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숭호   ▲언론인 ▲전 한국신문윤리위원
정숭호 ▲언론인 ▲전 한국신문윤리위원

아이들에게 “잘 했어요” 혹은 “참 잘 했어요”라고 하는 것은 칭찬이 아니라고 한다. 그것은 평가라고 한다. “아이의 기쁨이 자신의 기쁨”임을 환하고 밝은 표정, 큰 몸짓으로 표시하는 것이 진짜 칭찬이라고 한다. 아이가 “엄마, 나 100점 받았어요!”라고 외치며 뛰어 들어올 때 “아휴, 정말 기쁘네. 내가 이렇게 기쁜데 너는 얼마나 좋겠니!”라며 팔을 크게 벌리고 맞아주는 게 칭찬이라는 거다. “잘 했어요!”는 “왜 이렇게 못했니?”로 ‘재평가’될 수 있기 때문에 그 자체가 아이들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는 거다. 그러니 잘 해오던 아이가 어느 날 잘 하지 못했다며 기죽은 모습으로 눈치를 볼 때는 “왜 이렇게 못했니?”라고 소리치는 것은 당연히 하지 말아야 하며, “응, 이번에 좀 못 했구나”도 안 하는 게 좋다고 한다. “아휴, 내가 이렇게 슬픈데, 너는 얼마나 슬프겠니”라는 말로 끌어안으며 실망을 나누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끌어안고 등을 두드려 주는 게 공감이라고 한다.

며칠 전 어느 밤, 얕은 잠에서 깼다가 다시 잠을 못 이뤄 TV를 켜게 됐다. 분홍 스웨터를 입은 40대 남자가 남녀 연예인 10여명을 앉혀 놓고 강연을 하고 있었다. 연예인들이 모여 수다 떠는 것을 보여주는 흔한 ‘토크쇼’라는 생각에 다른 걸 보려다가 “‘잘 했어요’는 칭찬이 아니다”라는 강사의 말에 채널을 고정했다. “칭찬은 코끼리도 춤추게 한다”는 책이 나오기 훨씬 전부터, 비록 제대로 실천한 적은 없지만, ‘칭찬과 긍정’의 위력을 알고 있었고, 칭찬에는 “잘 했어요”라는 말보다 나은 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분홍 스웨터를 입은 강사가 그건 칭찬이 아니고 평가에 지나지 않는다며 칭찬의 정의를 새로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강사가 “내가 이렇게 기쁜데 너는 얼마나 좋겠니!”라며 아이를 껴안는 시늉을 하자 낯익은 여자 연예인이 눈물을 찍어낸다. 들어보니, 이혼하고 혼자 아이를 키우는 이 연예인이 “아이에게 내 사랑을 알리기 위해 ‘잘 했어요’를 자주 해주는데, 아이가 별로 안 좋아한다. 왜 그러냐?”고 물었던 것 같았다. 강사는 그건 칭찬이 아니라 평가이며, 평가는 부담을 주기 때문에 “정말 기쁘구나, 내가 이렇게 기쁘니 너는 얼마나 좋겠냐”라는 식으로 함께 기뻐한다는 것을 알려줘야 한다고 가르쳐 준 것이다. 아이를 껴안는 모습을 보이면서 그는 “리액션도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내가 TV를 켜기 전에 강사는 이미 이와 비슷한 감동적 가르침을 많이 준 모양이다. 다른 연예인들도 눈물을 훔치며 자기의 고충을 털어놓는다. 억지로 튀어 보이려거나 유행어를 만들려 하지도 않고, 우스꽝스런 몸짓은 아예 하지 않지만, 그런 말과 몸짓을 잘하는 출연자들과도 잘 어울려 토크쇼를 진행하는, 경력이 오래된 예쁘고 키 큰 MC가 “먹고 마시며 떠들고 노는 걸 좋아하지 않아 녹화 후 회식에 잘 참석하지 않는 나를 건방지다느니, 도도하다느니 오해하는 동료들이 많다”라고 애로를 털어놓았다. 클로즈업된 얼굴은 이미 눈물에 젖어 있었다. TV에서는 예쁜 얼굴로 늘 생글생글 웃더니 실제 삶에서는 억지로 참고 있던, 남모르는 서러움이 많았던 모양이다.

강사는 “내가 들어도 이렇게 힘 드는데, 〇〇〇씨는 얼마나 힘들었겠어요!”라며 큰 ‘리액션’으로 이 ‘방송인’의 마음고생을 달래주고 나서는 ‘소통’의 정의를 새로 내렸다. “보통 소통은 서로 어울려 대화를 주고받는 것이라고 생각들 하지만, 소통은 대화만이 아닙니다. 상대방을 배려하고 상대방의 결정과 입장을 존중하는 것에서 소통이 시작되는 겁니다. 내 생각, 내 행동과 다른 행동을 하는 사람을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버려야만 그 사람과 소통을 할 수 있는 겁니다.”

깊은 밤이었기 때문이었나. 나보다 한참 젊은 ‘소통 전문가’의 칭찬과 소통에 대한 새로운 정의가 감동으로 다가왔다. 그 자리에 있던 연예인들처럼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지만, 내가 칭찬에 인색했던 게 반성되고, 아주 가끔 입 밖으로 내놓았던 “잘 했어요”가 얼마나 시건방진 평가인가도 생각하게 되었다. 살아오면서 남을 내 기준에 맞추려 했지, 나를 그들에게 맞추려 한 적이 있었던가도 되돌아보았다.

그런데, 이걸 어쩌나. 내 진짜 칭찬과 리액션에 반응들이 없네. 초등학교 3학년 될 큰 외손녀 통지표에 좋은 말이 많아서 “선생님이 우리 손녀가 잘 한다고 하니 할아버지가 참 기쁘네. 내가 이렇게 기쁘니 내 손녀는 얼마나 기쁠까!”라고 해봤지만 아이는 큰 관심이 없었다. 그럴듯한 ‘기회’가 와서 아내에게도 한 번 해봤지만 “싱겁다”는 반응이었다. 내 리액션이 ‘발연기’였나? 원인을 생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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