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최영훈 기자  ‘신뢰’는 국가가 번영을 이루기 위한 중요 요소 중 하나로 꼽힌다. 국가 번영에 필요한 제도 중 하나인 ‘민주주의’가 신뢰에 바탕을 두고 성립되기 때문이다. 스티븐 레비츠키, 대니얼 지블랫 미국 하버드대 정치학과 교수는 공저서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서 “실질적 규범, 즉 상호 관용과 제도적 자제로 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다”고 말했다.

상호 관용은 정치인이 서로에 대해 ‘적이 아닌 경쟁자’로 여기는 것을 말한다. 제도적 자제는 다른 정치인과 타협으로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서로에 대한 신뢰가 없으면 민주주의가 무너질 것이라는 말이다.

올해 국회는 ‘파행’으로 시작했다. 원인은 야당에 대한 무시였다. 지난 1월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문재인 대통령이 조해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상임위원을 임명하자 “청와대와 여당의 야당 무시가 이렇게 심한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도 “국회와 협치를 내던지는 대통령과 청와대를 규탄한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 추가경정예산안 처리를 위해 열린 6월 임시국회도 파행됐다. 한국당이 원내교섭단체 대표 간 국회 정상화 합의를 번복하면서다. 이로 인해 여야 간 신뢰도 깨졌다. 서로를 향한 비판이 이어졌고, 임시국회 또한 빈손으로 끝났다.

20대 국회 마지막 정기국회 일정인 내년 정부 예산안 처리 과정도 순탄치 않았다. 당시 원내교섭단체 대표 간 국회 정상화 합의문에 있던 ‘필리버스터 철회’가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야 간 ‘신뢰’가 깨지면서 예산안은 한국당이 빠진 채 처리됐다.

지금 국회에는 ‘신뢰’가 사라지고 ‘대결의 정치’만 남았다. 여야 할 것 없이 ‘민주주의를 지키겠다’면서 투쟁에 몰두한다. 이를 두고 전직 야당 원내대표인 한 중진 의원은 며칠 전 국회에서 기자와 만나 “지금은 All or Nothing(전부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상황)”이라고 답답한 심경을 내비쳤다.

세계적인 법학자이자 정치철학자인 로널드 드워킨 교수는 저서 ‘민주주의는 가능한가’에서 “민주주의는 헐벗은 다수결 원칙보다 정치적 논쟁과 존중의 문화를 필요로 한다. 상대에 대한 믿음 없는 논쟁은 아무 의미가 없다”고 강조했다.

드워킨 교수 말처럼 여야 정치인에게 ‘신뢰’를 쌓아가길 권유한다. ‘민주주의를 지키겠다’는 말이 지켜지기 위해서는 상대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한 논쟁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지난 19일 총리실 출입기자단 만찬에서 한 “제가 돌아가는 곳이 정글 같은 곳이지만, 모처럼 국민이 저에게 신망을 보여준 그런 정치를 하려고 생각한다”는 말을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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