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호르무즈 해협에서 이란에 억류됐다가 두 달여만에 풀려난 영국 유조선 '스테나 임페로' 호. /AP-뉴시스
지난 7월 호르무즈 해협에서 이란에 억류됐다가 두 달여만에 풀려난 영국 유조선 '스테나 임페로' 호. /AP-뉴시스

시사위크=정계성 기자  미국의 공습으로 이란의 2인자 거셈 솔레이마니 사령관이 사망하면서 중동정세가 급변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수입되는 원유의 70%, LNG의 40%를 중동에 의존하는 만큼, 국내 에너지 수급에도 직간접적인 영향이 있을 전망이다. 정부도 상황을 예의주시하면서 예상치 못할 변수에 대비하고 있다.

일단 현 시점에서 원유수급은 큰 문제가 없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6일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자원실장 주재로 열린 석유·가스 수급 및 가격동향 점검회의 결과, 직접적인 공급 차질은 발생하지 않았으며 당장 큰 영향은 없을 것으로 분석됐다. 이 자리에는 석유산업과장, 가스산업과장, 석유공사, 가스공사, 정유 4사(SK에너지, GS칼텍스, SOIL, 현대오일뱅크) 등이 참석해 의견을 제시했다.

7일 개최된 확대 거시경제 금융회의에서도 원유수급 문제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란 예측이 지배적이었다.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은 “중동산 원유의 선적 물량과 일정에 아직 차질이 발생하지 않았다”며 “현재 국내에 도입 중인 이란산 원유가 없고 중동지역 석유·가스시설이나 유조선 등에 직접적인 공격이 발생한 것은 아니다”고 했다.

잠시 혼란했던 금융시장도 정상궤도를 찾을 것으로 전망했다. 김 1차관은 “지난해 사우디아라비아 석유 시설 피습 등 중동 관련 불안에도 금융시장은 강한 복원력을 보였다”며 “순대외채권과 외환보유액이 최고치를 경신하는 등 견고한 대외건전성이 안전망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미국과 이란의 갈등이 장기화될 경우다. 불안정한 원유수급은 금융시장에도 불확실성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외교부는 “점진적으로 긴장 완화에 돌입할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되지만 현장 오판이나 우발적 충돌 등으로 확전에 이를 수 있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굉장히 엄중한 상황”이라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중동정세가 장기화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대응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청와대는 전날 정의용 안보실장 주재로 NSC 상임위원회를 열고 국내 석유-가스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최소화될 수 있도록 총력 대응키로 의견을 모았다. 산업부를 중심으로 석유수급·유가 점검회의를 지속 개최하고 상황실 운영을 통해 일일 모니터링을 실시하는 등 비상 대응체계에 들어갔다.

한편 솔레이마니 사령관 사망사건 이후 미국과 이란의 신경전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6일(현지시각) “숫자 52를 언급하는 자들은 IR655편의 숫자 290도 기억해야 한다”며 “이란을 협박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이란이 보복하면 52곳의 이란 목표물을 겨냥하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전날 발언에 대한 대응 차원이었다.

숫자 52는 1979년 이란 주재 미국 대사관 점거 사건으로 억류됐던 미국인 인질 52명을 의미하며, 290은 1988년 미군이 이란 여객기를 격추해 사망한 피해자 숫자다. 양국의 지도자들이 과거 사건까지 거론하며 험악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는 셈이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