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지난 20일 영국 옥스퍼드 영어 사전은 ‘기후 비상사태(Climate Emergency)’를 올해의 단어로 선정했네. 기후 비상사태란 ‘기후 변화로 인한 잠재적이고 되돌릴 수 없는 환경피해를 피하기 위해 더 긴급한 행동이 필요한 상황’이라는 뜻일세. 올해 최종 후보 명단에 오른 단어들에는 ‘기후 위기(climate crisis)’, '기후 대응행동(climate action)’, '멸종(extinction)‘, '비행 수치(flight shame)’, '지구 가열(global heating)’, ‘식물성(plant-based)’ 등 기후변화와 관련된 단어들이 많았네. 그만큼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기후 위기가 심각하다는 걸 보여주고 있는 거지. 후보에 오른 ‘비행 수치’는 온실 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비행기를 타고 여행하는 수치네. 이달 초 옥스퍼드 사전에 앞서 발표한 콜린스 사전의 올해의 단어는 '기후 파업'(climate strike)이었네.

‘위험에 처해 있는 지구’는 이제 영화의 한 장면이 아니고 실제 위급상황일세. 153개국 1만1000여 명의 과학자들이 지난 11월 5일에 발간된 과학학술지 <바이오 사이언스>에 인류가 즉시 기후위기에 대응하여 행동하지 않으면 파멸적 재앙이 닥칠 것이라는 공동성명을 게재했네. 과학자들은 "지구가 기후위기에 처해 있음을 분명하게 선언한다"면서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서 삶의 방식을 바꿔야만 한다"고 경고했어. 기후변화가 인류에게 미칠 악영향이 지금까지 과학자들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해졌고, 그래서 더 이상 시간을 허비해서도 안 된다고 호소하고 있네. 기후위기의 가속화로 인류가 파멸적 위기(catastrophic threats)에 직면해 있으니 모두가 즉시 함께 행동해야 한다는 거야.

11월 25일 세계기상기구(WMO)는 지구 온난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 농도가 2018년 407.8ppm으로 2017년 405.5ppm에서 2.3ppm 증가했다고 발표했네. 2005년부터 2015년까지의 연평균 증가 속도가 2.06ppm이었으니 더 빨라진 거지. 11월 26일에는 유엔환경계획(UNEP)이 '온실가스 격차 보고서'를 공개했는데, 2018년 온실가스 배출량이 553억t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는군. 온실가스 배출을 이대로 내버려 두면 지구의 온도가 금세기에 3.2℃가량 치솟는다네. 파리협약에서 장기 목표로 제시한 1.5℃의 2배가 넘는 수치일세. 2015년 세계 195개국이 서명한 파리 기후 변화 협약에서 각국은 지구 평균 기온 상승 수준을 산업화 이전 대비 2℃ 이내로 제한하고, 1.5℃를 넘지 않도록 노력하자는 데 합의했었지.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온실가스 농도가 감소하기는커녕 점점 더 늘어나고만 있으니 앞으로 닥칠 치명적인 기후 재앙들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제 점진적인 변화보다는 근본적인 변혁이 필요한 때가 된 것 같네. 무엇보다 먼저 근대 문명의 뿌리인 인간중심주의로부터 벗어나야 해.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교만도 버려야 하고. 137억년의 우주 역사에서 인간이 지구상에 나타나 문명을 일구며 살아온 건 1만 년도 채 안 되네. 우리 한민족의 시조라는 단군이 백두산에서 나라를 연 것도 4352년밖에 되지 않거든. 그런 인간들이 38억 년 전부터 지구에서 살기 시작한 다른 생명체들을 포함한 자연을 무자비하게 착취하기 시작한 게 대략 300년 전부터야. 그게 이른바 서양의 근대문명이지. 그때부터 인간은 지구에 사는 많은 생명체들 중 가장 사납고 고약한 짐승이 되어버린 게 사실이야. 그러니 기후 비상사태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연생태계를 바라보는 인간의 시각부터 바꿔야 하네. 미국의 천문학자 할로 섀플리가 말한 대로 인간이 “뒹구는 돌들의 형제요, 떠도는 구름의 사촌”이라는 걸 알아야 해. 자연을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자원이나 도구로 보는 근대적 세계관에서 벗어나 자연과 인간을 동등한 존재로 인정하는 생태 윤리를 회복해야만 기후 위기에 대한 근본적인 처방도 가능할 걸세.

누구나 마음만 있다면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소비를 줄이는 걸세.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를 당연시하는 자본주의 체제의 소비주의 이데올로기로부터 해방되어야 하네. 많이 소비하는 게 나라 경제에도 좋고 내 욕구 충족에도 좋다고 부추기는 자본의 거짓 선전에 넘어가지 말아야 해. 소비주의는 ‘원츠(wants)’를 ‘니즈(needs)’인 것처럼 받아들이게 만드는 속임수야. 하루하루 생활하는 데 없어도 별 지장 없는데도 그게 꼭 필요한 물건인 것처럼, 그래서 그것 없으면 행복해질 수 없는 것처럼 사람들을 속이지. 지금 있는 곳이 어디든 주위를 둘러보게나. 인간이 살아가는 데 별로 필요 없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일시적으로 갖고 싶은 마음이 생겨서 샀다가 한두 번 사용하고 서랍이나 장롱 속에 처박아 놓은 물건들이 얼마나 많은가? 기후 비상상황에서 개인들은 지속가능한 소비를 해야 하네. 가능하면 소비를 줄이고, 지역 상품이나 유기 농산물을 사고 공정 무역 상품을 사용하는 일부터 시작해보세. 세계 여기저기서 기후 위기를‘전쟁에 준하는 비상상황’이라고 걱정하고 있는데 이 나라에서는 아직도 소비촉진을 통한 경제 성장만 외치고 있으니… 미래세대들을 무슨 낯으로 대할지 부끄러울 뿐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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