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도겸 칼럼니스트
하도겸 칼럼니스트

프랑크푸르트 국제공항에 느끼는 독일의 날씨는 춥고 습함이었다. 정말 미리 내복이라도 입고 왔어야 했나 싶을 정도로 스산하다. 아부다비에서 넘어와서 더 그런 듯 하다. 비는 안개처럼 내리다가 가끔 빗방울을 쏟아내곤 했다. 정말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다.

숙소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데 정해진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차가 오지 않는다. 옆에서 기다리는 스튜어디스에게 물으니 자기도 이유를 모르겠다고 유창한 영어로 답한다. 먼발치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기사분들께 가서 여쭤보니, 웃으며 오늘 파업이라고 한다. 여행자들에게는 웃을 일이 않은데 참도 천연스럽다. 일년에 몇 번 하는 파업이 하필 오늘이라니….

당장 지금은 좀 불편하겠지만 뭐가 배울 게 있을 듯하다. 베를린에 거주하는 친구한테 들은 이야기지만 여기는 해고가 쉽지 않은 나라라고 한다. 해고는 노동자에게는 살인과 같은 것인데, 이런 해고를 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절차를 밟아서 하는데 실제로 거의 1년이 걸린다고 한다. 그 이후에 해고된 노동자는 소송도 할 수 있는데, 재판 역시 노동자들 편에서 이뤄진다고 한다. 때문에 사용자 측에서는 해고는 합리적이고 분명한 이유가 없으면 엄두조차도 내지 않는다고 한다. 열심히 일하는 근로자가 살기에는 참으로 좋은 나라다. 까닭에 합법적인 파업은 서민들이 좀 불편하겠지만 너무나 당연한 노동자의 권리 행사로 받아들여지나보다.

그 날로부터 두세 번 파업이 더러 있었다. 모든 버스가 파업하는 것이 아니라 번호를 바꿔가면서 비슷한 대체 노선이 있는 61번 버스가 먼저 파업을 하고 다음에는 대체 노선 버스 21번이 파업하는 순서로 정해지는 듯이 보인다. 아울러, 파업하는 노동자가 어디 가서 놀거나 쉬는게 아니라 집회를 하는 것이 확인된다. 저녁 무렵 퇴근시간대에는 시내 중심지에서 도로를 건너는 시위를 하는 사람들을 보기도 했다. 잠시 점거한건지 지나가는 것인지는 확인 못했는데 경찰이 멀리서 차단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점거하는 듯이 보였다. 시간이 꽤 걸리는데도 버스가 멈춰 서 있고 노선기차(트램)이 서도 아무도 불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기다리기도 하고 시간이 걸릴 듯하면 얼른 내려서 뛰어가는 사람조차도 시위에 익숙해져 있는 모습이었다.

여하튼 낯선 공항에서 만난 합법적인 버스 파업은 고스란히 여행자들에게 피해로 다가왔다. 잘 안되는 영어로 다른 승차장으로 가서 대체버스를 기다리는데 정말 만원이었다. 혼자 탈 수는 있지만 가방을 실을 수가 없어 포기했다. 다음 버스를 기다리는데 사람은 엄청 많은데 차는 올 기미도 안 보인다. 옆에 있는 경찰에게 문의해 보니 자기는 웃으면서 경찰이지 버스회사 직원이나 공항 안내 직원이 아니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자동소총을 손에 쥐고 있고 이런 저런 무기로 보이는 것들을 주렁주렁 차고 있으니 공항 경비대가 마치 특공대와 비슷해 보인다. 먼발치 트램이 지나가는 곳에는 단지 교통 경찰 한 명이 자신이 타는 오토바이로 교차로 길 전체를 차단하고 있는 것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다. 

사진은 시위대가 지나가는 도로를 자신의 오토바이로 차단하고 있는 교통경찰의 모습 / 하도겸 제공
사진은 시위대가 지나가는 도로를 자신의 오토바이로 차단하고 있는 교통경찰의 모습 / 하도겸 제공

버스를 기다리다 혹시나 해서 구글 맵을 열어보니 숙소까지가 10분정도의 거리라고 뜬다. 숙소에서도 대충 15유로면 온다고 하니 요금이 세배나 하지만 가까운 거리여서 부득이 택시를 탔다. 그런데 시간은 10여분정도로 큰 문제가 없었지만 택시비는 23유로나 나왔다. 벤츠를 타서 그런건가? 혹시 더 싼 소형 택시가 따로 있는지 기사분께 물어보니 없다고 한다. 택시요금보다 싼 우버가 있지만 15유로보다는 좀 더 나온다고 한다. 택시요금은 프랑크푸르트 시내의 모든 택시가 같고 기본 요금 3.5유로를 내고 타자마자 킬로당 2유로씩 올라간다. 결국 1유로를 사는데 우리 돈으로 1,300원정도 하니 킬로당 2,600원정도 오르는 셈인가보다. 우리나라처럼 얼마간의 거리가 기본요금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게 무척 아프다. 하지만, 그래도 시간거리병산제는 아닌 듯해서 차가 신호대기 하고 있을 때 덜 불편했으니 그냥 다행인 셈 친다. 지체시 택시 요금이 막 올라갈 때 가슴을 쓸어내린 아픔이 아직도 무의식 속에 남아 있나 보다.

숙소에 짐을 풀고 늘 하던대로 동네 슈퍼마켓을 찾았다. 우유도 사고 맥주랑 와인 그리고 안주거리도 샀다. 유럽 물가가 비싸다고 하지만 프랑스나 독일은 기본 식자재와 주류와 음료 등은 모두 매우 저렴한 느낌이었다.

짐을 들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포르투갈 식료품점이 보인다. 포도주에 브랜디를 섞은 포르토 와인이 있어서 가격을 물으니 우리보다는 싸지만 그리 싼 것도 아니어서 망설이는데 친절하게 먹어보라고 다른 와인 한 잔을 따라준다. 순대처럼 생긴 붉은 소시지도 몇조각 잘라준다. 심지어 옆에서 서서 한잔 하던 독일인들까지도 한 잔 따라주며 마셔보라고 권한다. 인도에서는 받아먹지 않겠지만, 여기가 독일이라는 ‘편견’과 ‘선입견’에 사로잡혀 그냥 냉큼 받아마신다. 그렇게 술을 팔고 그 자리에서 간단한 안주와 함계 한잔 하는 곳인가 보다. 나중에 보니 그런 곳이 참으로 많았고 가격은 슈퍼보다 비싸지만 일반 술집보다는 매우 싸서 귀가길 에 서민들이 들려서 한잔하고 가는 곳이었다. 동네 선술집인데 서서 먹으며 슈퍼에서 파는 가공품 안주만 판다는 점이 색다르다. 서민들이 창업하기에는 초기 비용이나 사둬야 할 상품도 적어서 청년 창업을 위한 틈새시장으로 좋은 아이디어 같은데 맞는지 모르겠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계속해서 박물관 미술관 투어에 나섰다. 하루에 몇군데씩 강행군을 하다보니 저녁 6시전에 이미 2만보를 넘는다. 겨울이어서 해가 빨리 저물어서 이미 어둠이 내려와 있었다. 박물관 카페나 레스토랑에서 틈틈이 먹다가 숙소로 돌아간다. 아침에는 파업으로 없었던 버스가 멀리서 온다. 18시부터 풀린 것인가? 다행이다 싶어서 바로 올라타니 10여분 가다가 종착역도 아닌 듯 싶은 곳에서 갑자기 버스가 완전히 정차한다. 의아해하고 있는데 기사분이 손님들에게 다 내리라며 자신도 작은 검은색 손가방을 하나 들고 내린다. 붙들고 물어보니 영어가 거의 안 된다. 피장파장이다. 순간 바로 옆자리에 있던 여자 대학생 같은 손님에게 물어보니, “버스가 더 못가요. 갈아타야 해요. 이유는 설명하기 어려워요”라고 우리말로 답한다. 한국인걸 아는 것도 놀라운데 우리 말이라니….

종착역도 아닌 듯 싶은 곳에서 갑자기 버스가 완전히 정차해 당황하고 있을 때, 여대생으로 보이는 버스승객이 한국어로 “버스가 더는 못가 갈아타야 한다”고 설명한다. 놀라서 물으니 방탄소년단(BTS·사진) 팬인 아미(ARMY)여서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다고 한다. 머나먼 유럽에서 우리나라 K-pop 스타들의 덕을 이렇게 보다니 참으로 자랑스런 나라이며 좋은 세상이 된 것 같다. BTS 만세! ARMY 만세! / 사진=뉴시스
종착역도 아닌 듯 싶은 곳에서 갑자기 버스가 완전히 정차해 당황하고 있을 때, 여대생으로 보이는 버스승객이 한국어로 “버스가 더는 못가 갈아타야 한다”고 설명한다. 놀라서 물으니 방탄소년단(BTS·사진) 팬인 아미(ARMY)여서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다고 한다. 머나먼 유럽에서 우리나라 K-pop 스타들의 덕을 이렇게 보다니 참으로 자랑스런 나라이며 좋은 세상이 된 것 같다. BTS 만세! ARMY 만세! / 사진=뉴시스

놀라서 물으니, 방탄소년단(BTS) 팬인 아미(ARMY)여서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다고 한다. 스크라이크 때문이냐고 했더니 그렇다고 한다. 우리 말로 ‘파업’이라고 한다고 가르쳐주고는 내리는데 친절하게 부근 버스 정류장까지 안내해준다. 숙소 부근 정류장을 말하니 “저도 그 버스를 타요”라며 우리 말로 하며 미소를 짓는다. 그러고 보니, 옆 좌석에 앉아 있던 한 중년 여성도 한국인임을 알고는 버스가 정차할 때마다 계속해서 “더 가야 한다”며 가는 방법을 알려주려고 노력한다. 머나먼 유럽에서 우리나라 K-pop 스타들의 덕을 이렇게 보다니 참으로 자랑스런 나라이며 좋은 세상이 된 것 같다. BTS 만세! ARMY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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