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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씨네
[인터뷰] 연기로 버틴 천우희, 배우가 체질
2019. 10. 16 by 이영실 기자 swyeong1204@sisaweek.com
배우 천우희가 영화 ‘버티고’(감독 전계수)로 관객과 만난다. /나무엑터스
배우 천우희가 영화 ‘버티고’(감독 전계수)로 관객과 만난다. /나무엑터스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아무리 어렵고 센 캐릭터를 맡아도 재밌기만 하던 연기였는데, 어느 순간부터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잘 한다 칭찬을 들어도 부족한 것만 눈에 들어왔다. 그래서 처음으로 휴식을 택했다. 잠깐의 숨 고르기 후 돌아온 현장은 다시 심장을 뛰게 만들었다. 작은 것 하나하나 소중했고, 감사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현장에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걸. 천우희는 배우가 ‘체질’이다.

천우희가 종합편성채널 JTBC 드라마 ‘멜로가 체질’ 종영 이후 곧바로 스크린으로 돌아왔다. 영화 ‘버티고’(감독 전계수)를 통해서다. 현기증 나는 일상, 고층빌딩 사무실에서 위태롭게 버티던 서영(천우희 분)이 창밖의 로프공과 마주하게 되는 감성 무비다. 극 중 천우희는 IT업체 계약직 디자이너 서영으로 분해 극을 이끈다. 갑갑한 현실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는 서영을 섬세하게 표현해 호평을 얻고 있다.

올해 천우희는 그야말로 종횡무진이다. 지난 3월 개봉한 영화 ‘우상’을 시작으로 애니메이션 ‘마왕의 딸 이리샤’ 더빙, 영화 ‘메기’ 내레이션, 드라마 ‘멜로가 체질’까지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넘나들며 ‘열일’ 행보를 이어오고 있다.

‘버티고’는 천우희가 다시 달릴 수 있게 만들어 준 소중한 작품이다. ‘우상’ 촬영 후 슬럼프를 겪던 천우희에게 ‘버티고’ 속 관우(정재광 분)의 대사(“괜찮아요, 당신은 떨어지지 않아요”)는 따뜻한 위로가 됐고, 마음을 흔들었다. 그렇게 천우희는 다시 스크린으로 돌아왔다.

천우희가 ‘버티고’를 통해 위로를 받았다고 털어놨다. /나무엑터스
천우희가 ‘버티고’를 통해 위로를 받았다고 털어놨다. /나무엑터스

개봉을 앞두고 <시사위크>와 만난 천우희는 “‘버티고’를 통해 위로를 받았다”며 미소 지었다.

-한 여자의 삶에 대해 차분한 시선으로 응시하는 영화다. 최근 한국영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시도였던 것 같다. 
“맞다. 영화 전체적으로 서영의 감정선을 이어가야 했다. 그래서 서영을 연기하는 배우에 게 기대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처음에는 부담 아닌 부담도 느꼈다. 오랜만에 다시 연기를 하는데, 그때 당시 자신이 없었기도 했고 스스로 의심을 하던 시기였다. 현장에 가서 연기하고 집에 돌아와서 다시 복기하고 곱씹었다. 나 자신을 계속 돌아보면서 이 작품을 만들어나갔다.”

-‘버티고’의 어떤 점이 좋아서 택했나.
“이 작품을 하기 전 1년 동안 쉬었다. 그전에는 쉼 없이 계속 일을 했다. 연기 자체가 너무 좋았기 때문에 힘든 순간에도 견뎌내고 넘어서면서 연기를 해왔다. 그런데 지난해에는 여력 자체가 없었다. 그래서 처음으로 그런(쉬는) 시간을 가졌다. 좋은 시나리오들이 정말 많았다. 너무 탐나고 하고 싶었던 작품들도 많았지만, 그때는 스스로를 별로라고 생각했던 시기였기 때문에 할 수 없었다.

욕심을 부려서 한다고 해도 부족한 모습이 보일 거고, 그 모습을 내가 봐야 하고 또 부족한 모습을 관객들이 봐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고 싶지 않더라. 작품을 선택하는 것이 두려웠다. 그런데 이 작품을 받았을 때 마지막 관우의 메시지가 나한테 하는 말 같더라. 괜찮다고 하는 말들이… 다시 한번 마음을 추스르고 이 연기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하겠다고 한 순간부터 착착 진행이 돼서 계절감을 담아낼 수 있는 시기에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

-지친 시기를 보냈다고 했는데, 이 작품을 통해 이겨낸 건가.
“현장에 있는 게 제일 좋더라. 물론 힘든 순간도 있다. 이 세상에 나만 동떨어져있는 것 같고, 내가 제일 힘든 것 같은 순간. 지나고 보면 분명 주변에 도와주는 사람이 있었고, 든든히 곁을 지키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못 볼 때가 있다. 이 작품을 하면서 다시 예전으로 돌아갔다. 감사함과 소소한 행복들에 대해 무뎌졌었는데, 다시 고마워졌고 의지를 다지게 됐다. 그래서 다음 작품들도 계속 해나가게 된 것 같다. ‘버티고’ 촬영하고 ‘멜로가 체질’을 하게 됐고, 차기작도 결정했다. 연기를 하면서 소진된 것 같지만, 결국은 연기를 하면서 다시 에너지를 받더라.”

-서영은 어떤 인물이었나.
“누군가는 서영을 보며 답답하고 갑갑하다고 한다. 하지만 서영은 주변을 이루고 있는 인물들이나 삶을 대하는 방식을 본인이 선택한 거다. 고구마처럼 보이더라도 어떤 기준이 있고 현재 안에서 최선을 다할 수 있는 나름의 방법을 찾은 거다. 서영을 보면서 너무 작은 수조 안에 안 맞는 돌고래를 집어넣은 느낌이 들었다. 분명 서영도 상황이나 환경이 변하면 자유롭게 지낼 수 있을 거고, 얼마든지 변할 수 있는 사람인데 그럴 수 없는 상황에 맞춰갈 수밖에 없는 인물이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버티고’에서 서영을 연기한 천우희 스틸컷. /트리플픽쳐스
‘버티고’에서 서영을 연기한 천우희 스틸컷. /트리플픽쳐스

-감정적으로 힘든 장면이 많았다. 어땠나.
“제가 힘든 연기를 너무 많이 하다 보니까, 다들 걱정하시고 물어보시더라.(웃음) 물론 연기를 하는 순간에는 진짜로 믿는다. 믿는 순간에는 타격이 있긴 하다. 힘들고… 그런데 끝나는 순간에는 최대한 털어내려고 하고, 오히려 연기를 하면서 해소될 때도 있다. 그래서 힘든 순간들을 아주 힘겹게 마음에 쌓아두진 않는다.”

-지칠 대로 지친 서영이지만, 회사 사람들 앞에서는 애써 웃는 모습이 공감돼서 더 울컥하더라.
“그런 부분을 디테일하게 현실적으로 담고 싶었다. 우리가 일상에서 울고 싶다고 해서 울거나 어떤 감정을 표현하지는 않잖나. 오히려 반대다. 애써 아닌 척할 때가 더 많다. 서영이 혼자 어떤 감정에 빠지는 순간도 있지만, (서영에게는) 관계들이 더 중요하다. 진수나 엄마, 동료들이랑 있을 때 물론 마음은 복잡하지만 최대한 아닌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 애쓴다. 그런 복합적인 감정들이 디테일하게 나타나기를 바랐다.”

-유태오와 정재광과의 호흡은. 
“그동안 대부분 선배들과 작업을 해서 따라가는 입장이었다. 물론 의견을 내기도 하고, 그 의견을 존중해주셨지만, 배우는 자세였다. ‘버티고’는 (상대 배우들과) 비슷한 또래다 보니 의견을 내고 공유하는데 더 자유로웠던 것 같다. 서로 고민을 털어놓고, 적극적으로 얘기할 수 있어서 좋았다. 유태오, 정재광이 되게 열정적이다. 작품을 만들기 전에도 본인 의견을 스스럼없이 얘기했다. 좋은 영감이 될 만한 작품이나 소스들도 공유를 많이 했다. 이렇게 다각도로 볼 수 있구나 싶더라. 새롭게 배웠다.”

-클로즈업, 보디캠 등 다양한 촬영 기법을 시도했더라. 색다른 재미가 있었을 것 같은데.
“저도 처음 해보는 것들이 많았다. 우선 클로즈업이 굉장히 많았다. 집중하지 않으면 티가 날 수 있었다. 다른 생각을 하는 순간, 바로 잡힌다. 그래서 굉장히 세밀하게 표현하려고 했다. 그래도 어렵거나 부담스럽진 않았다. 현장에서 분위기를 만들어주고, 그 안으로 몰아넣어줘서 그냥 받아들이면 됐다. 보디캠은 처음 해봤다. 서영의 이명과 현기증, 압박감을 느끼면서 혼자 있을 수 있는 장소를 찾아 헤매는 모습이 잘 표현된 것 같아서 만족한다.”

열일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천우희. /나무엑터스
열일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천우희. /나무엑터스

-최근 종영한 ‘멜로가 체질’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밝은 캐릭터도 잘 어울리더라. 긍정적인 에너지를 얻었을 것 같은데.
“임진주라는 캐릭터를 하면서 자유로워졌다. 연기하는 데 있어서 갖춰지지 않거나 모자라게 보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현장에서 더 집중하려고 했고, 스스로 괴로워하는 경우도 많았다. 진주가 특수한 직업을 갖고 있지만, 현실적인 인물이다. 그러면서도 실제로 하지 못하는 말들을 대신해주기 때문에 판타지도 있다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이렇게까지 망가지는데 사람들이 어떻게 볼까, 이런 모습을 보여도 될까 싶었다. 그전 작품들에서도 눈썹이 없거나 살벌한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아예 캐릭터로 보이니까 개의치 않았었다.

그런데 진주는 현실과 판타지를 왔다 갔다 하는 인물이기 때문에 혹시라도 코믹한 연기나 가벼운 연기를 했을 때 거부감이 들면 어떻게 하지 겁이 났었다. 그런데 진주를 연기하면 할수록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이 더 많구나 느꼈다. 이런 모습까지 보여도 되는구나 하면서 점점 자유로워졌다. 이후 작품에서도 더 마음을 열어놓고 할 수 있는 자신감이 생긴 것 같다. 극으로 몰지 않으면서도 충분히 잘 해낼 수 있을 거라고 다독이는 방법을 찾은 것 같다. 다음 작품이 어떨지 궁금하다.”

-올해 연기 외적으로도 다양한 도전을 했다. 앞으로도 계속 도전할 생각인가.
“연기적으로는 도전 정신이 항상 많았는데, 외적으로는 사실 없었다. 지난해에는 그런 제안을 받았을 때 순순히 따랐다. 평소 성격 같으면 하지 않았던 것들인데, 유튜브도 하고 내레이션도 하고 다양하게 접해보려고 했던 것 같다. 기회가 온다면 앞으로도 계속할 의향이 있다. 그러나 제일 하고 싶은 건 연기로 계속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