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희준이 영화 ‘남산의 부장들’(감독 우민호)로 관객과의 만남을 앞두고 있다. /쇼박스
배우 이희준이 영화 ‘남산의 부장들’(감독 우민호)로 관객과의 만남을 앞두고 있다. /쇼박스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중독이다. 중독”

배우 이희준이 다작 이유를 묻자 내놓은 대답이다. 오랜 연극 무대에서 내공을 쌓은 뒤 여러 단편영화를 거쳐 2007년 MBC 드라마 ‘케세라세라’로 데뷔한 그는 현재까지 매해 3~4편의 작품을 꾸준히 선보이며 ‘열일’ 행보를 이어오고 있다.

특히 매 작품, 도전에 도전을 거듭하며 자신만의 필모그래피를 쌓아오고 있어 눈길을 끈다. 드라마 ‘넝쿨째 굴러온 당신’(2012) 속 순정파 면모부터 영화 ‘해무’(2014)의 욕구와 본능에 충실한 인물, ‘1987’(2017)에서 진실을 밝히려는 사회부 기자까지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넘나들며 다채로운 캐릭터를 완성, 대중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희준이 지금까지 달려올 수 있었던 원동력은 ‘연기’ 그 자체다. 자신에게 역할이 주어질 때마다 그 인물을 완벽히 이해하기 위해 치열한 고민의 과정을 겪었고, 작품이 끝날 때마다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다. 쉽지 않은 과정이지만, 이를 통해 얻은 짜릿한 쾌감에 이희준은 어느새 중독돼 있었다.

다음 행보인 ‘남산의 부장들’에서도 이희준은 도전을 택했다. 우민호 감독의 신작이자 김충식 작가의 동명의 논픽션 베스트셀러를 영화화한 ‘남산의 부장들’은 1979년, 제2의 권력자라 불리던 중앙정보부장 김규평이 대한민국 대통령 암살사건을 벌이기 전 40일간의 이야기를 그린다. 한국 근현대사 중 가장 드라마틱한 순간으로 꼽히는 대통령 암살사건을 다룬다.

극 중 이희준은 박통(이성민 분)의 존재를 종교적 신념으로 여기는 충성심 강한 경호실장 곽상천을 연기했다. 실제 당대 대통령의 곁을 지켰던 경호실장을 모티브로 한 인물로, 이희준은 캐릭터를 위해 25kg을 증량했을 뿐 아니라, 걸음걸이부터 말투까지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신, 호평을 얻고 있다.

‘남산의 부장들’로 새로운 연기 변신에 나선 이희준. /쇼박스
‘남산의 부장들’로 새로운 연기 변신에 나선 이희준. /쇼박스

개봉을 앞두고 <시사위크>와 만난 이희준은 언제 그랬냐는 듯 홀쭉해진 모습이었다. “같은 사람이 맞냐”는 기자의 말에 “매니저가 대신 왔다”며 재치 있는 입담으로 유쾌한 인터뷰 시작을 알렸다.

-시나리오 처음 봤을 때 심장이 엄청 뛰었다고 했는데, 완성된 영화는 어떻게 봤나.
“그보다 더 긴장됐다. 손이 막 저리더라. 영화를 두 번 봤는데, 처음 볼 때는 매 장면 조금 더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더 들어가서 인물의 마음에 공감하고 젖고 싶고, 김규평(이병헌 분)의 어린 시절도 나왔으면 좋겠고 그랬다. 그런데 두 번째 보니까 다 의도한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 (우민호) 감독님이 40일간의 객관적 사실을 예리한 칼날을 통해 넘어지지 않으려 진짜 애를 쓰셨구나, 엄청난 에너지를 오랫동안 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인의 연기는 어땠나.
“초반 찍을 때 되게 불안했다. 다른 캐릭터들에 비해 레이어가 없었다. 대사 외에도 서브 텍스트나, 이면에 다른 것들을 갖고 표현하는 걸 즐기는 편인데, 이번 영화에서는 그런 부분을 제거해야 했다. 다른 선배들(이병헌·이성민·곽도원 등)은 눈빛에 여러 감정을 담고 표현하는데, 나는 그냥 이렇게 해도 되나, 불안했다.

그런데 곽상천은 정말 각하가 국가이고, 각하가 하는 일이 나라를 위한 일이고, 그를 돕는 것이 자신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인물이었다. 촬영한지 1년이 지났는데, 다시 보니 내가 그 인물에 맞게 최선을 다하려고 애썼구나 싶더라. 곽상천도 클로즈업 장면이 있었으면 하는 욕심도 있지만, 그건 다른 영화에서 도전해보겠다.(웃음)”

-곽상천 캐릭터는 어떻게 구축해나갔나.
“여러 자료들을 봤지만, 배우로서 상상으로 창작하는 과정이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사실 이해가 안 됐다. 왜 이런 행동을 하지, 대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대본에 있는 사실이기 때문에 이해해야만 했고, 그 과정이 길고 고단했다.

(우민호) 감독님과 대화하면서 얻은 결론은 ‘그냥 사람이니까 그럴 수 있겠다’였다. 만약 일상에서 곽상천과 비슷한 사람을 만나면 말도 하기 싫을 것 같다. 빨리 도망가거나 이해하려 들지도 않을 거다. 그런데 이번 영화를 하면서 그 인물을 공감하려고 애쓰고 나니 작업이 끝났을 때 이해의 폭이 넓어졌다. 포용은 못하겠지만, 그럴 수 있겠다 싶었다.”

‘남산의 부장들’에서 곽상천을 연기한 이희준 스틸컷. /쇼박스
‘남산의 부장들’에서 곽상천을 연기한 이희준 스틸컷. /쇼박스

-체중까지 불리는 열정을 보여줬다.
“호기로 찌우겠다고 했는데, 사실은 엄청 겁났다. 갑자기 배가 나온다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더라. 먹지도 않았는데 토할 것 같고 그랬다. 배우로 생활한지 10년이 넘었는데, 술을 좋아해서 많이 먹거나 배가 나오면 며칠은 자제하고 관리하는 마지막 끈이 있다. 그걸 놔버려야 하니까 심리적으로 허락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108배를 하며 ‘배 나와도 괜찮아’라고 마음을 다스렸다. 심리적으로도 허락이 되면서, 마음껏 소화시키기 시작하더라. 하하. 체중을 비슷하게 이어나가는 것도 어려웠다. 마지막에는 계속 불어나니까 옷이 터질 것 같더라. ‘배우니까 하겠다’고 했는데 쉽진 않았다.”

-걸음걸이부터 목소리 톤까지 달라졌더라.  
“몸을 불리고 나서 정장을 입고 빨리 헬기를 타야 하는 장면이었는데, 그때 뛰어가는데 허벅지가 안 붙고 걸음걸이가 달라지더라. 재밌다 생각이 들어서 그렇게 설정했다. 목소리 톤도 더 낮아졌다. 또 김규평과 각하를 사이에 두고 바라보는 신도 한 번에 목이 안 돌아가서 몸까지 돌리게 되더라. 어느 순간부터 신체적 가면을 즐기게 됐다.”

-빼는 것도 힘들었겠다. 
“촬영 때문에 1년간 유지했는데 당뇨가 올 수 있다고 하더라. 겁도 많고 오래 살고 싶어서 빼야겠다 싶었다. 3개월 감량을 목표로 했는데, 의지가 꺾일 수 있을 것 같아서 화보촬영을 잡아놓고 반강제로 다이어트를 했다. 막판에는 헬스장 바로 앞에 고시원을 끊고 하루에 네 번씩 운동했다.

고시원에서 닭가슴살과 고구마만 먹는데, 눈물이 나더라. 21살에 연극하겠다고 대구에서 올라와서 1년 가까이 고시원에서 살았다. 20년 후 고시원에 있으니 지나간 시간들이 필름처럼 지나가더라. 도와준 많은 분들이 떠올랐다. 그 분들 중 한명이라도 없었다면 내 인생이 많이 달라졌을 거다. 너무 고마웠다. 나 혼자 힘으로 절대 올 수 없었던 20년이 너무 감사했고, 그래서 눈물이 났다.”

열일 행보를 이어오고 있는 이희준. /쇼박스
열일 행보를 이어오고 있는 이희준. /쇼박스

-이번 작품에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이 체중 증량이었나.
“쉽진 않았지만, 힘들었다고 느낀 부분이 하나도 없었다. 정말 즐거운 긴장감이 있었다. 좋은 선배들과 연기를 하고, 스태프들이 얼마나 섬세하게 준비를 했는지. 모든 사람들이 아주 공들인 작업이었고, 힘들기보다 정말 재밌었다. 백여명이 모두 몰입해있던 순간들과 모두가 배우의 연기에 도움을 주려고, 방해되지 않게 애쓰려는 모습들이 기억에 남는다. 정말 좋은 경험이었다. 또 선배들의 연기를 보면서 나와 많이 다른 점을 느꼈고, 배우고 싶은 게 많았다.”

-1년에 꾸준히 3~4 작품씩 선보이고 있는데, 다작을 지향하나.
“중독이라고 본다. 일상보다 극 속의 상황이 짜릿하고 흥분된다. 또 역할을 할 때마다 나와 다른 사람들을 이해해보는 시간들이 쉽지 않지만, 참 좋다. 예를 들어 ‘해무’를 하면서 어부들을 만나 그 사람들의 애환에 대해 듣게 됐고, ‘1987’을 하면서 기자는 뭐가 두려웠을까 공감하게 됐다.

‘미쓰백’을 통해서는 한 여자를 이렇게까지 지킬 수 있는 그 남자의 원동력은 뭘까 고민했다. 그런 생각들을 하는 게 어려우면서도 재밌다. ‘남산의 부장들’이 끝나고 나서는 내가 옳다고 생각한 것이 틀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더 나아가서 옳고 그른 건 없구나 싶었다. 연기를 할 때마다 깨닫는 것들에 대한 쾌감이 있다. (연기는) 중독이다 중독.”

-어떤 배우로 남고 싶나.
“‘남산의 부장’ 대본을 받았을 때 내가 어떻게 할지 결과물에 대해 나도 궁금했다. ‘오!문희’라는 작품도 나문희 선생님과 모자로 호흡을 맞추게 됐는데,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고 기대가 된다. 나 스스로도 다음 작품이 궁금한 배우가 되고 싶다. 내가 나한테 궁금함이 사라지면, 관객도 알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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