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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자의 육아일기
[‘초보아빠’ 권기자의 육아일기㊲] 노키즈존 대신 노배드패런츠존, 해법찾기의 출발입니다
2020. 02. 11 by 권정두 기자 swgwon14@sisaweek.com
논란이 끊이지 않는 노키즈존의 대안으로 노배드패런츠존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논란이 끊이지 않는 노키즈존의 대안으로 노배드패런츠존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연초부터 난데없이 덮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온통 난리입니다. 다행히 국내에서의 확산세는 우려만큼 심하지 않아 다행입니다만, 아이 키우는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걱정과 불편이 더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희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계속 보내고 있는데요. 사태가 점점 심각해지면서 어린이집 안에서도 마스크를 쓰고 있는 아이를 보면 씁쓸함을 감추기 어렵습니다. 사람 많은 곳에 가는 것 자체가 꺼려지다보니 아이와 함께 외출하는 일도 많이 줄었습니다. 졸지에 ‘방콕’ 신세가 된 아이를 보면 제가 더 답답하네요.

확진자 발생지역이거나 감염 걱정으로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는 부모님들은 더 힘드실 겁니다. 부디 하루빨리 사태가 진정돼 다가오는 봄은 마음껏 외출할 수 있길 바랍니다.

오늘은 앞서 다루기도 했던 ‘노키즈존’ 문제의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는 ‘노배드패런츠존’ 이야기를 해보려합니다.

노키즈존은 다들 아실 겁니다. 아이들의 입장을 금지하는 곳이죠. 논란이 불거진 것은 주로 식당과 카페 등이었습니다. 아이들로 인해 다른 손님들이 방해받는다며 노키즈존이 필요하다는 목소리와 모든 아이를 문제아로 낙인찍는 혐오이자 차별이란 목소리가 대립했습니다.

지난해 말엔 극장가에서도 같은 논란이 불거진 바 있죠. 어른·아이 가리지 않고 많은 사랑을 받은 애니메이션 영화 ‘겨울왕국2’가 개봉하면서입니다. 상당수 어른 관객들은 아이들 때문에 영화에 집중할 수 없다고 호소했고, 노키즈존 상영관이 필요하다는 요구로 이어지면서 논란이 재현됐습니다.

이 같은 논란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닙니다. 입장 및 시각이 극명하게 엇갈리고, 정답을 내릴 수 없는 일이다보니 수년째 같은 논란이 반복되고 있는 모습입니다. 마구 떠들고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방치하거나 황당한 요구를 하는 부모들을 보면 노키즈존의 필요성에 무게가 실리고, 평소 철저하게 매너를 신경 쓰는 가족이 씁쓸하게 발길을 돌리는 모습을 보면 노키존의 부당함에 무게가 실리곤 합니다.

이제는 아이와 함께 식당에 가는 일이 참 쉽지 않습니다. 앞으론 더 어려워지겠죠?
이제는 아이와 함께 식당에 가는 일이 참 쉽지 않습니다. 앞으론 더 어려워지겠죠?

그런데 최근 노키즈존 논란의 대안 중 하나로 노배드패런츠존이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아이들을 무조건 막지 않는 대신, 아이들의 소란을 방치하는 부모들의 책임을 강조한 것입니다. 아이들에 대한 일방적인 혐오와 낙인, 차별을 지양하는 동시에 다른 손님에게 피해를 주지 말아야 한다는 경각심을 부모에게 심어주는 거죠.

물론 노배드패런츠존 역시 논란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나쁜 부모’의 기준이 모호해 사실상 노키즈존이 아닌 것이나 다름없다는 지적과 명칭만 다를 뿐 노키즈존과 똑같다는 지적이 공존합니다. 후자의 측면에서는 이른바 ‘맘충’과 같은 혐오와 다를 바 없고, 이 역시 엄연히 차별에 해당한다는 지적이 제기되죠.

저는 노배드패런츠존이 노키즈존 논란의 난해한 문제를 해소하는 중요한 발걸음이라고 생각합니다.

노키즈존 문제에 있어 우리가 절대 하지 말아야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아이들에게 책임을 돌리고, 아이들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시끄럽고 주의가 산만한 것은 아이들의 지극히 자연스럽고 정상적인 모습이지, 아이들의 잘못은 아닙니다. 하지만 노키즈존은 명칭부터 아이들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다른 손님들이 무조건 피해를 감수해야 한다거나, 아이들을 천방지축으로 내버려둬도 괜찮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수가 함께 이용하는 공간인 만큼 서로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필요한 것 또한 분명합니다. 아이들 역시 이러한 점들을 차근차근 배워나가야 하겠죠. 그 역할이 부모에게 있는 것이고요.

노배드패런츠존에는 이 두 가지 측면이 잘 반영돼있다고 생각합니다. 노키즈존을 둘러싼 찬반 양측의 요구를 모두 반영하면서 특히 노키즈존 여부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하는데 초점이 맞춰져있다는 점이 그렇습니다. 완벽한 해답은 아니겠지만, 노키즈존 문제를 풀어나가는데 있어 분명 의미 있는 진전입니다.

저는 노키즈존 논란의 본질이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에 있다고 봅니다. 저 또한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주변의 아이 및 부모들을 눈여겨보게 되곤 하는데요.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노매너 사례는 전체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합니다. 절대 다수는 다른 손님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각별히 신경 쓰고 조심합니다. 노키즈존 논란이 반복되고 ‘맘충’ 같은 단어까지 등장하면서, 행여나 ‘진상’이란 소리를 듣지 않을까 싶어 더욱 조심하게 되죠.

과연 어른들은 모두 매너를 잘 지킬까요? 공공장소에서 시끄럽게 떠드는 어른, 새치기를 하는 어른, 아무데서나 담배를 피우는 어른 등 ‘노매너 어른’도 참 많습니다. 전체에서 비율을 따져봤을 때, 노매너 어른이 더 많을까요, 천방지축 아이와 이를 방치하는 부모가 더 많을까요. 노매너 어른이 극히 일부이듯, 다른 손님들에게 피해를 주는 아이와 부모도 극히 일부 아닐까요.

반대로 아이들을 위해 적극 배려해주는 식당이나 손님들도 참 많습니다. 노키즈존이라며 아이들에게 빗장을 걸어 잠그고 아이들을 무작정 매도하는 손님들도 있지만, 전체에서는 작은 일부일 뿐입니다.

결국 양 극단의 극히 일부 사례로 인해 서로 배려하고 이해하는 절대 다수가 대립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매너를 지키지 않는 극히 일부 아이 및 부모로 인해 모든 아이 및 부모를 거부하는 노키즈존이 과연 바람직할까요.

이러한 측면에서도 노배드패런츠존으로의 변화는 의미가 큽니다. 비정상을 전제하는 것에서 정상을 전제하는 것으로의 변화이니까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같은 감염병이라면 모르겠지만, 우리 사회에선 ‘격리’가 결코 답이 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