 분들을 입문 초기부터 철저히 분별을 내려놓게 하면서, 과거와 현재 및 미래를 온몸으로 체득하게 하여 다시는 후퇴하지 않는 삶을 살게 하는데 매우 효과적인 ‘화두’를 보기로 들면 다음과 같습니다.

당시 <금강경(金剛經)> 왕이라고 칭송받던 덕산(德山, 782-865) 스님이 자기가 쓴 해설서를 등에 짊어지고 천하를 돌며 자기의 실력을 뽐내고 다니다 하루는 낮이 되자 허기를 느끼고는 둘러보니 마침 떡집이 있어 요기를 하기 위해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떡집 할머니가 떡 팔 생각은 안하고 등에 지고 있는 것이 무어냐고 묻자 금강경에 관한 최고의 해설서라고 자랑을 했습니다. 그러자 할머니께서 “그 경 가운데 ‘과거심도, 현재심도, 미래심도 얻을 수 없다’라는 구절이 있는데 스님께서는 어느 마음에 떡을 먹겠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말문이 막힌 덕산 스님은 일개 시골 할머니의 수준이 이 정도라면 틀림없이 주위에 훌륭한 스님이 계실 것이라는 확신에 배고픈 것도 잊고, 계신 곳을 물어 쏜살같이 달려갔습니다. 마침내 용담(龍潭) 선사를 만나 크게 깨치고는 학승(學僧)이 아니라 격렬한 몽둥이찜질로 제자들을 일깨우는 선승(禪僧)으로서 대활약하였다고 합니다.

자! ‘여러분은 어느 심(心)에 떡을 먹겠습니까?’ 과거심은 지나가 버렸고 미래심은 오지도 않았으며 현재심은 잡으려 하면 이미 지나가 버리곤 합니다. 한동안 간절히 이 화두를 참구해 보십시오. 치열하게 참구하노라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누구나 스스로 자명해지는 때가 반드시 올 것입니다. 참고로 화두 타파는 상속을 위한 과정이기에 스승으로부터 타파했다고 인정을 받았다 하더라도 통찰과 나눔이 둘이 아닌 ‘통보불이(洞布不二)’의 삶이 일상 속에서 상속되지 않는다면 필경 그 인정은 무용지물이겠지요! 덧붙여 화두에 관심이 있으신 그리스도교인들께 가도와키 신부의 <선禪과 성서>(분도출판사)를 적극 추천드립니다.

◇ 화두로 아침을 여는 나의 일상

사실 필자가 10여 년 간 선 수행을 이어갈 무렵 온몸으로 체득한 것은 바로 날마다 일상 속에서 ‘상속(相續)’, 즉 ‘있는 그 자리에서 함께 더불어 매순간 하고자 하는 일과 하나되기’였습니다. 그런데 선가(禪家)에 몸담아온 지난 사십오 년을 돌이켜 보니 날마다 염송했던 일련의 기도문들 역시 화두 참구 못지않게 상속에 크게 기여하였다고 사려됩니다. 그래서 이제 기도 및 화두 참구로 아침을 여는 필자의 일상에 대한 구체적인 소개를 통해 이를 드러내고자 합니다.

집을 나서기 전까지: 새벽 6시 무렵 눈을 뜨자마자 다리를 틀고 앉아 하루를 여는 첫 기도문으로 누구나 날마다 실천 가능한 ‘신사홍서원(新四弘誓願)’을 염송하고 있는데 그 전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날마다 한가지 선행(善行)을 행하오리다./ 날마다 한가지 집착을 버리오리다./ 날마다 한구절 법문(法門)을 익히오리다./ 날마다 한차례 화두를 살피오리다.” 필자의 견해로는 부정부패가 만연해 있는 오늘날, 이 서원을 날마다 행하다 보면 ‘삼독(三毒)’, 즉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의 중독에서 저절로 벗어나게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한편 그리스도교인의 경우 보기를 들면 일상 속에서 똑같이 ‘상속’의 효과를 맛보실 수 있는 아시시의 프란체스코 성인(聖人)께서 지으신 ‘평화의 기도’로 바꾸어 염송(念誦)해도 좋겠습니다.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를 써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생략 /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주소서.”

이어서 이른 아침 약 1시간 정도 좌선(坐禪)을 할 때 처음 몇 분간은 수식관(數息觀)으로 머리를 맑게 한 다음, 머릿속을 맴도는 온갖 ‘집착’까지도 동시에 날려버리는 ‘화두 살피기’를 실천합니다. 그리고 좌선을 끝낼 무렵 오늘 해야 할 시급한 일을 새기며 ‘하루 일과에 온몸을 던져 뛰어들기’를 위한 준비를 마칩니다. 그런 다음 아침 식탁에 대개 빵 한쪽과 건과류 및 우유을 차려놓고 식사오관(食事五觀) 기도문을 염송한 후 식사를 합니다. “이 음식은 어디에서 왔는고!/ 내 닦은 바로는 받기가 부끄럽네./ 마음에 일어나는 온갖 집착을 떨치고/ 이 몸을 지탱하는 좋은 약으로 알아/ 모두 함께 참나를 찾기 위해 이 음식을 받노라!” 사실 아무리 바쁘더라도 자기 자신을 성찰하며 ‘사은(四恩)’, 즉 부모와 이웃과 나라와 스승에 대한 네 가지 고마움을 일상생활 속에서 온몸으로 새길 수 있는 기회가 적어도 하루에 세 번 있는데, 바로 식사를 할 때입니다.

출근 도중에: 집 근처 전철역으로 가는 길이나 학교에 도착해 연구실이 있는 과학관 입구 근처에는 필자의 ‘선행 실천’을 돕는 쓰레기들이 자주 기다리고 있는데, 눈에 띄는 즉시 집어서 쓰레기통에 넣습니다. 한편 깨어 있기만 하면 지하철을 이용하는 과정에서 ‘법문 익히기’ 역시, 승차 전 지하철 게시물 새기기나 승차 후 자리에 앉아서 틈틈이 하는 독서 등을 통해 손쉽게 실천할 수 있습니다.

근무 시간 동안에: 연구실에 도착해 오전에는 주로 물리학 전공 강의 준비나 복잡한 수식이 담긴 최근 연구논문들을 세밀히 살피는 일들을 합니다. 그런 다음 점심때는 대개 동료 연구원들과 점심식사를 하게 되는데 여러 사람이 함께 밥 먹기 때문에 동료들이 불편해 하지 않도록 음식을 담은 식판을 들고 식탁으로 가는 도중에 마음속으로 ‘식사오관’ 염송을 마치고 앉자마자 바로 식사를 합니다. 그리고 식사를 마친 다음에는 가볍게 학교 근처를 산책한 다음 연구실에서 차 한 잔을 마시며 법문자료를 포함해 그동안 두루 성찰한 글들을 정리해 선도회 홈페이지에 올리거나 칼럼에 기고합니다.

사진은 지난달 30일,  감리교 차흥도 목사가 주관하는 영성세미나에서 ‘화두(話頭)로 일상(日常)을’이란 제목의 강연을 진행 중인 박영재 교수의 모습 / 박영재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제공
사진은 지난달 30일, 감리교 차흥도 목사가 주관하는 영성세미나에서 ‘화두(話頭)로 일상(日常)을’이란 제목의 강연을 진행 중인 필자의 모습 / 박영재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제공

한편 강의가 없는 날 오후에는 현재 진행 중인 연구논문에 집중하거나 틈틈이 그동안 쌓인 성찰 자료들을 출간하기 위한 편집 작업도 병행하는데, 이 또한 성찰의 연속입니다. 참고로 가장 최근 출간한 책은 <날마다 온몸으로 성찰하기>(비움과 소통, 2015년)로, 여기에는 필자의 교양강의들을 수강한 학생들이 성찰과제로 제출했던, 또래의 젊은이들이 크게 공감하는 진솔한 성찰체험들이 담겨있습니다. 요즈음은 가칭 <온몸으로 돕는 지구촌이웃들>을 편집 중에 있습니다. 그런 다음 저는 하루를 일찍 시작하기 때문에 오후 5시 무렵 퇴근을 하기 위해 연구실을 나섭니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귀가까지는 버스와 전철로 약 1시간이 걸리는데 이때 대개 낮의 피로를 풀 겸 눈을 감고 호흡을 가다듬으며 ‘수식관’에 몰두하거나 필자가 주관하는 참선모임에서 다룰 법문 구상을 하기도 합니다. 집에 도착해 아내가 차려주는 저녁상 앞에서 역시 ‘식사오관’을 염송하며 오늘 하루 밥값은 했는지 반성하고 식사를 합니다. 그런 다음 저녁 식사 후에는 편안하게 지구촌 소식이 담긴 뉴스나 TV 교양 프로를 시청하거나 또는 유튜브 동영상 가운데 성찰에 관한 자료들을 다리를 틀고 앉아 새기기도 합니다. 그리고 때에 따라서는 퇴근길에 집 근처에 사는 딸네 집에 들려 가끔 손주들과 잠시 놀아주기도 합니다.

잠자리에 들기 전: 마지막으로 하루를 마무리할 무렵 다리를 틀고 앉아 몇 분간 수식관을 수행하며 정신을 가다듬은 다음, 이른 아침 하루를 열면서 계획했던 일들을 제대로 실행했는지, 그리고 누구와 다투지는 않았는지 등을 잠시 되돌아보고 1시간 정도 화두[성찰주제]를 참구한 다음, 하루를 회향하는 마지막 기도문인 ‘참나 찾기’를 염송하고 잠자리에 듭니다. “사람마다 나름대로 나란 멋에 살건마는/ 이 몸은 언젠가는 한줌 재가 아니리./ 묻노니 주인공아 어느 것이 참나이련고?”

◇ 마무리하는 글

의사 집안의 2대독자로 태어나 형편없는 마마보이로 성장했던 필자는 대학 입학 후 1년 간 방황하다가 20세인 1975년 종로서적에서 법정 스님께서 번역하신 <숫타니파타>를 접하며 인간 석가에 매료되었습니다. 직후 종달 선사 문하로 입문하며 선 수행자의 길을 걷게 됩니다. 그후 입문하고 5년쯤 지난 어느 날 자신을 돌아다보다가 가슴에 1달 맺혀있을 일들이 1주일이면 사라지고 1주일 맺혀있을 일들은 하루면 사라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즉 일상 속에서 상속의 흐름을 방해하던 일들이 빠르게 사라지는 것을 체험한 것입니다. 그러다 <무문관> 점검을 이어가며, 또 5년의 세월이 더 흐르던 어느 날 문득 상속의 흐름을 방해하는, 가슴에 맺혀있는 일이 더 이상 없음을 명료하게 알아차렸습니다. 그리고는 마침내 1987년 스승께서 설정한 간화선 점검과정을 모두 마칠 무렵 선도회 법사직과 본업인 교수직이 둘이 아니라는 것을 온몸으로 체득하면서 하루 24시간이 선정(禪定) 속 생수불이(生修不二), 즉 생업과 수행이 둘이 아닌 삶이라는 것을 철저히 자각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늘 있는 그 자리에서 필자가 속한 공동체(가정, 직장, 선도회 등)의 구성원들과 ‘함께 더불어’ 주어진 일(교육과 연구, 선도회 활동 및 가장으로서 할 일)에 거의 100% 전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1990년 종달 선사 입적 이후 선도회의 제2대 지도법사직을 수행하면서 문하생들을 꾸준히 지도해온 결과 간화선 수행을 지도할 수 있는 필자와 똑같은 자격을 갖춘 법사도 14명 배출해오며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참고로 학문적으로는 지금까지 14명의 박사를 배출했으며 국제학술지에 175편의 논문을 게재해 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어느덧 필자도 만 64세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남은 여생 동안 특히 역점을 두고 있는 것은 21세기 다종교 다문화 시대에 걸맞게 종교를 초월해 종달 선사께서 일생을 통해 온몸으로 드러내 보이셨던 ‘통보불이’ 가풍을 더욱 널리 선양하는 것입니다.

한편 지금까지 일상의 삶 속에서 지속해온 필자의 학문적 및 선적(禪的) 체험을 언급했는데 이런 여정이 비록 선도회와 인연 있는 분들 대부분에게는 매우 효과적이었다고 여겨지나 결코 모두에게 최상의 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실 대도에는 따로 문이 없어서 천 갈래 만 갈래 그 어느 길로도 이를 수 있다는 ‘대도무문(大道無門) 천차유로(千差有路)’란 선어(禪語)처럼, 비단 참선뿐만 아니라 종교를 초월해 바른 자기성찰의 길은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그러니 부디 모든 분들이 각자 나름대로 자신과 코드가 맞는 최선의 선택을 통해, 또한 열린 마음으로 이웃종교의 장점들을 적극 수용하면서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멋진 인생관을 확립하는데, 이 글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끝으로 온 나라가 지금 두 쪽으로 나뉘며 매우 혼란스러운 이때, 우리 모두 일상 속에서 지속적인 ‘내면성찰[화두참구]’을 통해 다름을 이해할 수 있는 안목을 넓혀가는 동시에, 각자 있는 그 자리에서 가장 잘 할 수 있는 제 할 일에 사심(私心)없이 온몸을 던져 몰입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염원(念願)해 봅니다.

◇ 부록: 천주교인의 화두 참구 체험기

부록으로 신학에 조예가 깊은 교육학 전공 학자로서 최근 간화선 입문과정을 마친 희천(希天) 거사께서 쓴 소감문 ‘덜어내기 연습’의 핵심 내용을 소개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태어나자마자 성당에서 유아세례를 받고 지금까지 천주교 신자로 살아왔다. 때로는 교회에서 가르치는 내용과 성경에 기록된 내용에 대해 강한 의문을 품기도 했으나 그래도 전체적으로 보면 교회 안에서 교회의 영양분을 받아먹으며 성장했다. 그 세월이 무려 사십여 년이 되자 뭔가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어온 것 같은 느낌이 밀려왔다. 그러다 선도회에 입문해 시작된 선수행 입문과정에서 먼저 발견한 것은 내 머리 속에 온갖 쓰레기가 가득하다는 점이었다. 알고 보니 지나간 세월을 통해 내 안에 누적된 내용은 다름 아닌 약간의 지식과 알 수 없는 편견들뿐이었다. 그동안 스스로 통찰의 깊이가 깊어지지 못했던 것은 그 어떤 지식이나 정보의 부족이 아니라 나 스스로를 돌아보고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는 작업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가만히 앉아서 호흡에 집중하는 ‘수식관’ 과정만으로도 내 안의 불필요한 아집과 걱정 등을 덜어내는 데 도움이 되었다. 한편 화두참구 과정에서 자주 지적받은 내용은 ‘머리로 풀어내려 하지 마라!’였다. 지식을 덜어내고 나니 성경이 조금씩 다시 읽히기 시작했다. 아니 내가 성경을 읽는다기보다는 성경이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듯한 느낌이다. 그리고 성경을 놓고 벌였던 수많은 토론의 시간을 떠올리면서 나와 이웃의 삶과 연계된, 새로운 성경읽기가 필요함을 발견하게 되었다. 바로 경전이 기록되기 이전의 우리네 삶에 대한 새로운 통찰과 발견이었다.”
 

박영재 교수는 서강대에서 학사, 석사, 박사(전공분야: 입자이론물리학) 학위를 받았다. 1983년 3월부터 강원대 물리학과 교수를 역임했으며, 1989년 9월부터 서강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서강대 물리학과장, 교무처장, 자연과학부 학장을 역임했다.

한편 1975년 10월 임제종 양기파의 법맥을 이은 선도회 초대 지도법사이셨던 종달 선사 문하로 입문한 박 교수는 1987년 9월 스승이 제시한 간화선 입실점검 과정을 모두 마쳤다. 1990년 6월 종달 선사 입적 이후 지금까지 선도회(2009년 사단법인 선도성찰나눔실천회로 새롭게 발족) 지도법사를 맡고 있다. 한편 1991년 8월과 1997년 1월 화계사에서 숭산 선사께 두 차례 입실 점검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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