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법 시행령 개정으로 사외이사 임기가 6년으로 제한됐다.
상법 시행령 개정으로 사외이사 임기가 6년으로 제한됐다.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정부가 시행령 개정을 통해 사외이사 임기 제한에 나선 가운데, 상당수 기업들의 발등에 불이 떨어지게 됐다. 사외이사 제도를 유명무실하게 전락시킨 기업들도 문제지만, 급작스런 제도 변경이 역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 또한 제기된다.

◇ ‘허수아비·장수 사외이사’ 철퇴 내린 정부

21일 열린 국무회의에서는 법무부가 상정한 상법 시행령 개정안이 의결됐다. 여기엔 주주총회 내실화를 위한 여러 방안과 함께 사외이사의 임기를 6년으로 제한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이에 따라 사외이사는 한 기업에서 재직기간 6년, 계열사를 포함하면 재직기간 9년을 초과할 수 없게 됐다. 또한 해당 기업 계열사에서 퇴직한 뒤 3년이 지나야 사외이사로 선임될 수 있다. 기존엔 2년이었다.

우리나라에 사외이사 제도가 도입된 것은 1990년대 후반 IMF 위기를 겪으면서다. IMF는 기업들의 경영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 최대주주 및 경영진을 견제·감시하고, 소액주주들의 권리를 보호하는 사외이사 제도 도입을 권고했다.

하지만 이후 적잖은 세월이 흐르는 동안 사외이사 제도는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 취지와는 달리 최대주주 또는 경영진의 측근이 사외이사 자리를 차지하거나, 심지어 ‘전관예우’에 활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같은 기업에서 10년 넘게 사외이사직을 유지하고, 소액주주의 목소리를 무시하며 최대주주 및 경영진 의사를 전적으로 따르는 사례도 부지기수였다. ‘허수아비 사외이사’, ‘장수 사외이사’와 같은 지적이 제기된 이유다.

이처럼 사외이사의 유명무실한 실태가 지속되면서, 개선을 촉구하는 목소리는 물론 실제 개선 움직임도 나타났다. 국민연금이 의결권 행사 지침에 재직기간 10년 초과 사외이사 반대를 명시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에 많은 기업들이 ‘장수 사외이사’를 갈아치웠으나, 여전히 일부 기업에서는 부적절한 사외이사 실태가 방치돼있다.

실제 1990년대 후반 언론보도를 통해 국내 1호 사외이사로 기록돼있는 A기업의 B사외이사는 20년이 지난 지금도 같은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C기업은 국민연금의 거듭된 반대에도 불구하고 재직기간이 10년을 넘긴 사외이사를 두 명이나 보유 중이다.

정부가 사외이사 임기 제한에 나선 배경도 바로 여기에 있다. 법무부는 “사외이사가 장기 재직하는 경우 이사회에서의 독립성이 약화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행 법령상 사외이사의 결격사유가 다소 미흡해 사외이사 제도의 취지가 퇴색될 우려가 있었다”고 시행령 개정 배경을 설명했다.

지난해 3월 열린 한 기업의 정기 주주총회에 주주들이 입장하고 있다. /뉴시스
지난해 3월 열린 한 기업의 정기 주주총회에 주주들이 입장하고 있다. /뉴시스

◇ “새 사외이사 어디서 구하나” 기업들 ‘난감’

사외이사의 임기를 제한하는 시행령 개정안은 당장 다가오는 정기 주주총회 시즌부터 상당한 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재직기간이 6년을 넘긴 가운데, 오는 3월 임기가 만료되는 사외이사는 연임이 불가하다. 재직기간이 6년을 넘겼으나 기존 임기가 남은 경우엔 남은 임기만 채울 수 있고, 재직기간이 5년인 경우 1년만 연임이 가능하다.

경제계에 따르면, 새 시행령에 따라 당장 교체해야 하는 사외이사는 700명이 넘고, 기업 수도 500곳 이상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당초 1년 유예 예정이었던 내용이 당·정·청 협의를 거치면서 졸속으로 도입됐다”는 지적과 함께 기업들의 부담 및 혼란이 상당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됐다. 심지어 정부·여당이 ‘친여인사’들의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시행령 개정을 강행했다는 의혹까지 고개를 들었다.

이에 대해 법무부 측은 “법 개정으로 얻는 사회 전체적 이익이 더 크다고 판단해 개정령안의 시행 시기를 결정한 것”이라며 “2018년부터 하위법령을 통한 기업지배구조 개선 방안을 검토했고,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했다. 이 과정에서 경영계 의견을 반영해 개정령안의 일부를 수정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졸속으로 강행된 시행령 개정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아울러 ‘친여인사 자리 만들기용’이란 의혹의 시선에 대해서도 사실무근이라며 선을 긋고 “사외이사의 독립성을 확보해 기업 경영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발등에 불이 떨어진 기업들에선 볼멘소리가 나온다. 적격 사외이사를 구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가운데, 여건이 더욱 까다로워졌다는 목소리다. 또한 한꺼번에 대다수 사외이사가 교체될 경우 적절한 사외이사를 구하지 못해 자격 또는 능력이 충분치 않은 인물이 선임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특히 중견기업 이하 상장사들의 고민이 더욱 클 것으로 보인다. 한 중견기업 관계자는 “대기업처럼 급여를 많이 지급하기 어려운데다, 이사회가 지방에서 열리다보니 사외이사 구하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중견기업 관계자 역시 “사외이사로서 제 역할을 다하기 위해선 회사 및 업계에 대한 이해도도 중요한데, 마땅한 인물을 찾기 어렵거나 모셔오기 힘든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