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종 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장.
이영종 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장.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금강산 지역 내 남한 측 시설물에 대해 “너절하다”며 철거를 지시(10월 23일 북한 매체 보도)한지 한 달을 넘기고 있다. 북한은 우리 정부 당국과 현대아산 등 사업자의 협의 요구조차 거부하며 철거 강행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이미 군 병력을 동원해 식당·휴게 시설인 온정각과 숙소 등에 대한 철거 작업을 벌이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통일부와 관계 당국은 북한의 철거 입장이 남측에게 금강산 관광 재개를 압박하기 위한 움직임이라 해석하지만 북한의 입장은 점점 철거 강행 쪽으로 굳어지는 분위기다. 이대로 가면 금강산 관광은 10년 넘은 장기 중단 상태를 넘어 완전한 파국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우리 건축 관계자들은 김정은의 발언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금강산 지역 내 한국 측이 설치한 건물이나 시설의 경우 1998년 11월 시작된 관광사업 진행을 위해 최소한의 편의 시설로 지어진 것이다. 그러다보니 가건물 형태나 임시 시설 형태로 건설된 것이 많다. 남북 간의 합의에 따라 건물이 설계됐고, 북한 측이 사안마다 깐깐하게 들여다보며 공사의 진행이 이뤄졌다.

북측으로 가는 관문인 CIQ(출입경 검사소)와 교예(서커스) 공연장인 문화회관의 경우 대형 천막 같은 모양새로 건립됐다. 이런 사정을 무시하고 김 위원장이 “민족성이라는 것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거나 “건축미학적으로 심히 낙후됐다”는 등의 표현을 동원한 것은 부적절해 보인다.

무엇보다 2008년 7월 북한 경비병에 의한 남한 관광객 피격 사망 사건이 발생하면서 관광이 전면 중단됐고, 북한 측이 현대아산 등 관리 주체의 현장접근을 막는 바람에 노후화하고 일부는 파괴되거나 무너지는 등 건축물로서의 제대로 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됐다. 선상 호텔인 해금강 호텔의 경우 페인트칠 등 관리가 되지 못한 채 바닷물과 해풍에 시달리며 녹슨 상태로 방치돼 마치 유령선을 방불케 할 정도다.

이런 곳을 둘러보고 ‘남측 건축물=너저분하다’라는 식으로 몰아 부치고 일방적인 철거를 지시한 건 경우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북한에서 ‘건축’은 ‘건물이나 구조물을 구상하고 설계하여 세우거나 쌓아서 사람들의 생활과 활동에 필요한 정신적 및 물질적 조건을 보장하여 주는 일’(조선말대사전, 2006년 평양)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사전적 규정보다 앞서 ‘건축은 사람의 생활과 활동에 필요한 정신적 물질적 조선을 보장하여 주는 수단’이라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저술물 「건축예술론」의 문구를 조선말대사전 용어 설명에 올리고, ’건축은 종합예술‘이라는 구절에는 ‘위대한 장군님의 명언’이란 찬양을 붙여놓은 대목이 눈길을 끈다. 건축이 철저하게 체제의 이데올로기에 복속되어 있음을 엿보게 한다는 점에서다.
 
2011년 12월 김정일 사망으로 집권한 김정은은 건축·건설에서의 주체를 강조하면서도 자기 시대의 건축·건설 미학을 세우겠다며 각별한 관심을 기울였다. 집권 첫해인 2012년에만도 김정은에 의해 평양시 창전거리와 인민극장, 평양아동백화점, 능라인민유원지, 류경원, 인민야외빙상장, 평양민속공원이 잇달아 완공됐다. 평양 대동강변에는 53층 주상복합 아파트를 비롯해 46층짜리 쌍둥이 고층아파트를 짓는 등 스카이라인이 바뀐다고 할 정도의 건설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물론 부실공사 등 그늘도 있다. 지난 2014년 5월에는 건설 중이던 평양 평천구역 23층 아파트 붕괴로 대규모 사상자가 발생하는 참사가 빚어졌다.

사실 건축·건설 분야에 대한 북한 최고지도자의 각별한 관심은 김정은이 처음은 아니다. 아버지이자 선대 수령인 김정일도 1974년 2월 노동당 5기8차 전원회에서 후계자로 내정된 이후 1994년 7월 김일성 사망으로 권력을 넘겨받기까지 20년간 김일성 유일영도체계 확립과 함께 대형 건축·건설 프로젝트에 주력했다.

하지만 김정은의 경우 이를 뛰어넘는 각별한 애정을 드러내고 있다. 강원도 문천에 마식령스키장을 건설한 것과 함께 평양에는 문수물놀이장이나 미림승마구락부, 능라인민유원지 등이 들어섰다.

김정은의 건축 드라이브는 대북제제에도 불구하고 지속되고 있다. 김정은은 지난 10월 중순 백두산과 양강도 삼지연군 건설 현장을 방문했는데, 북한 매체들은 그가 “백두의 첫눈을 맞으시며 몸소 백마를 타시고 백두산정에 오르시었다”(10월 16일자 조선중앙통신)고 보도했다.

김정은은 백두산 입구에 자리 잡은 삼지연군의 인민병원과 치과전문병원 건설사업, 삼지연들쭉음료공장 등을 현지지도 했는데, 이 자리에서 “지금 나라의 형편은 적대세력들의 집요한 제재와 압살 책동으로 의연 어렵고 우리 앞에는 난관도 시련도 많다”고 토로했다. 대북제재로 인한 고충을 공개적으로 밝힌 것이다.

그는 “우리는 적들이 우리를 압박의 쇠사슬로 숨조이기 하려 들면 들수록 자력갱생의 위대한 정신을 기치로 들고 적들이 배가 아파 나게, 골이 아파 나게 보란 듯이 우리의 힘으로 우리의 앞길을 헤치고 계속 잘 살아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북제재에도 불구하고 삼지연군 건설과 강원도 원산 해양리조트 건설에 주력하고 있는 그의 의도를 알 수 있게 하는 언급이다.

그러나 김정은이 간과하고 있는 게 있다. 유엔과 국제사회가 북한에 부과하고 있는 대북제제는 핵 실험과 미사일 도발로 한반도는 물론 지구촌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북한 정권에 대한 징벌이다. 북한의 우방국인 중국도 동참하지 않을 수 없는 명백한 위반 행위다. 그런데 대북제재에 대해 오기에 가까운 고집을 부리며 주민들과 군인 건설자들을 변변한 장비나 건설 자재가 턱없이 부족한 공사장으로 내모는 건 문제다. 체제과시형 공사에 재정과 자원이 과도하게 쏠리면서 결국 민생은 그만큼 어려워질 수 밖에 없다는 점도 지적된다.

금강산 지역 내 남측 시설물의 철거를 김정은이 일방적으로 주장하고 나선 것도 설득력이 떨어지는 조치다. 아버지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승인한 사안을 이제 와서 ‘선대의 잘못’ 운운하며 부정하고, 9억4,200만 달러의 관광대가를 받기로 하고 체결한 현대와의 독점계약 마저 파기하는 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다.

설사 남측 사업자와 결별하고 중국 등 해외 관광객을 유치하려 나선다 해도 관광합의나 시설투자 약속을 손바닥 뒤집듯 하는 북한과 함께 사업을 벌이려 할 파트너를 찾기는 쉽지 않을 공산이 크다.

금강산을 제대로 된 관광 자원을 개발하고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명소로 만들려면 무엇보다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 약속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 10년 넘게 방치된 남측 시설의 노후화를 탓할 것이 아니라 개혁·개방을 통해 제대로 된 손님맞이를 할 수 있는 여건과 환경을 만드는 게 김정은 위원장이 해결해야 할 진짜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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