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7-11 13:00
[김재필 '에세이'] H에게-호주 산불과 기후 재앙
[김재필 '에세이'] H에게-호주 산불과 기후 재앙
  • 김재필 사회학 박사
  • 승인 2020.01.14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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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몇 년 전 겨울에 호주 멜버른 근처에서 코알라를 본 적이 있네. 한낮인데도 잠만 자고 있더군. 그때 알았지. 코알라(koala)란 말이 원주민의 언어로 ‘물이 없다’는 뜻이고, 코알라는 물을 마시지 않아 붙여진 이름이라는 걸. 코알라는 물을 마시지 않고도 살 수 있냐고? 아냐. 코알라는 유칼리(유칼립투스)나무의 잎을 하루 600~800g 정도 먹는데, 필요한 수분의 대부분을 그 잎에서 섭취한다네. 코알라는 보통 하루에 20시간 정도를 자는데, 그 이유가 좀 가슴 아파. 코알라가 특별히 게을러서 잠만 자는 게 아니고, 그들이 먹는 유칼리 잎이 영양가가 높지 않아서 기력을 아껴야만 생존할 수 있기 때문이라더군. 거친 잎을 씹느라 이가 쉽게 망가지지만 새로 나지 않아 굶어 죽는 코알라도 많다네. 그래서 평균 수명이 1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아. 독성이 있고 섬유질이 많은 유칼리 잎을 먹고, 그 독성을 분해하고 질긴 섬유질을 발효시키느라 하루 종일 잠만 자도 수명이 그렇게 짧으니 실제로 활동하는 시간은 거의 없는 셈이지.

요즘 그 코알라들이 큰 수난을 겪고 있다는 소식이네. 유칼립투스 숲이 펼쳐진 호주의 동부와 남부지역이 지난 4개월 동안 계속 불타고 있기 때문이야. 호주 남부의 캥거루아일랜드에서는 이번 화재로 섬의 절반이 불타 그 섬에 살던 코알라의 절반인 2만 5000마리가 죽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네. 뉴사우스웨일즈주에 살던 코알라의 30% 정도가 이번 화재로 죽었을 것이라는 그곳 고위 관료의 말도 있고. 이번 산불로 코알라는 스스로 힘으로는 생존하기 힘든 ‘기능적 멸종’ 위험 상태에 빠진 것만은 확실한 것 같네. 안타까운 일일세.

지난해 9월부터 시작된 호주 산불이 지금까지 남한의 면적보다 넓은 1100만 헥타르를 태우고도 아직 꺼지지 않고 있네. 검붉은 연기와 더위 때문에 사람들이 받는 고통도 크지만(13일 현재 29명 사망), 더 심각한 것은 야생동물들의 피해야. 시드니대의 한 교수는 <호주 공공라디오>와의 회견에서 “이번 산불로 뉴사우스웨일즈주에서만 8억 마리, 호주 전체로는 10억 마리 이상의 포유류, 새, 파충류 등이 죽었을 것”이라고 말했네. 코알라는 이번 화재 지역과 서식지가 80% 정도 겹치기 때문에 멸종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을 정도야. 어쩌다가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자랑하던 호주가 생명 있는 것들의 지옥이 되어버렸는지…

호주 대륙이 점점 뜨거워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야. 작년 12월17일 호주의 전국 평균 기온은 섭씨 40.8도로 최고 기록을 경신했네. 2018년이 역대 가장 더운 해인 줄만 알았던 많은 사람들이 놀랬지. 하지만 그 최고 기록도 하루 만에 깨져버렸어. 다음날 전국 평균 기온이 41.9도를 기록했거든. 지난해 12월에만 호주대륙의 평균 최고 기온이 40도를 넘는 날이 11일이었네. 한 달 내내 전체 대륙이 뜨겁게 달아오른 거지. 호주 기상청의 2018년 ‘기후 보고서’도 “1900년 이후 평균 기온이 1도 상승했다”고 인정하고 있어. 올해 들어서는 1월 4일 시드니 서부의 낮 최고 기온이 48.9도를 기록하기도 했네. 이렇게 대륙이 활활 타오르고 있는데도 호주 정부가 기후변화와의 연관성을 부정하고 있는 이유는 뭘까?

호주는 현재 세계에서 석탄을 가장 많이 수출하는 나라야. 호주가 수출하는 화석연료에서 배출하는 온실가스가 전 세계 배출량의 약 7%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니 기후변화에 책임이 많은 나라지. 그런데도 석탄산업의 강력한 지지자들인 정치인들은 경제와 일자리를 핑계로 고온건조한 이상 기후와 산불의 연관성을 인정하지 않았어. 지난 몇 달 동안 산불이 기후재앙임을 극구 부인했던 사람이 현재 호주 총리인 스콧 모린슨이야. 하지만 그도 산불 피해 지역이 넓어지고 지지율이 급락하자 이번 최악의 산불과 기후변화의 연관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네. 지난 12일 호주 ABC TV와의 회견에서 "우리는 점점 더 길어지고, 더 더워지며, 더 건조해지는 여름 속에 살고 있다"며 "이는 분명히 좀 더 광범위한 기후변화의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라고 공식적으로 인정했어. 그러면서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도 덧붙였고. 실제로 효율적인 정책을 마련할지는 두고 봐야 알겠지만… 여기나 거기나 정치인들 말은 믿을 수 없거든.

호주는 화석연료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나라이면서도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려는 노력은 하지 않는 이른바 ‘기후악당 국가’중 한곳일세. 기후변화대응 불량국가지. 독일민간연구소 ‘저먼 워치’가 온실가스 배출량과 정부 에너지 정책 등을 반영해 만든 ‘기후변화대응지수’ 순위를 보면, 호주는 전체 59개국 중 53위야. 물론 꼴찌는 미국이고. 한국은? 55번째일세. 착잡하지 않는가? 산불로 많은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독한 소리 하는 것 같아 내 마음도 아프지만, 인과응보라는 말이 제일 먼저 나올 수밖에 없어. 화석연료를 펑펑 쓰면서도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은 제대로 하지 않았던 나라가 이번 산불로 응분의 대가를 치루고 있는 거지. 물론 이번 호주의 산불은 미국식 생활양식을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받아들인 우리들에게 자연이 주는 섬뜩한 경고이기도 하지. 지금 당장 행동하지 않으면 언젠가 우리도 겪게 될 고통을 호주 대륙에 사는 뭇 생명들이 조금 먼저 경험하고 있을 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