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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체험기] 구세군과 함께 울린 ‘사랑의 종소리’
2019. 12. 18 by 범찬희 기자 nchck@naver.com
지난 17일 서울 명동 우리은행앞에서 박찬진 팀장이 자선냄비 모금 활동을 하고 있다. 명동은 1928년 한국 구세군이 첫 자선냄비 활동을 한 뜻깊은 장소다. / 사진=범찬희 기자
지난 17일 서울 명동 우리은행앞에서 박찬진 팀장이 자선냄비 모금 활동을 하고 있다. 명동은 1928년 한국 구세군이 첫 자선냄비 활동을 한 뜻깊은 장소다. / 사진=범찬희 기자

시사위크|명동=범찬희 기자  ‘타인은 지옥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사르트르의 작품 속 대사로 유명한 이 문구는 국내에서는 웹툰 제목으로 대중에 널리 알려졌다. 최근엔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한 케이블 드라마가 방영되면서 더욱 유명세를 타게 됐다. 76년 전에 쓰인 희곡 속 대사가 요즘에서야 인구에 회자되는 건 그만큼 한국 사회가 갈수록 각박해져 가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일테다.

타인을 지옥이라고 말할 만큼 이기주의가 만연해가는 세상 속에서도 도움과 사랑의 실천을 평생의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연말이면 거리 곳곳에 등장해 종소리로 시민들의 얼어붙은 가슴을 녹이는 구세군들에게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명제가 결코 통하지 않는다. 성탄절을 일주일여 앞둔 지난 17일 한국 구세군의 미래를 짊어질 ‘구세군사관대학원대학교’ 학생들이 자선냄비 활동을 펼치고 있는 서울 명동을 찾아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구세군 자선냄비는 독일의 주방 용품 브랜드 '휘슬러'가 제작 및 보수 유지를 지원한다. 또 자선냄비와 함께 구세군을 상징하는 '종'도 삼성화재 등 기업들의 협찬을 받고 있다. / 사진=범찬희 기자
구세군 자선냄비는 독일의 주방 용품 브랜드 '휘슬러'가 제작 및 보수 유지를 지원한다. 또 자선냄비와 함께 구세군을 상징하는 '종'도 삼성화재 등 기업들의 협찬을 받고 있다. / 사진=범찬희 기자

“네 기자님, 바로 나갈게요.” 통화를 마치고 모습을 드러낸 박찬진 팀장을 알아보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계급장이 달린 남색 구세군 정복과 군인을 연상케 하는 짤막한 머리는 누가 보더라도 ‘민간인’ 신분이 아님을 말해주고 있었다. 익히 알려진 대로 구세군은 명칭을 포함해 계급과 용어 등 조직 운영의 상당 부분은 군(ARMY)에서 차용했다. 그렇다 보니 군대의 사관생도격인 사관학생도 헤어스타일에 제약이 따른다. 남학생은 짧은 스포츠형을, 여학생은 귀를 넘기지 않는 숏컷이어야 한다.

효율성을 위해 외형적인 부분만 군대를 벤치마킹 했을 뿐, 내부 문화는 전혀 다르다. 2년제로 운영되는 구세군사관대학원대학교는 1학년과 2학년 구분 없이 서로를 ‘학생’이라 칭한다. 어깨 위 계급장을 가리면 외부인이 대화 속에서 이들의 선후배 관계를 파악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약 8시간을 사관학생과 함께 보낸 기자는 기사를 작성한 다음날까지도 서열 파악이 안 돼 있음을 고백한다.

총 13명의 사관학생은 명동과 삼성역팀으로 나뉘어 자선냄비 활동을 펼친다. 사관(교회의 목사에 해당)들이 지난달 29일부터 31일까지 모금 활동을 펼치는 반면, 임관 전인 사관학생들은 성탄절 직전인 24일까지 거리에 나온다. 기자가 일일 체험을 한 명동팀에는 9명의 학생들이 4개조로 나뉘어 포스트를 운영한다. '롯데백화점'를 전진 기지로 삼으며 ‘명동 입구’와 ‘우리은행 앞’을 중간 거점으로, 마지막으로 ‘명동성당 앞’을 후방으로 두고 있다.

홍콩인 부모를 한 여자 아이가 구세군 자선냄비에 기부를 하고 있는 모습(좌)과 올해 부터 도입된 카드결제 시스템. 후불 교통카드를 터치하면 지폐가 없이도 간편하게 1,000원을 기부할 수 있다. / 사진=범찬희 기자
한 여자아이가 구세군 자선냄비에 기부를 하고 있는 모습(좌)과 올해부터 도입된 카드결제 시스템. 후불 교통카드를 터치하면 지폐가 없이도 간편하게 1,000원을 기부할 수 있다. / 사진=범찬희 기자

사관학생들은 모금 활동을 시작하는 정오 무렵 보다 40분가량 일찍 ‘대기 장소’인 롯데백화점 주차장에 도착한다. 박 팀장은 “주차 공간 확보와 날씨 변수 등을 고려해 서둘러 나오는 편”이라고 말했다. 기자의 눈에는 한겨울 차량에서 추위를 녹이를 사관학생들의 근무 환경이 다소 열악하게 느껴졌지만 박 팀장은 “롯데 측에서 식사와 모금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장소를 배려해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전했다.

오전 11시 45분경 박 팀장과 함께 우리은행 앞에 자선냄비를 설치하고 본격적인 모금에 돌입했다. 시작과 동시에 외국인 남녀가 함께 기부를 했다. 구세군 측에서 제공해 준 자원봉사자용 빨강 롱패딩을 착용하고 있던 기자는 “감사합니다”라는 말과 함께 절로 허리가 숙여졌다. 매일 기자실 한 켠에서 기사와 씨름해 온 기자에게 ‘봉사’라는 색다른 경험이 달콤한 보람으로 다가왔다.

올해로 자선냄비 활동 12년차를 맞는 베테랑답게 박 팀장은 능숙한 멘트로 시민들에게 기부 참여를 독려했다. 고등학생 때부터 할머니 손을 잡고 구세군 활동을 이어온 박 팀장은 지난해 구세군사관대학교대학원에 입학해 목회자의 길을 걷기로 했다. 내년 1월 중순 경 임관임명식을 마치게 되면 사관 자격을 얻어 지역의 영문(교회)으로 파송(발령)된다. 구세군은 시민들의 눈에 띄는 연말이 아닌 1월~11월에도 찾아가는 자선냄비와 각종 사회사업을 진행한다.

명동 롯데백화점 앞에서 기자가 이미화 특별봉사담당관, 손혜지 학생과 함께 모금 활동을 하고 있는 모습. 롱패딩이 없는 기자는 이날 '탑텐'이 구세군에 협찬한 자원봉사자용 롱패딩을 처음으로 착용했다. / 사진=범찬희 기자
명동 롯데백화점 앞에서 기자가 이미화 특별봉사담당관, 손혜지 학생과 함께 모금 활동을 하고 있는 모습. 롱패딩이 없는 기자는 이날 '탑텐'이 구세군에 협찬한 자원봉사자용 롱패딩을 처음으로 착용했다. / 시사위크

사관학생들은 기본적으로 크리스천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구세군의 길을 걷게 된 사연은 다양하다. 개신교 내 다른 교단에서 전도사로 활동한 이력 외에도 직장 생활을 하다 구세군에 뜻을 둔 경우도 즐비하다. 이날 ‘명동성당조’였던 1학년 우지연 학생과 문현지 생도는 각각 사회에서 간호사와 언어치료사로 일했다. 우지연 학생은 “합병증으로 돌아가시는 간암 환자분들을 보며 인간의 존엄한 죽음에 대해 오랜 기간 생각한 끝에 ‘영적 간호사’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문지연 학생은 “가정 환경이 어려워 도움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너무나 많다. 자선냄비가 많은 사람들이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는 통로 역할을 할 수 있어 감사 드린다”고 전했다.

일반 기업에서 바레인으로 파견을 나가 행정 업무를 본 이력이 있는 2학년 김택근 학생은 구세군의 재정투명성에 강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김택근 학생은 “구세군에서는 단돈 10만원을 쓰는 것도 실무자와 재정담당자, 조직의 장 등 최소 3명이 알아야 한다”며 “학생들은 교과 과정을 통해 재정사용법을 따로 배우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인터넷에서는 ‘구세군 비리’라는 검색어를 쉽게 접할 수 있는데, 이는 구세군의 부정 이슈를 접한 기억이 없는 네티즌의 호기심이 발동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또 구세군은 행정안전부로부터 매년 감사를 받고 있다.

구세군은 기부금 감소를 우려하는 외부의 시선에 대해서도 의연한 자세를 보였다. 구세군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2016년 40억원을 기록했던 거리모금액은 2017년 39억원으로 감소한 뒤 지난해 35억원으로 떨어졌다. 이날 학생들 격려차 현장을 찾은 이미화 특별봉사담당관은 “기부금 액수 자체에 큰 고민은 없다. 모인 금액에 맞게 사용하면 된다”며 “기부는 하지 않더라도 연말마다 구세군을 보며 소외된 이웃을 한 번쯤 시민들이 생각해주시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 특별봉사담당관은 김동진 구세군사관대학원대학교 총장의 부인이기도 하다.

모금을 마친 자선냄비는 주황색 케이블 타이에 밀봉된 체로 충정로 한국구세군 본부로 이송돼 정산 된다. 정산된 기부금은 다음날 바로 은행에 입금된다. / 사진=범찬희 기자
모금을 마친 자선냄비는 주황색 케이블 타이에 봉인된 체로 충정로 구세군대한본영으로 이송돼 정산 된다. 정산된 기부금은 다음날 바로 은행에 입금된다. / 사진=범찬희 기자

이날 체험을 통해 구세군이 다양한 업무를 맡고 있음을 알게 됐다. 바로 ‘길 안내’다. 관광 명소인 명동의 특성으로 인해 셀 수 없는 외국인 여행객들이 구세군에게 길을 물었다. 특히 중국인들은 약속이나 한 듯 한결같이 중국어로 말을 걸어와 기자를 적잖이 당황케 했다. 부팀장을 맡고 있는 1학년 정구익 학생은 “중국에는 구세군이 없다 보니 (우리를) 관광 안내자로 착각하고 있는 거 같다”고 말했다. 구세군들은 기념촬영 요구에도 미소를 잃지 않고 매번 응해주는 친절함을 보였다.

다행히(?) 이날 한낮 기온이 11도까지 오르는 평온한 기온 덕에 기자는 큰 고생 없이 체험을 마칠 수 있었다. 또 오전에 내린 비는 모금 활동에 돌입하는 정오가 가까워지자 거짓말처럼 그쳤다. 한반도의 불청객 미세먼지도 없었다. 모금 활동을 마치고 자선 냄비를 차량에 실은 뒤 “오늘 하루 수고하셨다”는 인사에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드는 건 아마도 수월하게 체험을 마쳤다는 안도감을 무의식 중에 느꼈기 때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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