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으로 높은 위상과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미쉐린 가이드가 국내에서 불미스런 의혹에 휩싸였다. /미쉐린 가이드 서울 홈페이지
전 세계적으로 높은 위상과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미쉐린 가이드가 국내에서 불미스런 의혹에 휩싸였다. /미쉐린 가이드 서울 홈페이지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전 세계적으로 높은 위상과 권위를 자랑하는 미쉐린(미슐랭) 가이드가 ‘별 장사 의혹’에 휩싸였다. 미쉐린 가이드의 신뢰에 큰 타격을 줄 뿐 아니라 근간을 흔들 수 있는 중대 사안이다.

◇ 120년 역사 자랑하는 ‘미식의 성서’

미쉐린 가이드는 프랑스의 타이어 제조회사인 미쉐린이 매년 봄에 발간하는 가이드북이다. 해당 지역의 숙박시설과 식당을 소개하고, 관광명소 정보도 담고 있다.

미쉐린 가이드의 역사는 무려 19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쉐린타이어를 설립한 미쉐린 형제는 운전자들에게 유용한 정보다 담긴 무료 가이드북을 제작·배포했다. 자동차 여행이 늘어나면 자연스레 타이어 소비도 늘어날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가이드북엔 자동차정비방법과 각종 도로법규, 주유소 등의 정보와 함께 식당 정보도 담겼다.

1922년 유료 가이드북으로 전환한 미쉐린 가이드는 그만큼 양질의 내용을 실었다. 특히 식당 정보는 ‘맛집 길잡이’로 위상을 점점 높여갔다. 1950년대 들어 유럽의 다른 국가를 대상으로도 발간됐고, 일본과 홍콩·마카오, 미국(샌프란시스코, 뉴욕)에 이어 2010년대 중반부터는 한국을 비롯해 중국과 싱가포르 등 아시사권으로 발을 넓혔다.

미쉐린 가이드는 명실상부 세계 최고의 ‘미식 가이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식당과 요리사들은 이른바 ‘미슐랭 스타’를 따내는 것을 최고의 영예로 여긴다. 손님들 역시 미슐랭 식당에서 식사를 한 것이 큰 자랑거리가 된다.

이 같은 위상은 엄격한 선정 기준 및 과정에 의해 만들어졌다. 전문성을 갖춘 평가원이 해당 식당을 몰래 방문해 평가를 진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재료부터 가격에 이르기까지 모든 부분을 꼼꼼히 살피며, 정기적으로 재평가를 진행해 자격을 박탈하기도 한다.

◇ ‘미쉐린 가이드 서울’ 발간 전부터 접촉

그런데 최근 미쉐린 가이드의 위상에 전면으로 배치되는 의혹이 국내에서 제기돼 큰 파문이 일고 있다. 미슐랭 가이드의 식당 선정에 금전거래가 작용했다는 충격적인 의혹이다.

KBS는 지난 12일부터 미쉐린 가이드를 둘러싼 의혹을 연속보도하고 있다. 의혹의 시발점은 국내 한 유명 한식당 윤가명가다. 윤가명가 측은 미쉐린 가이드 관계자로부터 은밀한 제안을 받았다고 폭로했다.

제안을 받은 시점은 아예 ‘미쉐린 가이드 서울’이 발간되기 전이다. 미쉐린 가이드 관계자는 ‘미쉐린 가이드 서울’이 발간될 예정이라며 ‘별 3개’에 부합하는 식당 오픈을 제안했다. 윤가명가 측은 이에 응해 식당 문을 열었고, 이 관계자가 사전에 알려주는 대로 미쉐린 가이드의 평가도 진행됐다. 아울러 ‘미쉐린 가이드 서울’ 발간 추진 소식도 알려지기 시작했다.

미쉐린 가이드 측은 지난 14일 ‘미쉐린 가이드 서울 2020’를 발표했다. /미쉐린 가이드 서울 홈페이지
미쉐린 가이드 측은 지난 14일 ‘미쉐린 가이드 서울 2020’를 발표했다. /미쉐린 가이드 서울 홈페이지

이후 이 관계자는 연간 2억원가량의 비용이 드는 컨설팅을 제안했다. 하지만 윤가명가 측은 이에 응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후 발간된 ‘미쉐린 가이드 서울’엔 윤가명가가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별이 부여되지 않은 것은 그렇다 쳐도, 간단한 식당 소개리스트에서 조차 빠진 것이다. 반면 당시 언급됐던 다른 두 식당은 모두 최고점수인 ‘별 3개’에 꼽혔다. 2016년 첫 발간 때부터 최근 발표된 2020년 버전까지, ‘별 3개’를 받은 곳은 이 두 식당뿐이다.

의혹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KBS는 윤가명가 측에 은밀한 제안을 한 관계자 뒤에 어니스트 싱어라는 인물이 존재한다고 밝혔다. 주목할 점은 그의 아내가 홍콩과 싱가포르에서 미슐랭 가이드에 선정된 식당들의 공동소유자라는 것이다. 이 두 식당은 각각 개업한지 석 달과 넉 달 만에 미쉐린 가이드의 선택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밖에도 싱어의 컨설팅 회사와 관련된 미쉐린 가이드 식당들은 일본 등 곳곳에 존재했다. 또한 싱어가 미쉐린 가이드의 고위관계자와 밀접한 관계에 있는 정황도 포착됐다.

◇ 수상한 그 남자… 미쉐린 가이드는 ‘모르쇠’

이러한 의혹과 정황은 미쉐린 가이드의 신뢰도와 위상을 뒤흔든다. 미쉐린 가이드가 지금의 위치에 이를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기본은 신뢰도와 공정성이다. 무엇보다 철저히 비밀리에 이뤄지는 것으로 알려진 평가가 핵심이었다.

이번 의혹은 미쉐린 가이드뿐 아니라 국내에서 ‘별 3개’를 받은 두 식당들을 향해서도 곱지 않은 시선을 낳고 있다. 또한 ‘별 2개’ 및 ‘별 1개’와 ‘빕 구르망(해당 지역의 가볼만한 식당)’에 선정된 식당들도 엉뚱한 불똥을 맞게 됐다. 특히 ‘미쉐린 가이드 서울 2020’ 공개를 앞두고 의혹이 불거지면서 김이 빠지게 된 모습이다.

이와 관련해 미쉐린 가이드 측은 ‘별 장사’ 의혹을 전면 부인한 상태다. 의혹의 중심에 선 인물이 미쉐린 가이드 측 관계자가 아닌 것은 물론, 어떠한 관계도 없다고 해명했다. 외부의 컨설턴트 혹은 브로커가 벌인 일일 뿐이며, 이전에도 관련 의혹을 조사했지만 문제가 없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해명과 주장은 크게 힘을 얻지 못하고 있다. 싱어와 관련된 미쉐린 가이드 식당들이 곳곳에서 포착된 데다, 컨설팅과 미쉐린 가이드 선정 사이의 연관관계에 대해선 뚜렷한 해명을 내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욱이 ‘미쉐린 가이드 서울’은 한국관광공사와 한식진흥원이 2016년 20억원을 지원해 발간이 시작됐다. 그런데 선정 절차에 중대한 의혹이 제기되면서 정부 지원과 관련된 논란 또한 피할 수 없게 됐다. 이미 일각에선 20억원을 토해내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미쉐린 가이드가 지니고 있던 명성과 위상만큼이나 거센 후폭풍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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