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송가영 기자  주 52시간 근무제로 업무가 마비됐다며 호소한 게임사들에게 ‘크런치 모드’ 재발동 기회가 주어진다. 

크런치 모드란 게임 개발자가 프로젝트 마감 시한을 맞추기 위해 수면, 식사, 인간관계 등을 모두 단절하고 일에만 집중하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 20년간 한국 게임산업을 발전시킨 원동력이자 ‘개발자를 갈아 넣은 게임’, ‘오징어잡이 배’ 등 웃픈 수식어를 만들어낸 노동 시스템이기도 하다.

사람의 생사까지 쥐고 흔들었던 크런치 모드는 지난해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과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듯 했다. 하지만 다시 부활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 11일 고용노동부(이하 노동부)는 ‘통상적이지 않은 업무량의 대폭 증가’와 ‘시설 및 설비 장애 고장 등에 대한 긴급 대처’라는 조항을 추가해 주 52시간을 초과하는 연장근로가 가능하도록 했다.

이는 게임사들마다 직원들의 야근을 요구할 수 있는 상황과 정확하게 맞아떨어진다. 게임업계에 대입해보면 ‘통상적이지 않은 업무량의 대폭 증가’ 조항은 프로젝트 출시를 앞두고 있거나 전면 재수정 등의 상황이 발생할 때 야근을 할 수 있다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충분하다.

또한 시설 및 설비 장애 고장 등에 대한 긴급 대처는 게임안에서 발생하는 버그 또는 시스템 오류, 서버 점검 등을 낮이든 밤이든 시간을 가리지 않고 개발자들이 상시 대기할 수 있다는 명분이 된다.

이에 따라 지난해부터 주 52시간 근무제 정책을 울며 겨자먹기로 따르며 앓는 소리를 냈던 대형게임사들도 다시 크런치 모드를 강행할 수 있게 됐다.

이번에 추가된 조항은 중소기업뿐만 아니라 300인 이상의 대기업에도 해당된다. 결국 게임사들이 원했던 대로 주 52시간 근무제의 게임업계 도입은 사실상 무산된 것이나 다름없다. 

게임사들이 이 조항을 무기 삼아 당장에 처음으로 돌아가려는 시도는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일선에서 근무하고 있는 현직 게임사 직원들에게는 힘이 빠질 수밖에 없는 소식이다. 

언론이나 공개적인 자리에서는 경영진들의 불평불만이 부각됐지만 일선에서는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이 만족스럽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전화기를 붙잡고 머리를 조아리며 약속을 미루거나 아이의 목소리를 듣겠다고 발을 동동거리지 않아도 됐고 오롯이 자신과 주변사람들을 위한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업계에 몸을 담은 기간이 짧든 길든 경영진의 마음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기에 대놓고 좋아하거나 기대감을 드러내지도 못하고 눈치만 봤다. 그럼에도 하루빨리 게임업계에도 주 52시간 근무제가 정착돼 오롯이 자신을 위한 시간을 편히 가질 수 있는 마음은 작지 않았다. 

노동부는 이들의 희망을 송두리째 뿌리 뽑았다. “괜한 기대를 했다”는 자포자기만 남게 했다. 제대로 드러내지도 못했던 이들의 희망은 어디서, 언제쯤 보상받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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