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가 한창이던 지난 6일 썰렁한 인천국제공항 출국장 모습. /뉴시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가 한창이던 지난 6일 썰렁한 인천국제공항 출국장 모습. /뉴시스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 속 ‘해외여행 금지령’을 내리는 기업들이 늘고 있는 가운데, 이를 둘러싼 갑론을박이 치열하다. 혹시라도 있을 수 있는 감염병 확산 및 기업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예방적 차원이란 주장과, 지나친 처사이자 불법에 해당한다는 지적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 발생 이후 여행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이미 예약해둔 해외여행을 취소해야할지 고민하는 게시물이 상당수 올라오고 있다. 특히 최근엔 소속 기업에서 해외여행 금지령을 내렸다거나, 해외여행 이후 자가격리 조치가 내려졌다는 글이 크게 늘고 있다.

실제 국내 상당수 기업들은 해외여행 자제령을 넘어 아예 금지령을 내리고 있는 곳이 적지 않다. 향후 수개월간 예정된 직원들의 해외여행 일정을 전수조사하고, 연기 또는 취소를 종용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최근 해외여행을 다녀온 직원에게 ‘무급 자가격리’ 조치를 내리거나, 향후 해외여행을 다녀올 직원에게 ‘무급 자가격리’ 방침을 통보한 기업들도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문제는 중국 등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관련 위험국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모든 해외여행에 대해 이 같은 조치가 내려지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해외여행 취소에 따른 위약금 등 비용을 회사 차원에서 보전해주겠다고 나선 곳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해외여행 금지가 사실상 강요되는 상황에서 그에 따른 손실까지 개인이 떠안아야 하는 상황이다.

한 네티즌은 “얼마 전 동남아여행을 다녀와 귀국했는데, 회사로부터 2주간 자가격리하라는 통보를 받았다”고 밝혔다. 또 다른 네티즌은 “가족여행을 다녀왔는데, 회사에서 일정기간 연차를 쓰고 나오지 말라 한다”고 했다. 이 네티즌이 다녀온 여행지는 괌이다. 지역을 불문하고 해외여행을 다녀올 경우 자가격리해야 한다는 통보에 여행을 취소했다는 네티즌도 상당수다.

기업들은 만에 하나 발생할 수 있는 감염 및 확산을 막기 위한 조치라는 입장이다. 특히 최근 확진자가 발생한 한 기업에 직장폐쇄 조치가 내려지고, 확진자가 다녀간 백화점이 영업을 중단하는 일까지 벌어지면서 경계수위가 한층 높아진 것으로 풀이된다.

한 기업 관계자는 “확진자가 발생하면 그 파장이 상당하다. 방역은 물론 사무실 폐쇄 조치까지 내려질 수 있고, 확진자와 접촉한 직원들도 일정 기간 격리해야 한다. 기업의 대외 이미지에도 타격이 불가피하다. 이러한 점을 고려해 다 같이 최대한 조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기업 관계자도 “해외여행을 가려면 기본적으로 공항을 거쳐야 한다. 또한 해외 관광지엔 대부분 중국인이 많다. 이미 일본, 싱가포르 등 제3국에서 감염된 사례가 나오기도 했다. 보수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모든 해외여행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나친 처사라는 목소리도 상당하다. 중국을 비롯해 확진자가 다수 발생한 국가는 조심해야겠지만, 그렇지 않은 국가로의 여행까지 강제로 막는 것은 과도하다는 지적이다. 또한 어떠한 증상이나 의사진단도 없는 상황에서 자가격리 조치를 내리는 것 역시 지나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네티즌은 “전 세계적으로도 중국 내 확산만 심각할 뿐인데 우리만 지나치게 위축된 것 같다”며 “공항은 이미 그 어느 곳보다 철저하게 방역이 이뤄지고 있고, 공항에서 감염된 사례도 없다. 개인위생을 철저히 한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또 다른 네티즌은 “기업 입장에서 조심스러운 건 이해하지만, 무급 자가격리로 사실상 강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기업들의 자체적인 해외여행 금지 및 자가격리 조치는 그 근거가 미약할 뿐 아니라, 불법 소지도 상당하다.

고용노동부가 배포한 ‘신종코로나 예방 및 확산방지를 위한 사업장 대응 지침’에 따르면, 기업들은 해외출장 및 여행 후 복귀한 직원에 대해 2주간 자체 발열 모니터링을 하도록 돼있다. 기업 차원에서의 자가격리 조치에 대한 내용은 담겨있지 않다.

연차 사용을 강요하거나 ‘무급 자가격리’를 통보하는 것은 법적 문제가 될 수 있다. 정부당국의 격리대상자가 아님에도 회사 자체적으로 자가격리 조치를 내릴 경우, 이는 직원의 휴가가 아닌 회사 차원의 휴업에 해당된다. 따라서 연차를 사용할 필요가 없고, 법에 정해진 휴업수당을 지급해야 한다.

이처럼 해외여행 금지령을 둘러싼 논란은 비단 기업에만 그치지 않는다. 학교, 유치원, 어린이집 등에서도 해외여행을 다녀올 경우 자가격리를 요청하는 곳이 상당수인 것으로 나타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가 지속될 경우 이 같은 후폭풍 역시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