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저계급론’은 우리 사회의 씁쓸한 단면을 상징하는 신조어다. 태어날 때부터 운명이 정해져있다는 슬픈 의미를 담고 있다. 우리 헌법엔 계급을 부정하는 내용이 담겨있지만, 현실에선 모두가 수저계급론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중에서도 ‘주식금수저’는 꼼수 승계와 같은 또 다른 문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상당하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운 세상으로 가기 위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주식금수저’ 실태를 <시사위크>가 낱낱이 파헤친다.

고려제강 최대주주 특수관계인 명단에 미성년자 2명이 새로 등장했다.
고려제강 최대주주 특수관계인 명단에 미성년자 2명이 새로 등장했다.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3세 승계 과정이 한창인 고려제강에 ‘주식금수저’가 등장했다. 오너일가 사익편취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은 고려제강이기에 더욱 이목이 집중된다.

고려제강은 지난해 별세한 창업주 고(故) 홍종열 명예회장이 1945년 설립한 고려상사를 모태로 한다. 오너일가 2세 중에선 차남 홍영철 회장이 고려제강을 맡아 이끌고 있다. 최근엔 3세 홍석표 부사장으로의 승계도 화두로 떠오른 상태다.

그런데 최근 고려제강 최대주주 특수관계인 명단에 새로운 이름이 등장했다. 주인공은 오너일가 4세로 추정되는 2007년생 A양과 2012년생 B양이다. A양은 올해 중학교에 진학할 나이고, B양은 초등학생 나이다.

A양과 B양은 2월 4일 나란히 2,200주의 주식을 장내 매수했다. 이어 5일과 6일, 7일, 10일, 11일에도 주식을 추가로 사들였다. 늘 같은 날, 같은 수의 주식을 나란히 사들이고 있다. 이렇게 사들인 주식은 어느덧 1만주를 넘겼다. 약 2억원에 해당하는 규모다.

이들의 주식 보유 시점은 3세 승계와 맞물려있다는 점에서 더욱 눈길을 끈다. A양과 B양이 주식을 처음 매입한 날, 홍영철 회장은 장남 홍석표 부사장에게 주식 20만주를 증여했다. 지난해 사망한 고 홍종열 명예회장으로부터 상속받은 주식과 비슷한 규모다.

또한 홍석표 부사장은 다음날인 5일 20만주의 주식을 계열사 키스와이어홀딩스로부터 매입했다. 키스와이어홀딩스는 앞서 지난해 11월 홍영철 회장으로부터 17만5,000여주의 주식을 매입한 바 있다. 이보다 앞서 2018년 4월에도 홍석표 부사장은 키스와이어홀딩스로부터 39만4,000여주의 주식을 매입했다. 전반적인 방향성이 홍석표 부사장의 지분 확대로 향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로써 줄곧 9%대를 유지하던 홍석표 부사장의 지분은 2년여 새 13.91%로 증가했다. 반면, 홍영철 회장의 지분은 18.48%에서 현재 16.49%로 감소했다.

A양과 B양의 주식 취득 자체가 법적으로 문제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제 중학생과 초등학생에 불과한 이들이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억대 주식을 매입했다고 보긴 어렵다. 이는 일반 서민·청년층에 박탈감과 위화감을 조성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각종 부의 승계비용 절감에 활용될 소지도 있다.

더욱이 고려제강은 그동안 오너일가 사익편취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곳이다. 고려제강과 11개 비상장계열사가 복잡한 순환구조로 얽혀있고, 그 정점엔 홍영철 회장 등 오너일가가 위치해있다. 지배구조상 핵심적인 위치에 있는 계열사들은 모두 오너일가 개인회사나 다름없다. 이러한 구조를 바탕으로 일감 몰아주기, 배당 등을 통해 오너일가가 쏠쏠한 사익을 취하고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려제강은 자산규모가 기준에 미치지 않아 한동안 규제에서 벗어나있었다. 실제 경제개혁연구소는 2017년 ‘대규모기업집단 이외 그룹들의 일감 몰아주기 등 사례분석’ 보고서에서 고려제강을 주요 사례로 꼽은 바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오너일가 사익편취 규제 대상을 점차 확대하고 있다. 국세청 역시 미성년자 오너일가의 조기 주식 취득 관련 문제를 전보다 훨씬 꼼꼼하게 살피는 중이다. 더욱 엄격한 감시를 피할 수 없게 된 고려제강이 3세 승계 과정에서 어떤 행보를 보이게 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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