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필자: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요즘처럼 시절이 하 수상할 때도 읽을 수 있는 시가 있어 즐겁고, 찾아가 만날 수 있는 야생화들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올해는 다른 해보다 더 자주 만항재에 다녀왔네. 강원도 태백시와 정선군, 영월군이 만나는 함백산 자락에 위치한 만항재는 해발 1,330m에 위치한 한국 최대 규모의 야생화 군락지로도 유명하지. 5월 초순이면 만항재에서 함백산 정상으로 오르는 등산로에 많은 족두리풀들이 꽃을 피우네. 먼저 정희성의 시인의 <두문동>을 읽고 야생화 이야기를 계속하세.

자세를 낮추시라/ 이 숲의 주인은 인간이 아니다/ 여기는 풀꽃들의 보금자리/ 그대 만약 이 신성한 숲에서/ 어린 처자처럼 숨어 있는/ 족두리풀의 수줍은 꽃술을 보려거든/ 풀잎보다 더 낮게/ 허리를 굽히시라

산과 들에서 자생하는 야생화들을 제대로 보려면 시인의 말처럼 자세를 낮추어야 하네. 보고자 하는 식물의 풀잎보다 더 낮게 허리를 굽혀야만 꽃이 보이거든. 허리를 똑바로 세우는 거만한 자세로는 볼 수 없는 야생화들이 대부분이야. 그래서 야생화를 좋아하고, 야생화를 사진으로 담는 사람들은 일단 작아지지 않을 수 없네. 꽤 오랜 시간 동안 무릎을 꿇거나 땅이나 바위 위에 납작 엎드려야만 작은 꽃들을 제대로 보고 담을 수 있거든. 특히 제비꽃, 노루귀, 바람꽃, 광대나물, 현호색, 냉이, 민들레 같은 이른 봄에 피는 꽃들은 추위를 피하기 위해 땅에 바싹 붙어 피어서 자세를 낮추지 않으면 꽃을 제대로 볼 수도 없네.

땅에 붙어 꽃을 피우는 대표적인 식물이 시에 나오는 족두리풀이야. 산의 숲 속에서 사는 쥐방울과의 여러해살이풀이인데, 보통 4월에 잎 사이에서 나온 짧은 꽃줄기 끝에 홍자색 꽃이 옆을 보고 피네. 꽃의 모양이 예전에 여인들이 머리에 쓰던 족두리를 닮아서 ‘족두리풀’ 또는 ‘족도리풀’이라고 불러. 긴 잎자루 끝에 붙은 심장형 잎을 보고 족두리풀이라는 걸 알아보지 못하면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네. 땅에 매우 가까이 붙어서 피는 작은 꽃을 꽃보다 더 넓은 잎이 가리고 있으니 꽃이 보일 리 없지. 자세를 낮춰 무릎을 꿇고 앉아 잎을 쳐들어야만 볼 수 있는 꽃이야.

내가 야생화를 만나러 산과 들에 자주 가는 이유는 ‘보는 행위’를 통해 스스로를 다스리기 위해서네. 허리를 굽혀 낮은 자세로 바라보는 행위를 반복함으로써 교만해지기 쉬운 마음을 억누르지. 무릎을 꿇는 행위를 통해 더 겸손해져야 한다고 계속 자신을 채찍질하기도 하고. 또 산과 들에 핀 야생화들의 작은 꽃에서도 많은 것을 배워. 황대권 선생이 <야생화 편지>라는 책에서 딱지꽃을 바라보면서 했던 말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네. 나도 그렇게 꽃들을 보고 있거든.

"내가 야생초를 좋아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내 속의 만(慢 : 자신이 남보다 훌륭하다고 망상하여 남에게 뽐내려 드는 방자한 마음)을 다스리고자 하는 뜻도 숨어 있다. 인간의 손때가 묻은 관상용 화초에서 느껴지는 화려함이나 교만이 야생초에는 없기 때문이지. 아무리 화사한 꽃을 피우는 야생초라 할지라도 가만히 십 분만 들여다보면 그렇게 소박해 보일 수가 없다. 자연 속에는 생존을 위한 몸부림은 있을지언정 남을 우습게 보는 교만은 없거든."

우리가 사는 세상이 시끄러운 것은 인간들의 교만 때문일세. 이른바 ‘조국 논란’과정에서 드러난 우리 사회의 지식인과 정치인들의 진면목을 보게나. 거의 모두가 염치가 뭔지도 모르는 사람들뿐이네. 다른 사람들보다 많이 배운 지식으로 자신을 그럴듯하게 포장해 파는 위선자들 천지야. 그들은 인간이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모르고 있어. 완벽한 인간은 세상에 없거든. 있다면 그게 신이지 인간은 아닐세. 그래서 자신의 불완전성을 솔직히 인정하고 겸손해지는 것, 그게 참으로 인간적인 모습이야. 적어도 꽃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불완전 존재라는 것은 알아. 교만한 사람이 야생화를 찾아다니는 걸 아직 본적 없어.

언젠가 경기도 가평역에서 흰색 천일홍 꽃을 보고 놀란 적이 있었네. 그때 혼자 생각했지. 저런 꽃을 사람이 만든다면 흰 종이가 몇 장이 필요할까? 아니, 사람이 과연 저런 꽃을 만들 수나 있을까? 매우 정교한 꽃을 만들어내는 식물들을 보고 있으면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말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네. 인간의 교만이 만들어낸 헛소리라는 생각만 들어.

유제림 시인의 <어린 날의 사랑> 한 부분일세. 산과 들에 피는 야생화를 자세를 낮춰 허리 굽혀 바라보는, 자연 앞에서 다시 겸손해지는, 사람들이 많아지길 바랄 뿐이네. 그래서 좀 더 맑고 향기로운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어.

저 어린 꽃망울을 좀 보세요, 조것들/ 솜털 보송보송한 이마에 분들을 바르고/ 아휴! 조것들이 어디 있었을까요./ 어떻게 나왔을까요?/ 대관절 무슨 힘으로 저렇게/ 푸른 하늘을 향해/ 솟구쳤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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