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4-01 00:42
[정숭호의 늦은 수다] 우리들의 생명력
[정숭호의 늦은 수다] 우리들의 생명력
  • 정숭호 칼럼니스트
  • 승인 2020.02.03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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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숭호   ▲언론인 ▲전 한국신문윤리위원
정숭호 ▲언론인 ▲전 한국신문윤리위원

여행 중에 어린 것이 크게 앓았다. 한밤중 외국 땅 호텔방에서 아이 앓는 소리를 고통 속에서 들었다. 출발할 때 모양새는 좋았다. 폴란드에서 일하는 둘째사위가 장인·장모님 한번 다니러 오시라고, 거기서 빈을 거쳐 부다페스트와 프라하도 돌아보시라고 바람을 넣자 맏사위가 비행기 표를 장만해줘 떠난 길이었다. 아이는 아이라는 걸 깜빡하고 추운 날씨에 먼 길을 데리고 다닌 게 화근이었다.

첫날 아이는 제 집이 있는 브로츠와프(폴란드)에서 프라하공항까지 340㎞를 왕복했다. 돌아갈 때는 우리와 함께였으니 어미와 단 둘이서 우리를 데리러 올 때처럼 심심하진 않았겠지만, 1년 4개월짜리가 왕복 8시간 이상 카시트에 앉아서 그 먼 길을 오갔으니 속은 이미 크게 흔들려 있었을 것이다. 다음날은 인구 67만 명으로 작지 않은 도시인 브로츠와프 시내를 우리와 함께 다녔고, 그 다음날은 7시간 걸려 540㎞ 떨어진 빈으로 갔다.

아이는 빈 도착 다음날 밤부터 앓기 시작했다. 오페라극장과 부근의 미술관 박물관과 궁전들을 두루 구경하고 호텔로 돌아갈 무렵 시작된 미열이 밤중에는 40.3도까지 치솟았다. 낮에는 그런대로 견딜 만한 날씨여서 탈 없이 다녔으나, 차가워진 바람이 세찼다. 유모차에 앉혔다가는 앞에서 부는 바람을 곧바로 맞을세라, 내 품에 안았지만 오히려 안긴 아이가 바람에 나를 막아주는 꼴이 됐다.

밤새 아이의 숨소리에서 가래 끓는 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가슴을 할딱이면서, 제 손가락을 목구멍에 집어넣었다 빼기를 거듭 되풀이했다. 호흡을 가로막는 가래를 제 손으로 뽑아내려는 것 같았다. 가져간 해열제는 먹고 나서 약간 동안만 열을 약간 내려줬을 뿐, 곧 온몸이 다시 펄펄 끓었다. 제 엄마가 아이를 달래다가 울었다. 외할미가 미지근한 물에 아이를 담가 체온을 식혔지만 오래 가지 않았고, 물수건을 이마에 얹으면 그것도 갑갑한지 제 손으로 뿌리쳤다. 브로츠와프에서 전화기로 들려오는 제 아빠의 목소리에는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무력감이 가라앉아 있었다.

하아악, 하아악, 아이의 가래 끓는 숨소리를 듣다가 8년 전 내가 앓은 폐렴 생각에 가슴이 덜컥했다. 폐렴은 폐가 제 기능을 못 하는 병이다. 숨을 못 쉬게 되는 병이다. 숨 쉬는 것이 괴로운 병이 폐렴인 것이다. 정말 숨쉬기가 그렇게 힘든 것인 줄 몰랐다. 눕는 게 더 힘들었다. 폐가 눌리니 숨쉬기가 더 괴로웠다. 밤새 앉아서 간신히 숨을 쉬다가 병원에 갔더니 당장 입원해야 한다고 해 깜짝 놀랐다. 저 어린 것이 앓는 게 그 괴로운 병이라면? 그 병 때문에 큰일이 벌어진다면? 불길한 생각이 여러 갈래로 뻗어나갔다.

아이는 하루를 꼬박 더 앓다가 빈의 어린이 전용병원(St. Anna Kinderspital Wien)에서 후두염 진단을 받았다. 의사는 좌약 해열제와 좌약 후두염 치료제를 처방해줬다, 아이는 곧 좋아졌다. 간헐적으로 고열증상이 나타났지만 좌약을 쓰면 내려갔다. 열이 내려가면 할머니가 주는 껍질 벗긴 귤 조각 손톱만한 것을 오물거리며 받아먹거나, 주스도 빨아마셨다. 가래 끓는 소리도 잦아들었다. 호텔에서 하루를 더 보내고 브로츠와프 제 집으로 돌아왔다. 하룻밤이 지나자 간간이 기침을 할 뿐, 병세는 거의 사라졌다. 천진한 웃음소리로 귀여움을 떨던 제 본 모습으로 돌아왔다.

브로츠와프의 명물인 키작은 사람들을 돋보기로 관찰하는 키작은 사람을 관찰하는 손녀. 돌아오던 날, 날씨가 좋아서 잠깐 나갔다가 찍었다. 지금 생각하니, 괴로운 이틀 밤을 그 작고 여린 몸뚱어리로 버텨낸 아이의 생명력이 더 경이롭다. / 정숭호  칼럼니스트
브로츠와프의 명물인 키작은 사람들을 돋보기로 관찰하는 키작은 사람을 관찰하는 손녀. 돌아오던 날, 날씨가 좋아서 잠깐 나갔다가 찍었다. 지금 생각하니, 괴로운 이틀 밤을 이 작고 여린 몸뚱어리로 버텨낸 아이의 생명력이 더 경이롭다. / 정숭호 칼럼니스트

제 엄마의 헌신과 할머니의 돌봄, 의사의 처방이 아이의 이른 회복을 도왔겠지만 지금 생각하니, 괴로운 이틀 밤을 그 작고 여린 몸뚱어리로 버텨낸 아이의 생명력이 더 경이롭다. 거칠고 급한 숨소리와 팔딱이던 가슴, 칭얼거림과 도리질은 아이가 살아남으려는 투쟁이었다. 제가 견디고 이겨내지 못했더라면 어떤 도움도 소용없었을 것이다. 아이의 몸속에는 정말로 강인한 생명력이 자리 잡고 있었다.

돌아온 지 사나흘, 책상머리에서 아이를 생각하다가 이 글을 쓰기로 했다. 병마를 이겨낸 아이가 고마웠다. 우리 모두 그런 생명력이 있었던 존재였을 것이라는 데에도 생각이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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