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 누군가는 몰래 촬영하고, 누군가는 소비한다. 이 과정에서 누군가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는다. 온라인 공간으로 퍼지는 젠더 폭력. 우리는 이것을 ‘디지털 성범죄’라고 부른다. 우리 사회의 디지털 성범죄는 생각보다 자주, 많이 일어나고 있다.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두려움. 무엇이 세상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디지털 성범죄가 사라지지 않는 현실,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없는 것일까. [편집자주]

한번 유포된 불법촬영물은 언제 다시 모습을 드러낼지 모른다. 이로 인해 피해자들은 극심한 고통을 받아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 어렵다.

시사위크=박설민 기자  ‘박제’의 사전적 의미는 “동물의 가죽을 벗겨 썩지 않도록 방부 처리한 후 솜 등을 넣어 살아 있을 때와 같은 모양으로 만드는 것”을 뜻한다. 박제된 동물은 모습이 변하지 않고 오랜 시간 유지가 가능하다. 

인터넷상에도 박제가 존재한다. 어린 시절 달았던 창피한 댓글, 욕설 등 잊고 싶은 ‘흑역사’들이 삭제되지 않은 채 남아있다. 그러나 사냥꾼에게 잡혀 박제되는 동물들처럼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온라인에 박제돼 고통 받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불법촬영’ 범죄의 피해자들이다.

◇ 지워지지 않는 낙인 ‘몰카’... 피해자 스스로 죄책감에 빠지기도

불법촬영 피해자들은 언제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를지 모르는 불법촬영물에 대한 공포에 떨고 있는 상태다. 최초 유포자가 검거됐다 하더라도 불법촬영물을 다운로드받은 누군가가 다시 유포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피해자들은 불법촬영물을 자신의 직장동료, 친구, 가족 등 가까운 지인들이 보게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정상적인 생활이 거의 불가능하다. 이로 인해 정신과 치료를 받거나, 자해, 심지어 극단적인 생각을 할 정도로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린다.

지금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불법촬영 가해자에 대한 처벌 강화와 불법촬영물 삭제 관련 법안 강화 요청이 올라오고 있다. 한 몰카 피해자는 “하루종일 고통에 시달리다 지쳐서 잠이 들고 꿈에서도 고통에 헤매다 잠에서 깬다”며 “눈을 감으면 영상이 떠오르고 다른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는 것 같다”고 밝혔다. 이어 “내가 나오는 불법촬영 동영상은 인터넷상에서 영원히 돌아다닐 것”이라며 “죽지 않는다면 고통에서 벗어나올 수 없을 것 같다”고 전했다.

몰카 범죄 수사 시 피해자의 고통은 반드시 고려해야 할 중요한 요소다. 오랜 시간 고통에 시달린 피해자는 스스로를 자책하는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너무 오랜 시간 불법촬영물 유포에 시달리는 피해자들은 스스로를 죄인이 아닌가 의심하는 지경이 이른다. 피해자들은 ‘내가 좀 더 조심했어야 했나’, ‘속은 내가 잘못한 것은 아닌가’하는 자책감에 시달리며 이중고를 겪게 된다.

전문가들은 범죄자 처벌 외에도 피해자들을 스스로에게 자책감을 갖지 않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유튜브 채널 ‘닥터프렌즈’을 통해 지난해 3월 방영된 ‘정신과 의사가 보는 불법촬영 하는 사람 심리’에서 오진승 정신의학과전문의는 “몰카 범죄가 더욱더 안타까운 것은 피해자 분들은 죄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죄책감, 자책감을 갖게 된다는 점”이라며 “가해자에 대한 처벌도 중요하지만 피해자가 겪는 심적인 고통에 대한 부분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고 전했다.

◇ “잊혀질 권리를 찾아드립니다” 디지털 장의사 등장

불법촬영물로 인해 고통받는 피해자들이 증가함에 따라 인터넷상에서 ‘잊혀질 권리’를 찾아주는 ‘디지털 장의사’도 주목받고 있다. 디지털 장의사는 의뢰인에 요청에 따라 온라인상에 남은 사진, 댓글, 영상 등의 흔적을 지워주는 사람들이다. 최근엔 불법촬영물 유포 피해자들이 영상 삭제를 의뢰하는 사례도 크게 증가하고 있다.

디지털 장의사 업체인 박형진 이지컴즈 대표는 시사위크와의 대화에서 통해 “몰카 촬영 및 불법촬영물 유포 문제가 아주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박형진 대표는 “불법촬영물 관련 삭제 상담이 매주 20건 이상 들어오고 있다”며 “의뢰인들의 요청은 리벤지 포르노, 지인 능욕 등의 불법촬영물이 대다수”라고 말했다. 다만 화장실 등 공공장소 불법촬영의 경우 피해자 본인이 인지조차 못하는 경우가 많아 상담 및 의뢰 비율이 적은 편이라고 밝혔다.

박형진 대표의 설명에 따르면 디지털 장의사들의 불법촬영물 삭제 작업은 유출 경위 파악부터 시작된다. 이후 불법촬영물 유포에 대한 증거 수집과 IP주소 추적을 통해 유포자를 찾아내고 삭제요청을 한다. 

또한 디지털 장의사들은 단순히 불법촬영물을 삭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경찰의 수사를 돕고 있다. 불법촬영물의 최초 유포자와 공유하고 있는 커뮤니티 정보 등을 수집한 뒤 수사기관에 제보하는 것이다.

박형진 대표는 “IP주소 추적을 통해 알아낸 불법촬영물 유포자에 대한 정보를 경찰에 첩보하고 있다”며 “이를 통해 텔레그램에서 불법촬영물을 업로드하고 공유하는 음란대화방 운영자를 체포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2017년 기준 디지털 장의사 업체 '이지컴즈'의 의뢰 현황. 절반이 넘는 의뢰가 몰카와 리벤지 포르노 등 불법촬영물 관련이다./ 이지컴즈

◇ 피해 최소화 ‘골든타임’ 7일… 유포자들 일말의 가책도 없어

디지털 장의사와 경찰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빠르게 퍼져나가는 인터넷 환경과 해외에 서버를 둔 불법 성인사이트 때문에 불법촬영물의 완벽한 봉쇄는 어렵다. 이 때문에 처음 유포될 시 바로 차단을 시작하는 ‘골든타임’이 매우 중요하게 작용한다.

박형진 대표의 설명에 따르면 불법촬영된 사진이나 동영상이 인터넷상에 완전히 확산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7일이다. 즉,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마지노선 역시 7일 이내인 셈이다. 처음 유포 사실을 알게 됐다면 곧바로 사이버 수사대에 신고하고 디지털 장의사 등 불법촬영물을 삭제할 수 있는 기관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처럼 무고한 피해자들은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많은 비용과 시간, 노력,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반면 불법촬영물 유포자들은 이에 대해 일말의 가책조차 느끼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박형진 대표는 “의뢰인의 긴급한 요청 시 유포자에게 직접 삭제를 요청하면 ‘삭제 했습니다’, ‘삭제했는데 뭘 어쩌라고요’, 이런 식으로 뻔뻔하게 답변하는 것이 대부분”이라며 “이럴 땐 의뢰인의 심정을 알고 있는 우리도 진심으로 화가 난다”고 밝혔다.

이어 “불법촬영물을 유포하거나 이를 이용해 협박하는 범죄자들에게 성폭력 혐의로 처벌해야 한다”며 “삭제 비용 역시 평생 가해자가 부담하는 등 강력한 처벌이 있어야 불법촬영물 유포를 예방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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