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보다 가장 뜨거운 한해를 보내고 있는 이하늬.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누구보다 가장 뜨거운 한해를 보내고 있는 이하늬.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천만배우’ 이하늬가 도전을 택했다. 대한민국을 뒤흔든 금융스캔들의 실체를 파헤친 영화 ‘블랙머니’(감독 정지영)에서 냉철한 엘리트 변호사로 분한 그는 전작과는 또 다른 매력으로 스크린을 사로잡는다.

이하늬는 올해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넘나들며 종횡무진 활약했다. 먼저 지난 1월 개봉해 1,600만 관객을 동원하며 역대 국내 박스오피스 2위에 등극한 영화 ‘극한직업’(감독 이병헌)에서 마약반의 만능 해결사 장형사로 열연, 강도 높은 액션과 코믹 연기로 호평을 이끌어냈다.

이어 22%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지난 4월 인기리에 종영한 SBS 드라마 ‘열혈사제’에서 미워할 수 없는 매력을 지닌 열혈검사 박경선 역을 맡아 뻔뻔하고 당당한 매력으로 시청자 저격에 성공했다.

연타석 홈런으로 ‘흥행 파워’를 입증한 이하늬는 영화 ‘블랙머니’로 새로운 변신을 예고, 기대를 모으고 있다.

‘블랙머니’는 수사를 위해서라면 거침없이 막 가는 ‘막프로’ 양민혁(조진웅 분) 검사가 자신이 조사를 담당한 피의자의 자살로 인해 곤경에 처하게 되고, 누명을 벗기 위해 사건의 내막을 파헤치다 거대한 금융 비리의 실체와 마주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IMF 이후 2003년부터 2011년까지 진행된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의 외환은행 헐값 매각 사건을 극화한 작품이다. 극 중 이하늬는 태어나면서부터 엘리트의 길을 걸어온 국내 최대 로펌의 국제 통상 변호사이자 대한은행의 법률대리인 김나리를 연기했다.

이하늬는 냉철함과 독보적인 카리스마를 지닌 엘리트 변호사 김나리로 완전히 분했다. 유창한 영어 대사는 물론, 자신이 믿고 있던 확신이 의심으로 바뀌고 실체를 마주하지만, 선택의 기로에서 흔들리게 되는 인물의 복잡한 심리를 담담하면서도 섬세하게 표현해내 호평을 받고 있다. 

이하늬가 영화 ‘블랙머니’(감독 정지영)로 관객과의 만남을 앞두고 있다.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이하늬가 영화 ‘블랙머니’(감독 정지영)로 관객과의 만남을 앞두고 있다.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개봉을 앞두고 <시사위크>와 만난 이하늬는 “세상에 나오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작품”이라며 ‘블랙머니’를 향한 애정을 드러냈다. 

-천만 배우가 돼서 돌아왔다. 소감이 어떤가.
“인터뷰 자체가 오랜만이다. ‘타짜-신의 손’(2014) 이후 처음인 것 같다. ‘천만 배우’는 아직은 나에게 어울리는 타이틀이 아닌 것 같다. 그냥 팀(‘극한직업’)의 일원이었기 때문에 주어진 영광스러운 이름이라고 생각한다.(웃음)”

-‘극한직업’으로 흥행 배우가 됐다면, ‘블랙머니’는 배우로서 필모그래피를 또 한 번 넓힐 수 있는 기회가 됐을 것 같다. 어떤 마음으로 택했나.
“‘블랙머니’는 본능적으로 연기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시나리오였고, 캐릭터였다. 연달아 작품을 했는데, 완전히 새로운 에너지의 캐릭터를 받아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시나리오 자체도 너무 재밌었다. 실화 바탕이고 경제라서 어렵거나 무거우면 어떻게 하나 걱정했는데, (시나리오가) 쉽고 재밌게 읽히더라. 그리고 완성도가 높았다. 쉽든 어렵든 완성도가 높으니까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 수밖에 없었다.”

-김나리를 연기하며 중점을 둔 부분은.
“김나리가 냉철한 캐릭터고 겉으로 감정을 드러내는 인물이 아니라, 완급조절이 캐릭터를 표현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포인트였다. 굉장히 단단하고 여유 있고 내공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에너지 자체로 존재하면서 연기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몸을 쓰거나 대사를 화려하게 하는 캐릭터가 아니었기 때문에, 오히려 보이지 않는 에너지나 디테일로 캐릭터를 잡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김나리가 처음 등장하는 신이 인상 깊었다. 고민을 많이 했을 것 같은데.  
“맞다. 첫 등장부터 영어 대사를 해야 했다. 영어를 하더라도 한국 사람이 한국에서 영어를 하는 것과 다르지 않나. 나리는 미국 엘리트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커왔고, 미국에서도 슈퍼 엘리트였기 때문에 잘하는 정도가 아니라 상대방을 누를 정도의 포스가 있어야 했다. 또 나리의 특성에 맞게 차가우면서도 이성적이고 날카로우면서도 지적이게 표현해야 했다. 경제 용어들도 많았다. 어떻게 하면 유창하게 할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다. 계속 입에 붙게 하려고 노력했다.”

‘블랙머니’에서 엘리트 변호사 김나리로 분한 이하늬 스틸컷.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블랙머니’에서 엘리트 변호사 김나리로 분한 이하늬 스틸컷.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실제 발생한 금융사건을 다루고 있고, 검찰개혁 등 현 시국과 맞물리는 화두를 던지고 있다. 직접 참여한 배우로서 어떤 생각이 드나.
“8년 정도 작업 과정이 있었고, 시국에 맞춰서 하려고 한 건 아니었는데 어떻게 이렇게 맞물리나 싶다. 오히려 시국이랑 너무 가까우면 보고 싶지 않아 하는 것도 있잖나. 사는 것도 힘든데… 현실이 너무 많이 반영이 돼서 두렵고 떨리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이제는 더 이상 개인의 안위와 행복이 개인에게서만 존재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고, 경제는 몰라도 돼. 정의 실현은 네가 해’라고 얘기할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게 하면 개인의 행복과 안위에도 치명적 위협이 가해지는 때가 된 것 같다. 위험수위에 도달했다는 생각이다. 다음 세대는 조금이라도 달라야 한다. 더 나은 방법, 방향으로 가려면 일단은 뭔가 알아야 하지 않겠나.

어떤 일이 있었는지 모르고 살았다는 것이 내게도 충격이었다. 다른 나라도 아니고, 내 나라에 이렇게 큰 사건이 있었는데 모르고 그냥 지나갔었다니… 회자되지 않았다는 것도 너무 놀라웠다. ISD(투자자국가소송제)에서 기업과 국가가 붙었을 때 국가가 패소할 경우가 99%라고 하더라. 내년에 판결이 나면, 5조원을 물어야 한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우리나라는 휴대폰을 몇 개나 팔아야 할 것이며, 대체 누구의 돈으로 물어낼 거냔 말이다. 생각하면 정말 아찔하다. 세금으로 그 돈을 문다고 하면, 세금 내고 싶어 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나. 이제는 더 이상 개인만이 중요한 세상이 아니다. 더 이상 침묵할 수 없고, 더 이상 몰라서는 안 된다. 모르는 게 유죄일 수 있는 시대가 아닐까.”

-민감한 소재인 탓에 여러 어려움도 있었을 것 같은데, 부담은 없었나.  
“완전히 자유로웠다고 하기엔 힘들 것 같다. 그런데 이런 얘기조차 할 수 없는 나라에서 살아야 한다면, 무슨 희망이 있을까. 이 정도의 소리도 못내는 나라에서 내가 배우 생활을 하고 살아야 한다면, 너무 비극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 세상이 바뀌어야 하고 바뀌고 있다고 생각한다. 많은 분들이 이 영화를 통해 공감할 거라 믿는다. 많은 관객을 못 만날 수도 있고 사장될 수도 있지만, 세상에 나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세상에 나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작품이라면 일부여도 참여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하늬가 ‘블랙머니’를 향한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이하늬가 ‘블랙머니’를 향한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어려운 소재지만, 쉽고 재밌게 풀어냈고 영화적 재미까지 담아냈다.
“너무 다행이다. 의미만 있고 재미가 없다면 누군가에게 추천하기도 그렇잖나. 하하. 또 좋은 배우들이 함께해서 정말 너무 든든하다. 많은 의미에서… 믿고 보는 배우들이 각 신마다 많이 나오지 않나. 이성민 선배부터 이경영·조한철 등 수많은 배우들이 같이 해주셔서 시류를 만들고, 재미를 만들고 또 의미를 만들었다. 다 같이 함께한 것 같다.”

-반면 영화적 카타르시스보다 현실적 결말에 대한 아쉬움을 느끼는 관객도 있을 것 같은데.
“나머지 여운은 현실 세계에서 통쾌하게 만들고 싶다. ‘고발합니다’가 이 영화가 할 수 있는 최선인 것 같고, 관객과 국민이 어떻게 반응할지는 그들의 몫이다. 이런 영화를 만들었어도 응답하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는 일 아니겠나. 영화 끝나고 치타 씨의 랩이 흘러나온다. 굉장히 파워풀한데, 그 음악이 이후를 암시하는 게 아닐까. 승리의 암시라고 생각했다.”

-관객들에게 기대하는 평가가 있다면.
“내 캐릭터는 ‘블랙머니’의 일부일 뿐이다. ‘블랙머니’가 갖고 있는 영화적인 재미와 메시지가 잘 전달됐으면 하는 바람이 제일 크다. 특히 양민혁의 마지막 외침, 형법 제234조. 누구든 범죄가 있다고 사료할 때에는 고발할 수 있고, 고발해야 한다는 게 우리나라 형법이다. 알지 못했던 우리의 권리와 의무다. 안 하는 것도 국민의 직무유기인 거다. 정치인이나 누군가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우리는 그런 권리와 의무를 행사하는 국민인가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한다. 선진 개인이 모이면 당연히 선진국이 될 거다. (‘블랙머니’가) ‘먼저 선진 개인이 되자’는 자의식이 생기는 중요한 단초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미스코리아로 데뷔해서 배우로 자리매김했고, 해외 진출도 앞두고 있다. 쉴 새 없이 달려오고 있는데, 그런 에너지는 어디에서 나오나.
“나도 잘 모르겠다. 하하. ‘Stay hunger(늘 갈망하라)’라는 말을 좋아한다. 탐욕스러운 배고픔이라기보다 안주하지 않고 나아갔으면 좋겠다. 좋은 아티스트였는데, 스스로 성장을 멈추는 경우를 많이 봤다. 너무 안타깝다. 여전히 목마르고, 배고픔을 남겨두려고 한다. 그런 부분이 없다면, 이 일을 하는 것이 의미가 없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동시에 자가복제에 대한 두려움도 있다. 패턴화해서 연기를 하고 있지는 않나, 했던 방식으로 하고 있지는 않나. 캐릭터를 연기하다 보면 당연히 내 안에서 끌어온다. 하지만 성장을 멈추지 않기 위해 경계하려고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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