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훈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이 노조 와해 혐의와 관련해 실형을 선고받고 구속됐다. /뉴시스
이상훈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이 노조 와해 혐의와 관련해 실형을 선고받고 구속됐다. /뉴시스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내 눈에 흙이 들어가도 노조는 안 된다.”

고(故) 이병철 삼성 창업주가 남긴 것으로 꾸준히 회자되는 말이다. 삼성의 ‘무노조 경영’을 상징하는 말로 남아있다. 실제 삼성은 철저하게 무노조 경영 원칙을 고수해왔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삼성에서도 노조 설립 움직임이 나타나자, 치밀한 노조탄압 전략을 수립해 대응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고집과 불법행위가 결국 더 큰 부메랑이 돼 돌아오고 있는 모습이다.

◇ 줄줄이 철퇴… ‘2인자’ 구속

노조파괴 혐의로 기소된 삼성 관계자들이 줄줄이 유죄 및 실형을 선고받았다.

먼저 지난 13일, 삼성에버랜드 노조 와해 관련 1심 선고공판이 열렸다. 강경훈 삼성전자 부사장 등 전·현직 삼성에버랜드 관계자 13명이 기소된 재판이었다. 이들은 2011년 삼성에버랜드에서 노조 설립 움직임이 포착되자 어용노조를 설립하고, 노조 설립 주도자를 부당 해고하는 등의 방식으로 노조활동을 가로막은 혐의를 받았다.

결과는 13명 모두 유죄. 특히 사건 당시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에서 노사업무를 총괄했던 강경훈 부사장은 징역 1년 4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우석 전 삼성에버랜드 인사지원실장에 대해서도 역시 징역 10개월의 실형이 선고됐다. 다만, 재판부는 이들을 법정구속하진 않았다. 나머지 전·현직 직원 11명 각각 징역 6~10개월에 집행유예 2년 또는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나흘 뒤인 17일엔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와해 관련 1심 선고공판이 열렸다. 이 사건으로 기소된 이들은 앞선 사건보다 많은 32명. 여기엔 ‘삼성 2인자’로 불리는 이상훈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을 비롯해 앞서 실형을 선고받은 강경훈 부사장과 원기찬 삼성카드 사장, 박용기 삼성전자 부사장, 정금용 삼성물산 대표 등 굵직한 인물들이 대거 포함됐다.

이들은 2013년 삼성전자서비스에 노조가 설립되자 마찬가지로 여러 방법을 동원해 노조활동을 방해한 혐의를 받았다.

재판부는 이들에 대해서도 대부분 철퇴를 내렸다. 기소된 32명 중 26명에 대해 유죄가 선고됐다. 특히 이상훈 의장과 강경훈 부사장은 나란히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고 전격 구속됐다. 목장균 삼성전자 전무와 최모 삼성전자서비스 전무도 각각 징역 1년과 징역 1년2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삼성을 도운 전직 경찰에겐 징역 3년 등 가장 무거운 형이 내려졌다.

원기찬 사장과 박용기 부사장, 정금용 대표 등은 각각 징역 1년~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3년 및 사회봉사명령을 선고받았다.

지난 2014년 투쟁 중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故) 염호석 씨의 장례 모습. /뉴시스
지난 2014년 투쟁 중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故) 염호석 씨의 장례 모습. /뉴시스

◇ 몰락하는 ‘삼성 무노조’

두 사건 사이엔 수년의 시차가 있지만, 사건의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다. 노동자의 기본 권리인 노조설립 움직임을 막기 위해 삼성은 그룹 차원에서 치밀한 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실행에 옮겼다.

삼성의 이러한 행태는 ‘문건’을 통해 그 실체를 드러내기도 했다. 그룹 차원에서 노조 와해 전략을 수립해 만든 이른바 ‘S그룹 노사전략’ 문건이 각 계열사 및 자회사로 전달됐는데, 이 중 일부가 세상에 드러난 것이다. 이는 삼성에버랜드와 삼성전자서비스에서 나타난 노조파괴 행태가 서로 닮아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삼성의 노조 와해 전략 문건에선 노조를 설립하려는 직원을 ‘MJ(문제) 직원’이라 칭했다. 또한 미행 등 온갖 불법행위를 동원해 이들에 대한 정보를 확보하고, 이들을 다른 직원과 격리시키기 위해 거짓 소문을 퍼뜨리기도 했다.

삼성전자서비스 노조와의 갈등 국면에서 벌어진 ‘시신탈취 사건’은 그중에서도 단연 큰 충격을 안겨줬다. 2014년 5월, 당시 노조 소속으로 투쟁을 이어가던 고(故) 염호석 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 삼성은 유족인 아버지에게 합의금 6억원 가량을 건넨 뒤 시신을 화장하도록 했다. 노조가 ‘노조장’을 치르며 투쟁의 수위를 높일 수 있다는 우려에 따른 것이었다. 또한 이 과정에서 경찰은 장례식장에 대규모 인력을 투입해 노조로부터 시신을 탈취한 바 있다.

하지만 삼성의 이 같은 노조탄압은 결국 더 큰 부메랑이 돼 돌아오고 있다. 당장 ‘2인자’의 공백을 비롯해 주요 계열사 고위 임원들의 경영행보 위축이 불가피해지게 됐다. 가뜩이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국정농단 사건으로 파기환송 재판을 받고 있고,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사건에서도 삼성 관계자들이 1심에서 모두 유죄를 받은 상황에서 더욱 뼈아픈 악재로 작용하고 있는 모습이다.

반면, 삼성의 주요 계열사에서는 최근 노조 설립 움직임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삼성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삼성전자에서도 지난달 한국노총 산하 노조가 대규모로 출범했다. 수십 년간 공고했던 삼성의 ‘무노조 고집’이 끝내 무너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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