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재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박영재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성찰배경: 도로교통공단이 최근 발표한 음주운전 교통사고 통계자료(2018년)에 따르면 19,381건의 사고 가운데 부상자가 32,952명이고 사망자가 346명(안타깝게도 한국의 미래를 짊어질 40세 미만이 169명)이었습니다. 특히 이 가운데에는 지난해 9월 부산에서 군 복무 중 휴가를 나왔다가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숨진 꽃다운 22살의 윤창호 씨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인명피해를 낸 운전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한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2018년 12월 18일부터 시행되기 시작했습니다. 더 나아가 올해 들어와 음주운전 기준을 더욱 강화한 ‘개정 도로교통법’이 지난 6월 25일부터 시행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11월 17일 경찰청 보도자료에 따르면 2019년 9월 9일부터 10월 28일까지 50일 동안 난폭・보복 운전과 음주운전 등 교통안전에 심각한 위협이 되는 위험 운전행위를 집중적으로 단속하여 11,275명을 검거하였는데, 특히 이 가운데 음주운전이 10,593명으로 대부분을 차지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법을 아무리 강화하고 언론매체 등을 통해 이를 널리 홍보해도 통계자료가 말해주듯이 술꾼들이 일단 음주를 하게 되면 거의 대부분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하고 무모하게 운전대를 잡고 운전을 하게 되는데, 이는 곧 사고로 이어질 확률이 높습니다. 참고로 언론매체를 통해 잊을 만하면 보도되고 있는 소위 명사로 알려진 분들이나 그 가족이 일으키는 음주 관련 사고 이후, 삶이 황폐화되거나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분들도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본인들의 직위와 금전과 명예에 치명적이라는 것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물론 보통 사람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나 다만 통계로만 잡힐 뿐 보도가 거의 되고 있지 않을 뿐이라고 사려됩니다.

따라서 한국이 선진국으로 진입하려는 길목에서 이제는 우리 국민 모두 이런 음주 문화를 철저히 바꾸어야 할 때라 판단되어 이번 글에서는 ‘바람직한 음주 문화 정착’에 대해 몇 가지 관점에서 함께 성찰해 보고자 합니다.

◇ 술 관련 사자성어

먼저 동양의 전통사회에서 경계(警戒)하는 술 관련 사자성어 두 가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몸뚱이를 ‘술’이나 ‘밥’을 담는 가죽주머니로 빗대어 부르는 ‘주낭반대(酒囊飯袋)’는 허우대가 멀쩡한 이가 게으르고 무능할 때 이들을 비꼬는 말입니다. 물론 이들이 주위 사람들에게 크게 피해를 주는 일은 없습니다.

한편 이와는 반대로 ‘술이 입으로 들어가면 혀가 나온다’는 뜻의 ‘주입설출(酒入舌出)’은 그 문제가 심각합니다. 왜냐하면 음주 후 보다 자만감이 고조되며 폭언과 욕설 등을 포함해 강도 높은 갑질을 하여 을에게 깊은 상처를 주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주위 분들이 말려도 이 정도 술 마신 것으로는 충분히 운전할 수 있다고 과신하는 경향이 있는데, 경우에 따라 의도와는 다르게 음주 후 운전을 하다가 안타깝게도 자신에 대해 자살, 자살미수 및 자해 행위를 하거나, 타인에게는 살인, 살인미수 및 상해 행위에 해당하는 돌이킬 수 없는 사고를 일으키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 두 지인의 엇갈린 사례

비록 삼십여 년 전 일입니다만 필자의 지인 가운데 음주 단속이 거의 없는 지방 소재 대학에 재직 중이던 인문학 전공의 교수 두 분 사례를 들어보겠습니다. 두 분 모두 적당히 술을 마신 후에도 늘 상습적으로 운전을 했습니다. 한 분은 그러나 만취 상태가 되면 늘 습관적으로 차를 술집 근처에 두고 귀가하곤 했는데, 그러던 어느 날 아침 ‘내가 어제 시내 어디에 주차를 했지?’하며 집 현관을 나서는데 바로 눈앞에 차가 주차되어 있는 것을 보고 갑자기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고 합니다. 그날 이후 이 분은 차키를 집에 다수 복사해 놓고 술 마시는 날은 차키를 찾지 못하도록 멀리 던져버리고 편안하게 술을 마셨다고 합니다. 필자는 그 무렵 이후 다시 만난 적은 없지만 음주 후 절대로 운전하지 않았던 이 분은 자신만의 비법(秘法) 덕에 별 탈 없이 지내다 재직 대학교에서 총장까지 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비록 음주운전을 하지 않는 비법일지는 모르겠지만, 이 역시 자신의 몸을 상하는 것은 막지 못하는 우법(愚法)임에 틀림없을 것입니다.

한편 다른 한 분은 어느 날 새벽 1시쯤 술자리가 파하고 평소처럼 음주운전을 하며 귀가하다가 자동차 도로에 누워 자던 만취 상태의 술꾼 위를 달려가는 바람에 사망사고를 일으키고는 교수직에서 해직된 것은 물론이고 살던 아파트를 팔아 유족과 합의 보상하고도 6개월 정도 옥살이를 했다고 들었습니다. 물론 그후 정신차려 철저히 금주(禁酒)하며 해외연구기관에서 좋은 연구성과를 내다가 5년쯤 경과 후 어렵게 다시 교수직에 복귀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는 인터넷이 발달하기 이전 시절이라 가능했지, 빅데이터를 활용하는 지금은 이름만 치면 수십 년 전의 이력까지 몽땅 검색되는 시절이라 정상적인 사회 복귀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 사려됩니다.

◇ 대중교통 이용의 장점

이번에는 지금껏 음주운전을 해본 적이 없는 필자의 경우입니다. 필자는 1994년 무렵부터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출퇴근을 대중교통을 이용해 오고 있습니다. 그전까지는 출근할 때 무조건 자가용 차를 타야만 하는 것으로 알았으나, 한 학기에 한두 번 저녁 때 술 마실 일이 생겨서 버스나 지하철을 몇 번 이용한 뒤로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는데 재미가 들렸습니다. 왜냐하면 몇 번 대중교통을 이용하다 보니 자가용을 몰고 출퇴근하는 시간보다 더 빠를 때가 많고 이동하는 동안 자유로이 활용할 시간이 많이 늘어나게 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시간을 맞추어 갈 일이 있는 모임은 지하철을 타면 어김이 없다는 장점도 알았습니다.

참고로 만일 교통관계자들이 왜곡된 버스노선을 지하철과의 합리적인 연계를 통해 시민들이 보다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한다면, 보다 많은 분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할 것이라 생각됩니다. 물론 이용자 자신들도 한두 정거장 정도는 걸어 다닐 마음의 준비를 해야만 하겠지요. 그런데 한두 정거장 걷는 것은 사실 우리 모두의 건강을 위해서도 좋습니다. 자가용만 타고 다녀 운동부족이 됐다며 비싼 돈을 내고 헬스클럽을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조금은 한심한 생각이 듭니다. 사실 그 돈이면 불우한 이웃을 돕는 등 뜻있게 활용할 수 있겠지요.

참고로 필자의 경험을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대중교통을 이용하니까 직접 운전을 하지 않기 때문에 신경 쓸 일이 없어서 피곤하지도 않고 차 타는 시간 동안 자기성찰 명상이나 독서를 포함해 전날 강의 준비한 내용을 다시 머릿속으로 되새겨 볼 시간도 생겨 학생들이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가르치게 되었습니다. 또한 집에 차를 놓고 다니니까 주말이 아닌 주중에는 아내가 교통이 혼잡하지 않은 시간을 이용하여 혼자 장을 보러 가게 되면서 주말 교통난 해소에 일조할 뿐만 아니라 필자는 필자대로 주말을 아내와 함께 아름다운 국토순례 등을 포함해 보다 보람 있게 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 건전한 음주 문화 정착을 위하여

수년 전 출근길에 전철역 근처에서 무언가를 열심히 주워 먹고 있는 비둘기 떼를 목격하고 자세히 살펴보니 전날 취객(醉客)이 토한 토사물(吐瀉物)을 먹고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전철을 타고 학교로 출근하다가 불현듯 필자의 예전 토사 사건이 떠올랐습니다. 30여 년 전 추석 연휴 직전에 새로 귀국해 교수가 된 친구를 환영하기 위한 저녁 회식이 있었는데 이때 2차까지 갔다가 사업하는 친구가 갑자기 만들어 권한, 말로만 듣던 ‘폭탄주’를 난생 처음 얼떨결에 한 잔 받아 마시고 집까지는 무사히 왔으나 화장실로 직행해 다 토해내고는 연휴 내내 자리에 누워 끙끙 앓았던 추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크게 곤욕을 치르고는 폭탄주를 지금껏 다시 마신 적은 없습니다. 사실 인간인 이상 살아가면서 이런 경우를 한 번은 겪을 수도 있겠지만 두 번 다시 반복하지 않는 것이 지혜로운 삶의 태도일 것입니다.

또한 우리 모두 각자 자기 자신의 음주 태도를 조금만 깊이 돌이켜보면 저녁 회식 때 술은 분위기에 맞추어 한두 잔 정도 하며 담소를 나누다가 일찍 헤어지질 경우 건강에도 좋고, 대중교통을 이용해 귀가하기도 쉽고, 2차나 3차까지 가서 쓸 돈 역시 절약해 어려운 이웃들과 함께 나눌 수도 있으니 두루 이롭겠지요.

◇ 음주의 멋진 쓰임

끝으로 선종(禪宗) 가운데 스승인 동산(洞山) 선사와 함께 조동종(曹洞宗)을 창종한 조산(曹山) 선사께서 ‘음주’를 자기성찰 수행을 위해 멋지게 활용한 화두가 <무문관(無門關)> 제10칙에 담겨있어 소개를 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조산 선사께 한 승려가 와서 ‘저, 청세(淸稅)는 외롭고 가난합니다. 선사께서 부디 가르침을 베풀어 주십시오’라고 간청했다.
그러자 조산 선사께서 ‘청세 스님!’하고 불렀다.
그러자 청세가 ‘네’하고 대답했다.
이에 조산 선사께서 ‘독주로 소문난 청원(靑原)의 백가주(白家酒)를 석 잔이나 들이키고도 아직 입술도 젖지 않았다고 하느냐?’라고 일갈(一喝)하셨다.

한편 이 화두에 대해 <무문관>을 편찬한 혜개(慧開) 선사 역시 ‘청세는 어쩌자고 시비를 걸었을까? 조산 선사의 안목이 청세의 어리석은 수작을 벌써 간파했다네. 자, 그건 그렇더라도 어디 말해보아라. 대체 어디가 청세가 청원의 백가주를 석 잔이나 들이킨 자리인가?’라고 제창하며 ‘음주’를 멋지게 활용해 문하의 제자 한 사람이라도 더 ‘참나’를 체득하게 하려고 애쓰셨습니다.

결론적으로 이번 글에서는 ‘바람직한 음주 문화 정착’에 초점을 맞추어 살펴보았는데, 화두의 의도를 좀 더 깊이 성찰해 보면 자동차를 운전하는 ‘만취 운전자’가 일으키는 사고에 비해, 몸뚱이를 운전하며 끌고 다니는 (‘참나’를 바르게 체득하지 못한) ‘가짜나’가 일으키는 사고는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그야말로 대참사일 것입니다. 비록 극단적인 보기입니다만 히틀러를 포함해 독재자들이 인류에게 저지른 일들을 상기해 보면 자명하겠지요.

따라서 각 분야를 이끌고 있는 지도층 인사들이 날마다 일상 속에서 ‘참나’ 체득을 위해 치열하게 자기성찰의 삶을 이어간다면, 취생몽사(醉生夢死)하지 않고 지혜롭게 해당 분야에서 멋진 발자취를 남기다가, 임기를 마칠 때 대부분의 대중들로부터 지탄(指彈)이 아닌 찬탄(讚歎)을 받으며 영예롭게 물러날 수 있게 되겠지요.

박영재 교수는 서강대에서 학사, 석사, 박사(전공분야: 입자이론물리학) 학위를 받았다. 1983년 3월부터 강원대 물리학과 교수를 역임했으며, 1989년 9월부터 서강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서강대 물리학과장, 교무처장, 자연과학부 학장을 역임했다.

한편 1975년 10월 임제종 양기파의 법맥을 이은 선도회 초대 지도법사이셨던 종달 선사 문하로 입문한 박 교수는 1987년 9월 스승이 제시한 간화선 입실점검 과정을 모두 마쳤다. 1990년 6월 종달 선사 입적 이후 지금까지 선도회(2009년 사단법인 선도성찰나눔실천회로 새롭게 발족) 지도법사를 맡고 있다. 한편 1991년 8월과 1997년 1월 화계사에서 숭산 선사께 두 차례 입실 점검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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