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15 20:24
[이영종 ‘평양에선 지금’] 축구, 금강산 그리고 거짓말
[이영종 ‘평양에선 지금’] 축구, 금강산 그리고 거짓말
  • 이영종 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장
  • 승인 2019.10.29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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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종 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장.

올 가을 우리 국민들은 북한에 대해 두 차례 큰 실망을 할 수밖에 없었다. 평양에서 지난 10월 15일 열린 29년만의 남북 남자 축구 대결에서 북한이 보인 북한 측의 납득할 수 없는 태도가 그랬고, 그로부터 일주일 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금강산 관광 완전종료 언급이 더해졌다.

지난해 2월 북한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로 시작된 남북 화해 분위기는 4월 판문점 정상회담에 이어 9월 평양 정상회담으로 이어졌다. 남북관계의 봄날을 이야기하며 가을까지 그 분위기가 이어졌던 지난해와 현재의 정세는 너무 큰 차이가 난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 예선으로 치러진 남북대결은 0대0 무승부로 끝난 승부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남북관계가 소원해진 상황에서 스포츠 교류가 당국 간 대화와 민간교류를 이끌어 낼 견인차 역할을 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컸다. 그런데 북한은 이해할 수 없는 태도로 시종일관했다. "다치지 않고 돌아온 게 다행"이라는 손흥민(토트넘) 선수의 귀국 후 언급에 국민들은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나 하는 의문이 있었지만 ‘깜깜이 중계’에 그친 상황이라 전모를 파악하기 쉽지 않았다. 모든 국민과 축구팬의 관심이 쏠린 국제경기인 만큼 적정 규모의 응원단을 파견하겠다는 우리 측 제안을 북한은 거부했다. 경기 하루 전 협의 때까지도 4만 명 규모의 관중이 들어찰 것으로 운을 뗐던 북한은 정작 경기 때 스타디움을 텅 비웠다. 현장을 참관한 잔니 인판티노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도 실망감을 금치 못한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당초 북한은 우리 방송3사(KBS, MBC, SBS)에게 중계를 약속하고, 중계권 계약료까지 거액을 챙겼다. 그러나 경기가 임박해서야 “일체의 홍보를 하지 말라는 상부의 지시가 있었다”며 생중계를 거부했다. 대신 경기장면을 담아 전달하겠다는 뜻을 전해왔고, 우리 방송사들은 녹화중계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하지만 북한이 전달한 화면은 HD급이 아닌 저화질(SD)인데다 화면 비율도 달라 문제가 생겼다.

선수들과 축구협회 관계자들에 따르면 경기 내용면에서도 문제가 있었다. 킥오프 휘슬이 울리자마자 북한 선수들은 거친 태클과 함께 신체 가격, 밀치거나 잡아당기기, 교묘한 파울 등 반칙을 연발했다. 홈그라운드에서의 무관중 경기인데다 중계 카메라 시스템조차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상황을 염두에 둔 듯한 행동이었다는 얘기다. 우리 미드필더 황인범이 북한 선수로부터 심하게 가격당하는 장면에서는 남북한 선수들이 엉켜 심각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평양 도착 과정에서 벌어진 대표님 홀대 사태도 논란으로 남았다. 북측이 육로방북을 불허한데 따라 우리 대표선수단은 중국 베이징을 경유하는 항공로를 이용해야 했다. 평양 순안공항에선 X레이 검색대가 있는데도 선수단에게 짐과 물품 목록을 일일이 적어내게 했다. 식사제공을 위해 공수해 간 고기와 해산물 식재료 3박스는 압수하기도 했다. 결국 경기 하루 전인 14일 오후 4시께 순안공항에 도착한 대표단은 3시간가량 진을 뺀 후 시내 고려호텔을 향해 출발할 수 있었다. 누가 봐도 의도적인 훼방 놓기였다.

그렇지 않아도 중단 사태 장기화로 파국의 기로에 서있는 금강산 관광 사업에 김정은 위원장은 사실상 사형선고를 내렸다. 지난 22일 금강산을 돌아본 김정은은 “보기만 해도 기분이 나빠지는 너절한 남측 시설들을 남측의 관계부문과 합의하여 싹 들어내도록 하라”고 지시했다는 게 북한 관영매체들의 보도다.

그는 “손쉽게 관광지나 내어주고 앉아서 득을 보려고 했던 선임자들의 잘못된 정책으로 하여 금강산이 10여 년간 방치돼 흠이 남았다”는 말도 했다. 50년 독점계약 방식으로 현대와 금강산 사업을 추진해 1998년 11월 첫 배를 띄웠던 걸 이제 와서 잘못된 사업으로 비판한 것이다.

김정은의 말 한마디가 절대시 되는 북한 체제의 성격을 놓고 볼 때, 금강산 폐쇄는 이제 초읽기에 들어갔다고 볼 수 있다. 북한은 25일 금강산국제관광국 명의로 통일부와 현대그룹에 각각 통지문을 보내 “합의되는 날짜에 금강산지구에 들어와 당국과 민간기업이 설치한 시설을 철거해 가기 바란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우리 정부는 28일 남북 당국 간 실무회담을 통한 해결을 북측에 제안했다. 하지만 남북 간 접촉에 거부감을 보이며 문서교환 방식의 협의를 주장해온 북한이 긍정적인 태도로 금강산 문제에 호응해올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사업 주체인 현대아산 측은 뜻밖의 북한 발표에 당혹해 하면서 사태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다. 다만 당국이나 사업자 모두 이런 상태라면 금강산 관광사업의 종료가 불가피 하다는 현실적 판단을 내리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일각에서는 불똥이 개성공단 쪽으로까지 튀지 않을까 우려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지난 2월 이후 소강상태에 접어든 남북관계가 좀체 회복 기미를 보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 국민들은 북한의 비핵화 언급 등 남북관계 전반에 대한 의구심을 키워왔다. 북한이 연일 우리 대통령과 정부를 비난하는 걸 보면서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도 있었다.

김정은까지 나선 비난전이 하노이 북미 회담 결렬의 충격파 때문일 것이란 추정이 가능하지만 구체적으로 무슨 요인이 북한 권력 핵심부를 얼어붙게 했는지는 드러나지 않고 있다. 이런 움직임은 팽팽한 신경전에도 불구하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신뢰‘를 바탕으로 3차 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준비 작업을 벌이고 있는 북미 관계에 비춰볼 때 확연한 차이가 나는 게 사실이다.

남북관계의 대립은 당국 관계 뿐 아니라 경협이나 교류 분야에도 번졌다. 대표적으로 대북 식량지원 제안 거부와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방역 제의 무응답, 평양 축구대결 등에서 나타나고 있다. 남북관계의 냉각사태가 장기화 국면으로 접어드는 게 아닌가하는 우려가 나온다. 국내외 모두 어지러운 상황에서 경제 문제 등 우리 정부와 국민들의 고민이 깊어지는 상황이다.

이런 와중에 음습하고 암울한 북한발 뉴스를 잇달아 접해야 하는 건 무척 슬픈 일이다. 평양 남북 축구대결과 금강산 관광 종결, 그리고 약속이나 합의, 국제규정이나 관계를 손바닥 뒤집듯 하는 북한 당국의 몽니가 뒤엉켜 어수선한 가을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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