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전년 동월 대비 물가상승률이 사상 첫 마이너스를 기록하면서 디플레이션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최근 전년 동월 대비 물가상승률이 사상 첫 마이너스를 기록하면서 디플레이션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최근 들어 디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1930년대 미국의 대공황, 1990년대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등이 언급되며 장기적인 불황에 접어드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꼬리에 꼬리를 문다.

디플레이션은 경제 전반에 있어 화폐가치가 지속 상승하고, 상품 및 서비스의 가치는 지속 하락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간단하게 예를 들자면, 오늘은 100원에 살 수 있던 물건을 내일은 50원에 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만 보면 긍정적으로 보일 수도 있으나, 그렇지 않다. 주가와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고, 금융권이 혼란에 빠지며, 각종 소비 및 신규 투자가 위축된다. 이는 다시 경기침체 및 경제성장 정체를 낳고, 악순환의 반복으로 이어진다. 무엇보다 디플레이션을 벗어나는 것이 쉽지 않다. 인플레이션보다 디플레이션이 더 위험하다고 여겨지는 이유다. 

◇ 광범위·지속적 물가 하락으로 보긴 어려워… 저물가 흐름은 ‘뚜렷’

그렇다면, 한국 경제는 정말 디플레이션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인 걸까. 아니면 그저 저성장이 이어지고 있을 뿐, 디플레이션을 걱정하는 것은 지나친 공포 조장인 걸까.

디플레이션의 핵심 요건은 크게 3가지다. 물가 하락과 실물경기 침체, 자산·금융시장불안이다. 이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기준은 ‘광범위하고 지속적인’ 물가 하락이다.

최근 제기되는 디플레이션 우려의 가장 큰 근거 또한 물가 하락에 있다. 소위 ‘물가상승률’이라 일컬어지는 ‘소비자물가지수 등락률(전년 동월 대비)’이 올해 들어 1% 아래로 떨어지더니, 지난 8월 0.0%에 이어 9월엔 급기야 마이너스(-0.4%)를 기록한 것이다. 전년 동월 대비 물가상승률이 0.0%와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은 통계 작성 이후 최초라는 점에서 충격이 더욱 컸다.

9월 -0.4%를 기록했던 물가상승률은 10월 다시 0.0%로 회복됐다. /뉴시스
9월 -0.4%를 기록했던 물가상승률은 10월 다시 0.0%로 회복됐다. /뉴시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디플레이션이라 하기 어렵다. 광범위하고 지속적인 물가 하락이 나타나야 한다. 8월 0.0%를 기록한 뒤 9월 -0.4%로 떨어졌던 전년 동월 대비 물가상승률은 10월 다시 0.0%로 마이너스를 벗어났다. 마이너스 상승률이 지속적인 현상이라기 보단, 일시적인 현상에 가깝다.

마이너스 물가상승률의 원인도 들여다봐야 한다. 수요 측에서의 소비 위축이라면 디플레이션 우려로 이어질 수 있지만, 공급 측에 원인이 있다면 상황이 다르다. 예를 들면, 양파의 작황이 좋거나 유가가 급락해 가격이 떨어졌다면 디플레이션으로 보기 어렵다.

물가상승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한 9월의 구체적인 내용들을 살펴보자. 품목별로 살펴봤을 때 가장 눈에 띄는 하락세를 보인 부문은 농축수산물(-8.2%)이었고, 세부적으로는 농산물이 -13.8%, 채소류는 -21.3%를 기록했다. 또한 공업제품 부문에서 석유류가 -5.6%를 기록하며 뒤를 이었다.

이러한 수치는 대내외적으로 공급의 측면에서 발생한 변수가 작용한 결과다. 먼저 농산물의 경우, 지난해에는 폭염 등의 여파로 가격이 치솟았다. 지난해 9월의 농산물 물가상승률은 14.9%를 기록한 바 있다. 반면, 올해는 작황이 좋아 가격이 떨어졌다. 지난해와 비교했을 때 기저효과가 더해지며 낙폭이 컸던 것이다. 석유류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유가가 하락하면서 전반적인 물가상승률 하락에도 영향을 미쳤다.

즉, 9월의 마이너스 물가상승률은 ‘광범위하고 지속적인 물가 하락’으로 보기에 다소 무리가 있다. 정부 역시 이러한 점을 들어 디플레이션 우려를 일축하고 나섰다. 아울러 정부는 각종 정책적 요인으로 교육비와 급식비, 병원비 등이 크게 하락한 것도 전체적인 물가상승률 하락에 영향을 줬다고 밝혔다.

다만, 장기적인 측면에서 물가상승률 하락세가 이어지고 있는 점 또한 분명 사실이다. 디플레이션 우려까지는 다소 무리라 하더라도, 저조한 물가상승률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는 것 또한 시급해 보인다.

물론 물가상승률은 기본적으로 기저효과가 반영되기 때문에 전후 흐름을 고려해서 살펴야 한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5년에도 10개월 연속 0%를 기록한 바 있고, 큰 틀에서 하락세와 회복세가 반복돼왔다. 그러나 장기적인 추세를 살펴봤을 때에도 물가상승률의 하락세는 뚜렷하게 포착된다.

9월의 마이너스 물가상승률 또한 농산물 및 유가 영향이 모든 것을 설명해주는 것은 아니다. 농산물과 유가는 공급의 측면에서 가격에 영향을 주는 변수가 많아 이를 제외하고 물가상승률을 계산하는 ‘농산물 및 석유류 제외지수’를 별도로 집계한다. 이 지수 역시 지난 9월 0.6%를 기록하며 근래 들어 눈에 띄게 낮은 수치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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