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태 한진그룹 회장과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본격적인 경영권 다툼에 돌입했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과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본격적인 경영권 다툼에 돌입했다.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한진그룹 ‘남매의 난’이 본격적인 ‘전쟁’에 돌입했다. 고(故) 조양호 전 한진그룹 회장이 눈을 감은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전혀 예상치 못한 국면이 펼쳐지고 있는 모습이다.

◇ 조현아, KCGI-반도건설과 손잡다

지난달 31일, KCGI 측은 공시를 통해 반도건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과 공동보유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KCGI 17.29%, 반도건설 8.29%, 조현아 전 부사장 6.49% 등 이들의 지분 합계는 32.06%다.

이들이 서로 손을 맞잡은 것은 ‘반(反) 조원태’ 연합전선 구축으로 해석된다. 실제 이들은 이전까지 어떠한 관계도 없었다. KCGI와 조현아 전 부사장의 경우 오히려 서로 대립하는 관계였다. 2018년 한진칼 지분을 매입하고 경영권 분쟁에 불을 붙인 KCGI는 한진그룹 오너일가의 도덕성 문제를 꾸준히 지적한 바 있으며, 과거 ‘땅콩회항’ 사건으로 파문을 일으켰던 조현아 전 부사장은 이 같은 지적의 핵심 표적이었다. KCGI와 조현아 전 부사장만 놓고 보면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된 모양새다.

이처럼 전혀 예상치 못한 연합전선이 구축되면서 한진그룹 경영권 분쟁은 미궁 속에 빠지게 됐다. 고 조양호 전 회장 별세 직후 회장 자리에 올라 후계자로서 분주한 행보를 보였던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의 경영권 방어에 빨간불이 들어온 것이다.

조원태 회장은 6.52%의 지분을 보유 중이며 조현민 한진칼 전무(6.47%), 모친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5.31%) 등 특수관계인 지분을 더하면 22.25%다. 여기에 조원태 회장의 ‘우군’으로 여겨지는 델타항공 지분까지 더하면 32.45%가 된다.

즉, 조원태 회장 측과 조현아 전 부사장 측의 지분 차이는 0.39% 차이에 불과하다. 최근 한진칼 지분을 매입한 카카오 지분(1%)을 조원태 회장 측으로 더해도 차이는 1.5%가 채 되지 않는다.

만약 또 다른 가족이 조원태 회장을 등지고 조현아 전 부사장 측과 손을 잡을 경우 지분 상황은 순식간에 역전된다. 조현아 전 부사장이 혈육인 조원태 회장 대신 KCGI와 손을 잡은 만큼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단할 수 없다. 특히 이명희 전 이사장의 경우 앞서 조원태 회장과 다툼을 벌인 정황이 공개되기도 했다.

외부요인 또한 주목해야 한다. 당장 국민연금은 한진칼 지분 4.11%를 손에 쥐고 있다. 국민연금의 선택에 따라 경영권 분쟁의 희비가 엇갈릴 수 있는 상황이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3월 대한항공 주주총회에서 고 조양호 전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에 반대표를 던져 낙마시킨 바 있다.

기관투자자 등 소액주주들의 ‘민심’도 한층 더 중요해졌다. 현재 한진칼 소액주주들이 보유 중인 주식 규모는 정확히 집계되지 않았으나, 30% 안팎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한진그룹 경영권을 놓고 분쟁을 벌이는 양측은 지분 차이가 크게 좁혀진 가운데 오는 3월 정기 주주총회에서 격돌할 전망이다. /뉴시스
한진그룹 경영권을 놓고 분쟁을 벌이는 양측은 지분 차이가 크게 좁혀진 가운데 오는 3월 정기 주주총회에서 격돌할 전망이다. /뉴시스

◇ 3월 정기 주주총회가 분수령

남매에서 적으로 마주서게 된 조원태 회장과 조현아 전 부사장의 첫 ‘전투’는 다가오는 3월 정기 주주총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조원태 회장의 사내이사 임기가 오는 3월 만료되기 때문이다. 양측의 지분 대결 결과에 따라 조원태 회장의 연임이 무산돼 경영권을 빼앗기거나, KCGI-반도건설-조현아 전 부사장 측 인사가 이사회에 대거 진입할 수 있다.

조현아 전 부사장은 KCGI, 반도건설과 함께 발표한 공동입장문을 통해 “대한항공을 비롯한 한진그룹의 심각한 위기상황이 현재 경영진에 의해 개선될 수 없다”고 지적하며 “전문경영인체제와 이사회 중심 경영을 강화해 어느 특정 주주 개인의 이익에 좌우되지 않고 그동안 소외됐던 일반주주들의 이익을 증진하며 주주 공동이익을 구현할 수 있는 모범적인 지배구조를 정립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경영 일선에 나서지 않고 전문경영인에 의한 혁신적 경영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에 맞서 조원태 회장은 소액주주 표심 잡기에 주력할 전망이다.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중국 우한에 투입된 전세기에 직접 탑승한 것도 긍정적인 여론 형성을 통해 소액주주들의 마음을 잡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또한 KCGI의 공세에 맞서 당기순이익의 절반을 배당해 호응을 얻었던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올해도 대규모 배당 등 주주친화 방안을 적극 내놓을 가능성이 높다.

이미 예상치 못한 국면이 현실로 나타난 만큼, 정기 주주총회 이후에도 모든 가능성이 열려있다. 특히 태생적 배경이 확연히 다른 KCGI와 조현아 전 부사장의 동행이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지도 관심이 집중되는 대목이다.

역대 그 어떤 재벌가 경영권 분쟁보다 복잡하고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한진그룹 ‘남매의 난’이 누구의 승리로 끝나게 될지, 그 과정에서 한진그룹과 대한항공은 어떤 변화를 맞게 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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