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혹시 2015년 5월 40번째 편지에서 소개한 일본의 ‘할머니 시인’ 시바타 도요를 기억하는가? 92세에 아들의 권유로 시를 쓰기 시작하여 98세에 펴낸 첫 시집 ‘약해지지 마’가 일본에서만 160만부가 넘게 팔린 초베스트셀러가 됐다는 말을 했지. 그러면서 ‘약해지지 마’라는 시를 소개했고. 약해지기 쉬운 우리들에게 용기를 주는 시이니 다시 한 번 읽고 시작하세.

“있잖아, 불행하다고/ 한숨짓지 마/ 햇살과 산들바람은/ 한쪽 편만 들지 않아/ 꿈은/ 평등하게/ 꿀 수 있는 거야/ 나도/ 괴로운 일/ 많았지만/ 살아 있어 좋았어// 너도 약해지지 마”

오늘은 76세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서 80세에 첫 개인전을 열고 지금은 미국의 국민화가로 추앙받고 있는‘모지스 할머니’의 자전적 에세이 ‘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를 소개하고 싶네. 이 책은 애나 메리 로버트슨 모지스가 92세 때인 1952에 출간하여 베스트셀러가 된 책이야. 내가 태어나기 전에 출판된 책을 이제야 읽다니 좀 창피하기도 하구먼. 일흔 여섯의 나이에 만성 류마티스 관절염으로 자수를 놓지 못하게 되자 바늘 대신 붓을 들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서 101세의 나이로 죽을 때까지 1,600여 점의 그림을 그렸다니 대단하지 않는가?

이 책의 주인공 모지스 할머니는 부유한 집안의 딸도 아니었네.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의 평범한 이민자들의 자식으로 태어나 12살 때부터 밥벌이를 위해 남의 집에서 식모살이를 했던, 우리식으로 말하면 박복한 여성이야. 26살 때 가정부로 일하던 집에서 만난 남편도 같은 농장의 일꾼이었네. 한 평생 뉴욕과 버지니아 주를 옮겨 다니며 열 명의 자녀를 낳고, 버터, 비누, 양초, 설탕 등을 만들어서 팔았던 평범하지만 부지런한 여자였지. 학교를 다니며 체계적으로 미술 공부를 한 적도 없었네. 대자연에 살면서 그냥 그림이 좋아서 그리기 시작한 게 유명해진 거야.

나이든 친구들에게 뭔가 새로운 취미를 권하면 흔히 말하지. 너무 늦었다고. 이 나이에 무얼 새로 시작할 수 있냐고. 하지만 그녀는 말하네. “사람들은 내게 이미 늦었다고 말하곤 했어요. 하지만 지금이 가장 고마워해야 할 시간이라 생각해요. 무엇인가를 진정으로 꿈꾸는 사람에겐 바로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젊은 때이거든요. 시작하기에 딱 좋은 때 말이에요.”(256쪽) 옳은 지적일세. 무슨 일이든 너무 늦은 때는 없네. 너무 늦은 깨달음이 있을 뿐일세. 버나드 쇼의 묘비명이었나? “우물쭈물 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부잣집 딸이나 마나님은 아니었지만 그녀는 자신의 삶에 크게 만족했네. 소욕지족의 삶을 살았다고 말할까. “나는 참 행복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물론 나에게도 시련이 있긴 했지만 그저 훌훌 털어버렸지요. 나는 시련을 잊는 법을 터득했고, 결국 다 잘될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노력했습니다.”(111쪽) 긍정적인 마음을 갖고 매사에 충실했으니 하루하루의 삶이 즐거울 수밖에. “지금도 나는 내가 늙었다는 기분이 전혀 들지 않아요. 손주 열한 명과 증손주 열일곱 명을 둔 할미이지만요. 참 많이도 두었네요!”(274쪽) 이미 돌아가신 분이지만 저런 분 옆에 있으면 함께 행복해질 것 같지 않는가?

윤동주 시인이 ‘새로운 길’에서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라고 읊었던 것처럼, 행복한 노년을 위해서는 언제나 새로운 길을 걸을 수 있어야 하네. 어제도 갔고 10년 전에도 갔던 길일지라도, 오늘 걷는 길이 어제와 달라 보여야 제대로 살고 있는 거야. 날마다 같게 보이면, 그것은 게으르거나 이미 마음이 죽어버렸기 때문이지. 나이가 들수록 눈을 감아도 갈 수 있는 익숙한 길에 안주해서는 안 돼.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 날마다 새로운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해야 하네. 그래서 나는 언제나 꽃과 시와 음악과 사랑과 설렘이 있는 길을 가려고 나름 애쓰고 있어. 언젠가 소풍 마치고 돌아가는 날, 모지스 할머니처럼 당당하게 떠나고 싶기 때문이야. “나는 행복했고, 만족했으며, 이보다 더 좋은 삶을 알지 못합니다. 삶이 내게 준 것들로 나는 최고의 삶을 만들었어요. 결국 삶이란 우리가 스스로 만드는 것이니까요.”(275쪽) 여기에 어깨춤까지 곁들이면 정말 멋있는 귀향이겠지? 카르페 디엠! 메멘토 모리!

“나는 참 행복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물론 나에게도 시련이 있긴 했지만 그저 훌훌 털어버렸지요. 나는 시련을 잊는 법을 터득했고, 결국 다 잘될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노력했습니다.” (111쪽)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우리가 정말 발전하고 있는지 때로는 의문이 듭니다. 내가 어렸을 때는 세상이 달랐어요. 지금보다는 여러모로 더 느린 삶이었지만 그래도 행복하고 좋은 시절이었지요. 사람들은 저마다 삶을 즐겼고, 더 행복해했어요. 요즘엔 다들 행복한 시간이 없는 것 같습니다.”(274쪽)

“대자연이야말로 우리가 진정 자유로울 수 있는 곳이고 아름다움과 평온을 간직한 곳이며, 삶의 소음에서 벗어나 고요해지기 위해 간절히 가고픈 곳이 아닐까요.”(9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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