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숭호   ▲언론인 ▲전 한국신문윤리위원
정숭호 ▲언론인 ▲전 한국신문윤리위원

지나간 12월 중순, 페이스북에 다음과 같은 글이 올라왔다. 자기를 인정해주는 건 고마우나 그럴 정도인 사람은 아니라고, 재미있게 쓴 글이다. 이 글을 읽다가 ‘요다(Yoda)’를 찾아 나섰다. 글쓴이는 미국의 한 대학병원 외과교수로 있는 대한민국 사람. 올해 56세. 그가 이 글을 쓴 날은 영화 ‘스타워즈’ 시리즈의 마지막 편인 ‘스타워즈,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가 개봉된 날이었다.

<…. 지금 일하는 대학 외과 교실은 주임교수를 포함, 교원들이 젊은 편이라, 명예교수 몇 분 빼고는 이제 제일 나이 많은 그룹에 속하네요. 내년 여름 수련 마친 후 우리 교실 조교수 자리를 얻으려 인터뷰 하러 온 젊은 선생 R과의 대화.>

R: 인터뷰 와서 이 학교 여러분과 이야기 하면서 큰 수술하다 위기가 생기면 시니어 스태프 중 누구에게 도움을 청하냐고 했더니 다들 선생님을 부른다던데요?
나: 뭐 병원이 그리 크지 않고, 사람도 많지 않으니 쉽게 부를 수 있는 사람 찾다보면 그리 되는 경우가 좀 있긴 하죠.
R: 레지던트들과 젊은 교수들은 선생님을 요다 사범이라 한다면서요?
나: 젊은 양반! 젊은 내가 어딜 봐서 요다 같아 보인단 말이오. 버럭! ㅋㅋ. 오늘이 스타워즈 개봉하는 날이지만 그거 심한 거 아뇨?

대한민국에 큰 수술이 필요하다며 칼을 들고 나선 자들이 수련을 제대로 하지 않았거나, 아예 돌팔이들이어서 지금 겪는 크나큰 위기가 생겼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이런 글을 읽게 됐으니 요다를 찾아보지 않을 수 없었던 거다.

1977년부터 지금까지 아홉 편이 나온 영화 ‘스타워즈 시리즈’에 “경험 많아 지혜롭고 인자하며 책임감 있는 스승”으로 나온 인물이 요다라는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한 편도 처음부터 끝까지 본 게 없어서 요다를 찾으려 인터넷으로 스타워즈의 넓고 복잡한 족보를 뒤졌다. ‘요다가 그립다’ 같은 제목으로 글 한 편도 써볼 생각이었다.

검색 결과를 요약하면, “요다는 아득히 먼 옛날 스타워즈의 세계에 존재한 제다이(Jedi)들의 스승이다. 학자이자 전사인 제다이들은 은하공화국을 수호하는 기사단을 구성했으며, 명상과 수련으로 자신을 갈고 닦으며 분쟁을 조율했고, 무력을 사용해야 하는 곳에선 용맹을 과시했다. 이런 제다이들도 난관에 부딪혀 도저히 길을 찾을 수 없을 때가 있는 법. 이때 찾아가 길을 물은 인물이 요다였다.”

요다를 주제로 글을 쓰려던 내 생각은 바로 벽에 부딪혔다. 요다가 안 보였기 때문이다. “원로를 찾아서”, 혹은 “원로가 없다”는 오랫동안 우리나라 신문이나 방송의 새해 첫날 단골 특집기사 제목. “원로가 없어진 지 오래인데 원로보다 몇 백 배는 더 오래 살았을 요다가 있을 리 없지”, 체념에 빠졌다.

어제(3일) TV를 보다가 감동을 좀 했다. 청중에게 예전 노래를 들려준 후 세대별로 그 노래를 몇 사람이나 알고 있는가를 알아보면서 마지막에는 노래를 부른 가수가 등장해 MC들과 노래에 얽힌 이야기를 주고받는 프로그램이었는데, 거기 나온 최불암 배우가 한 말을 듣고서다. 그는 올해 여든 살이다. 그는 마흔 한 살이던 1981년에 정여진이라는 꼬마 아가씨와 함께 ‘아빠의 말씀’이라는 노래를 불렀는데 그 노래 가수 자격으로 출연한 거다. 아주머니가 된 정씨도 출연했다.

MC들이 그에게 묻는다. “(가수가 아닌데) 이 노래를 부르셨네요?” 이후 MC들과 그의 문답을 정리하면 이렇다.

“원래 이 노래는 외국 노래였지요. 원곡을 안소니 퀸이라는 미국 배우가 불렀는데, 그 배우를 좋아해서 따라 해보고 싶기도 했지만 그때 내가 김 회장으로 출연했던 연속극 ‘전원일기’ 때문이기도 했어요.”
“전원일기 때문이라니요?”
“그 무렵 전원일기에서 내가 금동이를 입양했는데, 시청자들이 입양한 걸 너무 좋아하신 거예요. 반응이 너무 좋았어요. 정말 착한 일했다고.” (김 회장이 장터에 버려진 채 울고 있던 금동이를 자전거에 뒤에 태워 집으로 돌아오는 장면을 기억하는 시청자들이 아직도 많다.)
“하지만 내가 한 게 뭐 있나요. 그 (아름답고 착한) 이야기는 작가들이 고생하면서 만들어내고 난 따라한 것뿐인데, 칭찬은 내가 다 받은 거잖아요. 그래서 정말 아이들을 위해 뭔가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있는데, 주위에서 이 노래는 ‘국민아빠’인 최 선생이 불러야 해요 라고 해서 부른 거지요.”

오래 전의 일이다. 그가 영화 출연은 잘 하지 않는 것에 주목한 한 기자가 “왜 TV 드라마만 하세요? 스크린은 싫으신가요?”라고 물었다. 그는 “TV로 충분합니다.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내가 영화까지 하면 다른 배우들의 기회가 줄어듭니다”라고 대답했다. 이 대답을 기억하기에 이번에 내가 더 쉽게 감동했을지도 모른다. 자기에게 쏟아진 칭찬이 자기 몫이 아니라고 생각하고는 어떻게든 그걸 돌려주려 한 모습에 또 감동한 것이다.

체념했던 요다 찾기를 계속하기로 마음먹었다. 감동을 주는 사람들이 많으면 그 중에 요다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게 됐다. “요다가 있는 곳 아시면 꼭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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