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숭호   ▲언론인 ▲전 한국신문윤리위원
정숭호  ▲언론인 ▲전 한국신문윤리위원

올해 노벨 경제학상은 미국 매사추세츠 공대(MIT)의 아브히지트 바네르지(58·미국) 교수와 에스테르 뒤플로(46·프랑스) 교수, 하버드대의 마이클 크레이머(55·미국) 교수가 받게 됐다. “세계의 빈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효율적인 방법을 제시한 것”이 세 사람의 수상 사유다. 

바네르지 교수와 뒤플로 교수는 부부다. 뒤플로 교수는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로는 최연소이자 여성으로는 두 번째로 이 상을 받게 됐다. 

뒤플로 교수가 여성으로는 두 번째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것처럼 바네르지 교수는 인도 출신으로 이 상을 받게 된 두 번째 인물이다. 인도 사람으로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사람은 올해 여든여섯 살인 아르마티아 센(1933~ )교수가 처음이다. 그는 1998년에 이 상을 받았다. 바네르지 교수가 수상자로 발표된 날 센 교수가 자기 일처럼 기뻐한 건 당연하다. 그는 “바네르지는 이 상을 받을 자격이 있다. 그가 이 큰 상을 받게 돼서 정말 기쁘고 행복하다”며 축하를 보냈다. 

두 사람은 인도 방갈로르의 명문 대학 ‘프레지던시 칼리지’의 선후배 사이다. 센 교수는 졸업 후 영국으로 건너가서 캠브리지 대학 교수로 있다가 지금은 하버드 대학에서 가르치고 있다. 바네르지는 미국으로 유학, 하버드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MIT에 자리를 잡았다. 바네르지가 센 교수에게 직접 배우지는 않았다. 

나는 센 교수가 같은 나라 출신이라는 점만으로 바네르지 교수를 축하했다고 보지 않는다.  센 교수도 바네르지 교수처럼 평생을 ‘빈곤 문제 해결’에 힘써온 사람이다. 센 교수의 노벨 경제학상 수상 선정 사유도 “빈곤 문제 해결에 대한 그의 높은 관심”이다. 위키피디어 편집자들은 그를 “불평등과 빈곤 연구의 대가이며 후생(복지)경제학의 대표적 학자, 경제학계의 테레사 수녀로 불린다”고 평가한다.

센과 바네르지. 이 사람이 빈곤 문제 해결을 평생의 연구 과제로 삼은 것은 모국 인도가 극심한 빈곤에 시달려온 나라라는 점과 무관하지 않다. 센 교수는 열 살 무렵 세계 최빈국 방글라데시에 닥친 혹독한 기근을 목격했다. 이 경험이 그를 ‘빈곤 극복’에 몰두하게 했다. 바네르지 교수도 모국 인도는 물론 케냐 등 국민이 가난한 나라를 방문, 같은 문제를 연구해왔다. 캠브리지 대학 교수로서 케인스 등을 길러내면서 20세기 경제학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던 알프레드 마샬(1842~1924)은 “경제학자는 머리는 차갑되 가슴은 따뜻해야 한다”라고 했다. 센과 바네르지를 ‘차가운 머리를 따뜻한 가슴으로 데워온 경제학자들’로 불러도 될 것이다.

센 교수는 31년 전 노벨상 상금으로 받은 100만 달러 전액을 인도의 빈곤 퇴치 기금으로 내놓았다. 다음은 그 무렵 내가 접한 그의 어록 중 하나다. “발전은 ‘블라스트 Blast’와 ‘갈라 Gala’ 두 가지 방법으로 추구할 수 있으나 폭발 위험이 있는 전자보다는 오래 오래 잔치 분위기가 지속되는 후자를 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Blast’는 ‘피 Blood’와 ‘땀 Sweat’과 ‘눈물 Tears’의 앞 글자를 딴 것이며, ‘Gala’는 ‘서로 조금씩 도와주며 잘 지내기’라는 뜻인 ‘Getting by, with A Little Assistance’에서 한 글자씩 딴 것이다. ‘Blast적 발전’은 다른 사람들에게 피와 땀과 눈물, 즉 희생을 요구해 이룬 발전이며, ‘Gala적 발전’은 다른 이의 희생이 아니라 서로 아주 조금씩의 양보로 이룬 발전을 뜻한다. 그는 ‘Blast적 발전’은 이 단어의 원래 의미인 ‘폭발’의 가능성 때문에 위험하다고 했다. 상금 전액을 빈곤 퇴치에 던짐으로서 그는 ‘Gala적 발전’을 실천해 보였다.

자유와 발전의 관계에 관한 그의 어록에도 멋진 게 있다. “경제적 부자유는 인간을 무력한 존재로 만들어 다른 종류의 자유마저 침해하게 한다.” 가난은 사람을 노예로 만든다는 뜻일 것이다. 그의 1999년도 저서 ‘자유로서의 발전’은 이런 내용을 담고 있다. ‘20세기의 지식인’으로 꼽혔던 역사학자 토니 주트(1948~2010) 교수가 센 교수를 “인도 최고의 수출품”이라고 평한 것은 그의 이런 생각과 행동을 높이 샀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 바네르지/뒤플러 교수 부부는 “국가별로 여건이 달라 일률적으로 적용할 수는 없지만, 한국은 빈곤 탈출의 좋은 사례로 꼽을 수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방글라데시 못지않은 세계 최빈국이었던 한국이 지속 가능 성장을 위한 사회적 구조를 구축해 빈곤을 퇴치했다는 평가다. 

미래에 노벨 경제학상을 받을 사람도 한국에 대해 바네르지처럼 평가를 내려 줄 것인가? 현실과 동떨어진 이 정부 경제정책 때문에 품어본 의문이다. 한국의 성장은 멈췄고, 성장을 뒷받침해온 사회적 구조도 와해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미구에 경제적 부자유로 다른 종류의 자유를 침해받을 사람도 늘어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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