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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숭호의 늦은 수다] ‘무료 와이파이 사업’이 1호 공약이라고?
[정숭호의 늦은 수다] ‘무료 와이파이 사업’이 1호 공약이라고?
  • 정숭호 칼럼니스트
  • 승인 2020.01.23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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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숭호   ▲언론인 ▲전 한국신문윤리위원
정숭호 ▲언론인 ▲전 한국신문윤리위원

지난 15일 민주당이 발표한 총선 1호 공약은 ‘전국 무료 와이파이 사업’이다. “2022년까지 버스·터미널·학교·박물관·전통시장 등에 와이파이 5만3,000여개를 설치해 서민 통신비를 절감토록 하겠다”는 게 이 공약의 핵심이다. 올 예산 480억원은 확보됐고 추가로 5,300억원 정도가 드는데, 와이파이 구축 및 유지 예산은 통신사업자와 정부·지자체가 1대1로 분담하지만, 정부 부담을 최대 80%까지 확대해 나가겠다는 게 공약 실천 계획이다.

민주당의 이 공약은 발표되자마자 만만치 않은 반대에 부딪혔다. 비용 대비 국민 체감도가 별로 크지 않다는 거다. “그거 한다고 뭐가 좋아지는데?”라는 비아냥도 나왔다. 현재 전국에 깔린 공공 와이파이는 5만4,000여개. 공약대로면 2배가량 확대되지만 5G와 비교해 속도와 품질이 떨어지는데다가 소비자들이 약정으로 묶여 있어 요금제를 쉽게 바꿀 수 없다는 한계를 지적하는 사람도 있다. 품질 좋은 데이터를 무제한 사용하는 조건으로 전화요금을 내고 있는 사람들이 버스나 지하철을 탈 때마다 전화기 설정을 바꿔가며 효율 떨어지는 공공 와이파이로 바꾸겠냐는 질문도 나온다, 번거로운 걸 싫어하는 사람들의 심리도 염두에 둬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 시민단체 간부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 중 기본료 폐지, 단말기 지원금 분리공시제도는 폐기되고 후순위 공약이던 공공 와이파이를 재탕한 것에 지나지 않다. 5G 보편화로 통신비 부담이 늘어난 상황에서 기본료 폐지나 보편요금제 도입이 더 시급하다”며 반대했다. “부패한 586이 또 해먹으려는 거”라고 날을 세우는 사람도 있다. “태양광 사업으로 멀쩡한 산하를 파헤치며 자기들 배를 채우다가 그게 바닥이 나니까 공공 와이파이 사업으로 눈을 돌렸다”는 설명이다. 이들은 “전 법무부 장관 조국이 얽혀 있는 사모펀드 코링크PE가 투자한 PNP플러스의 자회사 메가크래프트가 당초 한국정보화진흥원(NIA)의 관급공사 버스공공와이파이 사업을 독식하려 한 게 증거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인다, 지금은 정황증거일 뿐이나 수사만 제대로 진행되면 결정적 물증이 될 거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나는 이런 경제적, 기술적, 정치적 문제보다는 공공 와이파이가 사람들의 성찰(省察)력을 더욱 낮출 것이어서 걱정된다. 한국인들의 성찰력은 이미 바닥이다. 성냥불만 붙여도 냄비처럼 들끓는 것, 악머구리처럼 떼로 모여 아우성치고 울어대는 것, 다른 이에게 귀를 열지 않는 것, 다른 것은 무조건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거짓말하는 것, ‘내로남불’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 등등이 그 증거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회원국 국민의 ‘성찰 수준’을 조사한다면 꼴찌는 무조건 대한민국이 차지하게 돼 있다.

한국인의 성찰력-남 탓하기 전에 자기 허물을 돌아보려는 버릇-이 땅바닥에 떨어지게 된 원인은 여러 가지겠으나, 무엇보다 사람들이 성찰할 시간을 가질 수 없게 된 것이 가장 클 것이다. 손가락으로 터치만 하면 재미있는 볼거리, 즐길거리가 휴대전화기에서 쏟아져 나오는데, 생각할 시간, 성찰할 시간이 있겠는가? 얼마나 재미있는지, 우리말을 잘 모르는 외국인들 중에서도 한국의 예능 프로그램을 세계 최고로 꼽는 사람도 많다고 하지 않는가?

공공 와이파이 사업은 ‘정보격차 해소’가 명분이지만, 지금 봐서는 시민들의 관심을 TV와 유튜브가 쉴 틈 없이 제공하는 연예 오락과, 규모와 범위를 가늠할 수 없이 범람하는 선동적 가짜뉴스에 더 오래 붙잡아 둘 가능성이 크다. 지금도 부족한 성찰의 시간은 아예 없어질지 모른다. 지하철에서 전화기를 들여다보는 사람을 세는 것보다 그렇지 않은 사람을 세는 것이 더 쉬워진 지 오래고, 버스에도 올라앉자마자 이어폰을 귀에 꽂고 드라마나 게임, 스포츠 중계에 집중하는 사람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나는 한낮의 버스 안에서 전화기로 포르노를 보는 사람도 목격한 적 있다.)

일각에서는 민주당의 1호 공약을, 이번 총선부터 선거권을 행사하게 된 18세 유권자를 비롯 청년층의 표를 획득하려는 미끼라고 말한다. 틀리지 않다고 생각한다. 데이터 사용량이 많은, 전화요금 부담이 작지 않을 젊은이들이 전국에 무료 와이파이가 깔리는 걸 왜 싫어하겠는가? 하지만, 그 반대급부는 젊은이들의 성찰 기회가 더 줄어든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은 갈수록 생각없는 사람이 되어간다는 것이다.

사람이 생각이 없어지면 어떻게 되나? 귀가 얇아져 남의 말에 휘둘리게 된다. 세뇌하기 좋은 대상이 된다. 민주당의 1호 공약이 정보를 독점 생산, 공급해 생각이 사라진 사람들의 두뇌를 통제, 관리하려는 건 아닐까라는 의혹이 막 생겨나기 시작한다. 공포와 두려움으로 사람들을 통제하려던 조지 오웰의 빅브라더와는 달리 오락이라는 마약으로 시민을 마취시키려던 새로운 빅브라더들의 빅 픽처가 혹시 이 1호 공약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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