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바 증거채택 기각·준법감시위 양형 고려
특검 “‘이재용 봐주기’ 명분쌓기” 반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리는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시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리는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시스

시사위크=서예진 기자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된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파기환송심 재판부가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의 실효성을 따져보고 양형에 고려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사건 검찰 수사자료는 증거로 채택되지 않았다. 이에 재판부가 이 부회장 측의 손을 들어주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서울고등법원 형사1부(정준영 부장판사)는 지난 17일 이 부회장 파기환송심 4차 공판을 열었다. 이날 재판부는 “충실한 양형 심리를 위해 제3자 전문가 전문심리위원으로 삼성의 준법감시제도가 잘 실행되는지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이 부회장 측 변호인은 재판에서 삼성 준법감시위의 권한과 관련한 준법경영안을 재판부에 의견서로 제출했다. 삼성은 지난 9일 김지형 전 대법관(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을 위원장으로 한 준법감시위를 마련했다. 재판부는 지난해 10월 파기환송심 첫 공판에서 “실효적인 기업 내부 준법감시제도의 필요성”을 언급한 바 있다.

이 부회장 측 변호인은 준법감시제도 개선안 내용에 대해 “이번 준법감시제도 개선의 목표는 최고 경영진의 위법행위 재발을 방지하고 삼성 내의 준법 문화를 정착하는 것에 있다”면서 “최고 경영진으로부터 독립된 준법감시위원회를 설치하고 실질적 권한을 부여했다”고 설명했다.

재판부가 3명의 전문심리위원단을 구성해 준법감시위의 실효성을 평가하겠다고 밝히자 특검이 “재벌 체제의 혁신 없는 준법감시 제도에 반대하고, 위원 선정에 협조할 생각이 없다”며 “항간에서는 재판부가 준법감시제도를 언급한 후,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구성, 준법감시위원장 기자회견, 변호사 의견 제출로 이어지는데, ‘이재용 봐주기’ 명분 쌓기가 아닌지 우려하고 있다”고 항의했다.

특검이 반대 입장을 밝혔지만 재판부는 전문심리위원 후보로 강일원 전 헌법재판관을 발표했다. 나머지 2인은 이 부회장 측 변호인과 특검이 이달 말까지 선정해야 한다. 재판부는 다음달 14일 공판준비기일을 열어 전문심리위원단과 관련한 세부적인 사항에 대해 양측의 의견을 듣기로 했다.

또한 재판부는 삼성바이오로직스 수사 자료에 대한 증거 채택을 기각했다. 재판부는 “우리 재판은 대법원의 취지에 따라 판단하는 파기환송심”이라면서 “피고인은 대법원의 유죄 판단에 대해 다투고 있지 않고, 파기환송심에서는 승계작업의 일환으로 이뤄지는 각각의 현안과 구체적 대가관계를 특정할 필요가 없으므로 구체적 입증을 위한 증거조사는 사실인정이나 양형 측면에서 모두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에 특검은 “충실한 양형심리가 필요한 이번 재판에서 특검이 추가로 신청한 증거가 양형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재판부의 결정에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며 “유무죄가 확정돼 양형심리를 하는 데 이의신청마저 기각된다면 상고이유로 다툴 수 없다. 결론적으로 이 재판이 불공평하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이의를 신청했다.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초대 위원장으로 내정된 법무법인 지평의 김지형 대표 변호사가 9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의 변호사 사무실에서 위원장 수락 배경 및 위원회 구성 운영방향에 대한 기자 간담회를 하고 있다. /뉴시스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초대 위원장으로 내정된 법무법인 지평의 김지형 대표 변호사가 9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의 변호사 사무실에서 위원장 수락 배경 및 위원회 구성 운영방향에 대한 기자 간담회를 하고 있다. /뉴시스

재판부가 삼성바이오로직스 수사자료 증거 채택을 기각하고, 준법감시위를 양형에 반영하겠다고 발언하면서 일각에서는 재판이 이 부회장 측에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다고 풀이하고 있다.

특검은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 사건 수사를 맡은 이복현 서울 중앙지검 반부패4부장이 이날 공판에 직접 참석할 정도로 증거 채택에 심혈을 기울였다. 서울중앙지금 수사팀은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회계처리 변경이 이 부회장으로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목적이 아니었는지에 초점을 두고 수사를 진행해왔다.

특검은 옛 삼성 미래전략실이 주도해 이 부회장에게 유리하도록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를 조작했다고 보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최대주주는 옛 제일모직이고, 제일모직은 이 부회장이 1대 주주였다. 그러나 재판부가 증거 채택을 기각하면서 삼성 측의 뇌물이 이 부회장의 경영 승계를 위한 것이었다는 특검의 주장이 힘이 빠지게 된 셈이다.

또한 재판부가 첫 공판에서 준법감시제도를 만들라고 권고하고 삼성이 이를 구체화하자, 검토 후 양형에 반영하겠다는 뜻을 공식화한 것도 논란이 되고 있다. 재판부가 요구한 대로 삼성이 이행해오면 감형으로 이어지는 것은 ‘사법거래’라는 지적도 나온다.

경제개혁연대는 논평을 통해 “대법원 양형기준에서 준법감시제도의 시행 등은 참작 사유로 고려하고 있지 않다”면서 “양형사유를 미국 사례에서 찾아 들이미는 재판부의 주장은 상식 밖”이라고 비판했다.

참여연대도 “이번 재판이 승계작업의 존재 자체를 부정한 2심을 파기하고, 승계 현안의 존재 및 뇌물의 대가성을 분명히 인정한 대법원의 판결에 따른 것임을 망각해서도 안 될 일“이라며 준법감시위 설치가 감경 사유가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한편 이날 재판에서는 손경식 CJ그룹 회장에 대한 증인신문이 예정됐으나 손 회장 측은 일본 출장을 사유로 불출석했다. 손 회장은 이 부회장 측 변호인과 특검 모두가 신청한 증인이다. 이 부회장 측 변호인은 증인신청을 철회했다. 특검은 증인신청을 유지하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재판부는 변호인 측 의견을 받아들여 손 회장에 대한 증인채택 결정을 취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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