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바른미래당 전 대표가 23일 대전 유성구 카이스트를 찾아 정송 AI 대학원장과 비공개 면담을 갖기에 앞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시스
안철수 바른미래당 전 대표가 23일 대전 유성구 카이스트를 찾아 정송 AI 대학원장과 비공개 면담을 갖기에 앞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시스

시사위크=정호영 기자  안철수 바른미래당 전 대표의 정치 행보가 심상치 않다. 안 전 대표는 귀국 후 외부 활동에 집중하고 있으나, '(안 전 대표가) 요구하는 모든 것을 들어주겠다'고 거듭 공언해왔던 손학규 대표와는 만남은커녕 언급조차 꺼리는 모습이다.

당내 일각에서는 안 전 대표가 당장 손 대표를 외면하는 행보를 보이지만, 결국 손 대표를 만나 당권을 확보하기 위한 명분 쌓기라는 관측이 나온다. 동쪽에서 사전 공작한 결과로 서쪽의 진짜 목표물을 겨냥하는 이른바 '성동격서(聲東擊西)' 전략이라는 것이다.

안 전 대표는 23일 카이스트 AI 대학원 방문 일정을 마치고 기자들과 만나 "설 연휴가 접어드는데 좀 더 본격적으로 어떤 일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뵙고 의논해 하나씩 갖춰나갈 시기"라며 "많은 뜻있는 분들을 모을 생각"이라고 했다.

안 전 대표는 바른미래당 소속으로 총선에 나설지 묻는 질문에는 모호하게 답했다. 그는 "아직 당내 의원, 당원, 지역위원장들을 만나지 못했다"며 "이제부터 만나면서 어떤 방향이 가장 바람직한지 함께 결정을 내릴 시기"라고 했다.

안 전 대표가 손 대표를 만나 않는 것은 정치적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기보다 1년여간 해외 생활을 마치고 귀국하자마자 '당권을 달라'고 요구하기에 명분이 빈약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안 전 대표는 복귀 이후 연일 굵직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안 전 대표의 이날 카이스트 방문은 지난 19일 귀국 이후 나흘째 일정이다. 20일에는 국립현충원과 광주 5·18 국립묘역을 찾았다. 21일에는 김경률 전 참여연대 집행위원장을 만났고, 이후 이동섭·권은희 등 안철수계 의원들과 신촌 집무실에서 회동했다. 22일에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청년창업사관학교를 찾았다.

그의 일정에는 늘 안철수계(권은희·김삼화·김수민·김중로·신용현·이태규·이동섭) 의원 일부와 김도식 전 비서실장 등 국민의당 시절 측근들이 따라붙고 있다.

반면 안 전 대표 입국 전 "적극 환영한다"며 수 차례 러브콜을 날렸던 손 대표와의 만남은 불발됐다. 결국 바른미래당 전·현직 대표의 만남은 설 연휴 이후를 기약하게 됐다.

당 일각에서는 안 전 대표의 이같은 행보에 대해 아쉽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경쟁 정당들은 일찌감치 총선 체제로 전환해 통합·자강 등에 당력을 집중하고 있는데, 정작 바른미래당은 손 대표와 안 전 대표의 만남이 지체되면서 앞서가지 못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결국 바른미래당 전·현직 대표의 '당권 교통정리'는 설 연휴 직후인 28일이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안 전 대표와 바른미래당 의원 17명은 이날 여의도의 한 중식당에서 회동할 예정이다. 안 전 대표가 의원들과 만난 뒤 손 대표에게 당권을 포함한 당의 진로에 대해 담판을 지을 것으로 관측된다.

바른미래당 관계자는 <시사위크>와 통화에서 "안 전 대표가 보인 일련의 행보는 손 대표와 담판을 짓기 위한 사전 작업 아니겠느냐"며 "안 전 대표의 요구가 합리적이면 당권을 넘기겠지만, 백기투항을 요구한다면 마찰을 빚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안 전 대표가 손 대표와 합심해 바른미래당 리모델링에 나설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김정화 대변인은 이날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손 대표와 안 전 대표가 만나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면 바른미래당 재건으로 갈 것으로 확신한다"며 "두 분의 결이 그렇게 차이가 있지 않다"고 했다.

다만 안철수계를 중심으로 손 대표 지도부에 대한 당내 퇴진 여론이 우세한 것은 분명하다. 안 전 대표가 손 대표와 척을 지지 않으면서도 당 내부에 자리한 깊은 갈등의 골을 깨끗이 정리할 최선의 수순을 찾아낼지 주목된다.

당 관계자는 "만약이라도 안 전 대표가 복귀하자마자 손 대표와 당권을 놓고 싸우는 모습을 국민 앞에 보일 경우 정치 생명에 심각한 타격이 있을 것"이라며 "설 이후가 안 전 대표의 정치력을 보이는 첫 시험대가 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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