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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종 ‘평양에선 지금’] 평양의 크리스마스는 언제 찾아올까
[이영종 ‘평양에선 지금’] 평양의 크리스마스는 언제 찾아올까
  • 이영종 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장
  • 승인 2019.12.24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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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종 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장.
이영종 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장.

북한이 ‘크리스마스 선물’ 운운하며 대화노선에서 도발 쪽으로 선회할 수 있음을 시사하고 나서면서 김정은 체제의 향후 행보가 눈길을 끌고 있다.

지난 3일 북한 외무성의 이태성 부상은 담화를 내고 “우리가 미국에 제시한 연말 시한부가 하루하루 다가오고 있다”며 “이제 남은 건 미국의 선택이며 다가오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무엇으로 선정하는가는 전적으로 미국의 결심에 달려있다”고 밝혔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4월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북미대화의 시한을 ‘2019년 연말’로 제시하면서, 그 이전에 미국이 새로운 셈법을 내놓아야 한다고 강조한데 따른 대미압박 성격의 담화를 북한 외무성이 낸 것이다.

북한이 미국와의 비핵화 협상이나 대화 기류를 접고 다시 장거리 미사일과 핵을 앞세운 도발 쪽으로 돌아가는 행태를 보일 것인지에 대해선 연말연시가 분수령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위원장은 연말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소집과 당 7기 5차 전원회의에서 논의된 내용을 토대로 자신의 2020년 신년사를 통해 향후 북한의 대미, 대외 노선을 밝힐 것으로 예상된다.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부장관 겸 대북정책 특별대표의 서울-도쿄-베이징 연쇄 방문 과정에서 제시된 미국의 판문점 회동 제안을 거부한 채 북한은 새로운 전략 수립에 골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과 그의 외교 참모들도 체제의 명운이 걸린 대미협상을 자신들의 의도대로 이끌어가기 위한 장고에 들어간 상황이다.
 
북한의 잇단 담화공세와 함께 북한이 미국을 상대하면서 ‘크리스마스’를 중요한 계기로 언급한 대목도 대북 관측통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북한은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3대세습 체제를 이어오면서 종교 문제에 민감한 거부 반응을 보여 왔다. 특히 기독교에 대해 반(反)체제 차원에서 강한 탄압과 응징 태도를 나타냈다.

미 국무부가 지난 18일자로 북한과 중국, 이란 등 9개 나라를 ‘종교자유 특별우려국’으로 재지정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북한은 2001년 이후 18년 동안 종교자유 특별우려국 리스트에 올라있을 정도로 국제사회에 종교탄압국으로 오명을 남기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북한이 기독교의 대표적인 축일(祝日)인 성탄절을 관영매체를 통해 언급했다는 건 이례적이라 할 수 있다.

탈북인사들에 따르면 우리의 성탄 이브인 12월 24일은 북한에서 전혀 다른 의미의 날로 기념되고 기억되고 있다. 바로 김일성의 첫 부인 김정숙(김정은에겐 할머니)의 출생일로 기려지는 것이다. 북한 매체는 김정숙을 ‘항일의 여성영웅’으로 치켜세우며 “자나 깨나 위대한 수령님(김일성을 지칭)을 받들어 내 나라, 내 조국의 통일번영을 위해 자신의 생애를 깡그리 바쳤다”고 찬양한다. 2017년 12월 24일에는 김정숙의 100회 생일을 기념해서는 중앙보고대회까지 열 정도로 우상화에 매달리고 있다. 김정숙은 함북 회령 출생으로 1941년 아들 김정일, 1946년 딸 김경희를 낳았지만 1949년 9월 출산 중에 31세의 나이로 숨졌다.

북한에도 교회와 목사, 성경과 찬송가가 있다는 이유로 기독교가 허용되고 있는 것처럼 주장하는 일부 인사가 있다. 하지만 대북 정보 당국과 전문가, 탈북 인사들은 평양에 만들어져 있는 칠골교회와 장충성당 등의 시설은 방북객과 외부 세계에 ‘북한에도 종교가 있다’고 보여주기 위한 선전물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개화기부터 해방 이후 북한 공산정권이 들어서기 전까지 ‘극동의 예루살렘’이란 찬사를 들을 정도로 기독교가 번창했던 평양이 김일성 유일지배 체제가 굳어지면서 종교 암흑지대로 바뀌어 버렸다는 것이다.

한 탈북 인사는 “할아버지 때부터 독실한 크리스찬 집안이라 평양에서도 비밀리에 가족예배를 하는 등 맥을 이어가려 애썼다”면서 “하지만 발각될 시에 워낙 가혹한 처벌이 뒤따르기 때문에 번성했던 기독교 문화가 대부분 사라졌다고 보면 된다”고 귀띔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북한이 비록 대외매체인 관영 조선중앙통신을 통해서지만 ‘크리스마스’를 언급한 건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 할 수 있다. 정부 당국과 전문가들은 이 같은 움직임이 김정은 체제의 등장과 함께 가능해졌을 것으로 보고 있다.

2011년 12월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으로 집권한 김정은 위원장은 이전의 최고지도자와 다른 통치행보로 눈길을 끌었다. 집권 첫 해인 2012년 7월에는 악단 공연 레퍼터리에 미키마우스와 곰돌이 푸 인형이 등장했고, 애니메이션 영화 백설공주의 주제가가 울려 퍼지는 등 개혁·개방의 전조로 해석될 여지가 있는 장면이 펼쳐졌다. 10대 시절 스위스에서 조기 유학한 김정은이 뭔가 다른 의식을 갖고 있을 것이란 기대감이었다.

연말 송년행사와 신년 모임에 눈사람 모형 등과 함께 크리스마스 장식을 연상시키는 모습이 포착된 것도 이때쯤이다. 그와 여동생 이설주, 형 김정철 등이 모두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 시절 서방 유학을 하며 크리스마스 문화에 익숙해져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자연스레 북한의 송년행사 등에 이런 분위기가 투영됐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또한 그 연장선상에서 대미 외교라인이 워싱턴의 눈높이에 맞춰 대미 압박을 하기 위해 ‘크리스마스’ 시즌을 거론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앞서 김정은은 2017년 7월 4일 ICBM급 화성-14를 발사하는 도발을 펼친 뒤 ‘오만한 미국인들에 대한 독립기념일 선물’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북한이 각종 도발이나 위협에 미국의 주요 기념일이나 축하 시즌을 고려함으로써 효과를 극대화 하려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북한이 내키지 않는 크리스마스까지 거론하며 심리전 성격의 대미 위협을 펼치고 있지만 효과는 보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김정은의 ‘연말 시한’에 대해서도 미국은 “북한이 일방적으로 정한 데드라인에 얽매이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상황이 녹록지 않자 김정은의 참모들이 모두 나서 미국에 잇단 담화 공세를 펼치며 도발 위협과 읍소에 가까운 주장을 펼치고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을 움직이는데는 역부족인 상황이다. 지난 2월 말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이후 주도권을 되찾으려 시도했지만 2019년 한해를 그냥 넘겨버리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대미관계가 꼬여버린 불똥은 북한 주민들에게 튀었다. 김정은 체제 등장 후 핵과 미사일 도발로 자초한 대북제재로 주민의 40%인 1,100만 명이 기아에 시달리고 있다는 UN 전문기구의 보고가 나오고, 반짝하던 북한 경제도 2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으로 돌아설 것이란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이런 실정에 김정은이 주민들에 대한 사상 교육 강화와 체제결속을 지시하면서 올 겨울 북한에는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운 시기가 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백두산을 찾아 백마를 타고 이른바 ‘백두혈통’ 과시 코스프레를 한 김정은이 주민들과 학생·군인 등을 대상으로 한겨울 백두산행을 지시한 것이다. 그는 “손발이 시리고 귀뿌리를 도려내는 듯한 추위도 느껴봐야 선열들의 강인성과 투쟁성·혁명성을 알 수 있다”고 주장하며 겨울철 혁명전적지 답사를 많이 조직하라고 말했다. 영하 20도 이하로 떨어지고 체감기온이 영하 30도를 기록하는 상황에서 제대로 된 방한복이나 시설 없이 강행군이 이뤄지면서 주민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고 한다.

과거 겨울 답사 행사에 참여했던 탈북자들은 “손발이 동상으로 얼어 터지는 건 예사”라고 입을 모은다. 도대체 1930~40년대의 소위 항일 유격대식 체험을 왜 그대로 답습하는 방식으로 진행해야 하는지 모른 채 동원돼야 하냐는 불만의 목소리도 나온다는 것이다.

김정은이 다시 도발행보 쪽으로 돌아설 기미를 보이고 대북제재의 칼바람이 불고 있는 상황 속에서 북한 주민들은 그 어느 때보다 춥고 고단한 겨울나기를 해야 할 판이다. 2,500만 북한 주민 모두가 크리스마스를 가족과 함께 따뜻하게 보낼 개혁·개방, 민주화, 해방의 시점은 언제 다가올 수 있을지 안타까움이 더해지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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