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정계성 기자  금융공기업에서 노무 일을 맡고 있는 대학동기가 며칠 전 단체 카톡방에 “시대를 잘 타고 났어야 했다”고 한탄을 했다. 이유를 들어보니, 586세대가 임금피크 노조를 하나둘 만들더니 임금피크제 폐지와 정년 연장까지 노리고 있단다. “고도성장기 호시절 다 누리고 적당히 드셨으면 후배하고 신입들에게 양보해줘야지 계속 먹으려고 한다”는 게 요지다. 

그런데 같은 방에 있던 동기들 중 상당수가 동의하는 모습이 의외였다. 이중 한 동기는 과거 자신이 겪었던 사례를 말하기도 했다. “나이 지긋한 선배가 달력을 가위로 자르다가 잠시 자리를 비우셨다. 그래서 도와드릴 요량으로 빨리 작업을 마쳤는데, 돌아온 것은 칭찬이 아닌 역정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런 소일거리나 대충 하다가 퇴근하는 사람이라더라. 억대 연봉 받으면서 그렇게 희희낙락하게 일하는 걸 보면, 화가 치솟는다. 이 회사에 들어오기 위해 고생하는 취업준비생들의 마음을 저 사람은 알까.”

그렇다고 2000년대 초반 학번인 우리 세대가 586세대에 마냥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선망의 대상에 가깝다. 80년 ‘서울의봄’부터 87년 ‘6월항쟁’의 주역이라며 귀가 따갑게 선배들의 영웅담을 들었고, 나아가 노무현 정권의 탄생으로 신진 정치세력으로서 역사의 전면에 등장했기 때문이다. 불과 30대의 젊은 나이에 고위직에 올라 국가운영을 했으니 우러러보였던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중에는 잘 알고 지냈던 선배도 있었다.

하물며 586에 호의적인 30~40대의 분위기도 이럴진대 20대 청년들의 시선은 오죽할까. 임금피크제와 정년의 문제를 정부 탓으로 돌린다한들 청년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을까. 기득권 지키기, 이기주의, 꼰대로 비쳐지진 않을까. 또 다른 동기는 “586들은 임금피크제 실시로 선배직급들을 빼내 조기승진으로 활용했다. 이제 정작 본인들이 빠져줄 타이밍에 임피 폐지로 기득권을 유지하려하니 좋은 말이 나오겠냐”고 직장후배들의 시선을 전했다.

586세대가 기득권이라고 가정하면, ‘미투’ 이슈가 안희정 전 지사 등 유독 민주당 인사들 사이에서 발생했는지도 어느 정도 설명이 된다. 페미니즘은 기본적으로 기득권에 대한 저항의 한 갈래이기 때문이다. 당시 기자들 사이 격론이 있었는데 “페미니즘을 기득권에 대한 저항이라고 본다면, 문재인 정부 집권으로 민주당과 586세대가 이제는 우리 사회의 기득권이 됐다는 방증”이라는 분석이 꽤나 설득력 있었다. 

미투와 페미니즘을 반대하는 20대 남성들의 불만도 586 이상 기성세대를 향하고 있다. ‘남성우월주의의 이익은 자신들이 누리고 그 대가는 20대가 치르게 한다’는 것이다. 주장의 타당성과는 별개로, 비판의 대상이 현 50대 이상 기득권임은 분명한 사실이다. 여기에는 현 집권세력인 민주당과 586도 자유로울 수 없다.

하지만 아쉽게도 민주당은 아직 민심저변의 변화를 잘 읽어내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얼마 전 사석에서 만난 민주당 유력 정치인은 “왜 20~30대 젊은 층이 진보적이지 못하고 보수화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진보가 아니면 보수라는 이분법적 논리도 문제였지만, 자신들만이 개혁의 주체이며 개혁의 대상은 따로 있다는 인식이 더 큰 문제로 다가왔다. 조국 전 장관은 ‘검찰개혁’을 말했지만, 정작 다수 국민의 눈에는 조국 전 장관이 개혁의 대상으로 비춰졌음을 인식하지 못한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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