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범찬희 기자  해마다 반복된 질타 때문일까, 아니면 의원들 스스로 자정노력을 했기 때문일까. 올해 국정감사는 거물급 기업인이 증인대에 서는 일 없이 비교적 조용히 치러지는 분위기다.

그렇다고 기업과 기업인이 ‘나라 살림을 살핀다’는 그럴듯한 명분의 도구가 되는 구태가 완전히 근절된 건 아니다. 특정 의원들이 자신들의 지역구를 챙긴다는 의욕을 앞세워 기업을 볼모로 삼는 광경이 올해도 어김없이 펼쳐져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고 있다.

이명수 자유한국당 의원은 자신의 지역구인 충남 아산의 한 빙과업체 민원 해결사를 자처하다 여론의 뭇매를 맞아야 했다. 이미 합의금을 주고 종결된 사안에 신동빈 롯데 회장을 소환하려는 무리수를 두다 뒤늦게 발을 뺐다. 해당 업체 측에 추가로 수억원의 금품 지급을 요구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난처한 상황에 몰리자 증인 채택을 철회했다.

뚜렷한 증거도 없이 특정 기업의 명예에 심각한 훼손이 가해질 수 있는 발언도 들렸다. 지난 10일 열린 국세청 국감에서 권성동 자유한국당 의원은 일본술이란 소문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처음처럼의 ‘누명’을 씻어주려다 경쟁업체를 저격하는 우를 범했다. 롯데주류의 소주 처음처럼이 일본술이라는 악소문이 퍼지고 있는 배후에 마치 하이트진로가 자리 잡고 있다는 뉘앙스를 풍긴 것이다.

이날 김현준 국세청장에게 SNS에서 퍼지고 있는 처음처럼의 비방 사례를 들려준 권 의원은 “뒤에서 누가 조종하는지 보이지 않습니까 이거?!”라며 “건전한 주류 질서 확립에 국세청이 제 일을 하고 있는지 의문스럽다”고 물었다. 권 의원은 자신이 처음처럼의 해명자로 나선 건 롯데주류의 공장이 자신의 지역구인 강원도 강릉에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애써 감추지 않았다.

처음처럼이 일본소주가 아니라는 걸 국민들에게 알리는 데는 지분구조와 제품의 역사 등 팩트에 관해서만 언급하면 됐을 일이다. 구체적인 증거 자료도 제시하지 않고 배후 세력 운운하는 건 권 의원 스스로 강조한 ‘건전한 주류 질서’를 깬 것이나 다름없다. 이는 하이트진로는 물론, 생산 공장이 자리 잡고 있는 전국 6개 지역구 동료 의원들의 심기를 건드릴 수도 있는 경솔한 발언이다.

6개월 앞으로 다가온 내년도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유권자들에게 지역 일꾼임을 어필하고 싶은 현역 의원들의 심정은 충분히 헤아려진다. 그러나 국정감사란 어디까지나 입법 기관이 행정부를 감시‧감독하는 자리라는 걸 잊어서는 안 되겠다. ‘평소에 잘하자’란 말은 지역구 관리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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