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도겸 칼럼니스트
하도겸 칼럼니스트

미국 텍사스의 한마을에서 ‘댄스가 가능한 술집’의 여주인인 애비(프랜시스 맥도먼드)가 남편 줄리안 마티(댄 헤다야)의 종업원 레이(존 게츠)와 불륜을 저지른다. 사립탐정 로렌 비저(에밋 월시)가 제시한 사진을 본 마티는 의외로 담담한 모습을 유지한다. 그러나 불륜을 저지른 레이의 태도와 레이의 집에서 에비를 끌고 나오다 손가락까지 다치게 되면서, 마틴은 화를 못 이기고 로렌에게 살인을 청부하면서 일이 커진다. 모리스(샘 아트 윌리엄스)를 포함하여 5명 주연이 주고받는 왜곡과 거짓말은 오해와 무지를 강요하고 결국 피를 부르게 된다. 영화관이 아닌 집이었으면 한바탕 웃어버릴 수도 있었던 사소한 오해가 얽히고설키면서 관객들이 예측할 수 없는 지경에 까지 줄거리를 몰고 가는 것이 흥미롭다.

보고 난 뒤에도 기억에 몇 명 남지 않을 정도로 단출한 인물로 구성된 영화. 그런 영화이기에 가능했던 ‘죽은 시간(극적으로 유용하지 못한 시간을 그대로 화면에 살려내는 것)’의 시의적절한 활용이 돋보인다. 엔딩장면에 나오는 화장실 세면대 아래 배판에 흘러내리는 물방울 같은 서스펜스와 스릴은 관객으로 하여금 영화가 끝난 다음에도 뭔가 고문당하고 나온듯한 찜찜한 느낌이 들게 한다. 영화가 만들어진 1984년으로부터 35년이 지난 오늘날도 사람 사는 곳은 그리 많이 변하지 않았다는 생각을 들게 할 정도다. 지금도 인간의 불안정함과 불만은 흐르는 유혈처럼 낭자하다.

‘거장’ 코언 형제의 장편 데뷔작인 영화 ‘블러드심플’.  17일 개봉을 확정하며 국내 영화 팬들을 찾아온다. / ‘플러드심플’ 포스터
‘거장’ 코언 형제의 장편 데뷔작인 영화 ‘블러드 심플’. 17일 개봉을 확정하며 국내 영화 팬들을 찾아온다. / ‘플러드심플’ 포스터

‘거장’ 코언 형제의 장편 데뷔작인 이 영화 ‘블러드 심플’은 영화 ‘맨 인 블랙’의 베리 소넨펠드감독이 촬영했다. 감독, 배우, 촬영, 음악 등 허리우드가 인정하는 거장들의 마스터피스라 할 수 있는 이 영화를 찍기 위해 코엔형제는 150만 달러의 제작비를 1년 동안 모아 8주 만에 촬영을 마쳤다. 이들의 저예산 독립영화는 제작비 두 배 이상의 흥행과 제1회 선댄스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받으면서 미국 독립영화의 새로운 기수라는 평가를 얻어냈다. 이후 1998년에는 디렉터스컷으로 재편집되었으며, 2016년에는 극장에서 상영 가능한 4K-UHD로 복원되었다. 올해 2019년 제23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초청작품(3회상영 모두매진)이 된 인연으로 오는 10월 17일 국내 최초로 극장(CGV아트하우스 단독개봉) 개봉을 앞두고 있다.

아카데미 2회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애비역의 프란시스맥도맨드의 데뷔작품이기도 한 이 영화의 모두에서 감독은 애비가 마티에게 선물로 받았다는 리볼버 한 자루를 노출시킨다. 이후 가방 속 상자에서 나온 총알 3개가 어떻게 영화 속에서 커다란 역할을 하면서 쓰이는지를 보면 시놉시스의 밀도가 혀를 내두르게 한다. 마티를 죽이고, 마티를 쏜 로렌을 죽이게 되는 이 총이 애인인 레이에게는 러시아 룰렛처럼 비껴가며 총알 없는 빈 총성만 들려준다.

“세상은 불만 가진 자로 가득해. 확신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교황이 잘못하면 미 대통령도 그 어느 것도 잘못될 수 있어. 난 불만을 가진 채로 살 거야. 이웃들에게 도움을 청하지만 모두 헛일이야. 러시아 체제는 모두들 서로에게 협력하도록 되어 있어. 그것 이론일 뿐이고, 내가 아는 건 텍사스야. 여기선 너는 너야.”

이처럼 권총은 가게 뒷뜰에 훨헐 타던 소각장, 범행 현장에 남겨진 라이터와 함께 코엔형제가 인간의 내면심리를 흔드는 주요 도구로, ‘블러드 심플’에서 꼭 빠뜨리지 않고 지켜봐야 할 세 가지가 아닌가 싶다. 35년전의 영화라곤 믿을 수 없을 만큼 박진감 있는 사운드는 몇 번이나 관객의 가슴을 쓸어내리게 한다. 세계에서 영화를 가장 사랑하는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건 조지오웰의 1984년이 아닌, 오는 17일 여러분이 만날 수 있는 이 영화일 것이다.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