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이노베이션이 LG화학과의 소송전에서 패소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SK이노베이션이 LG화학과의 소송전에서 패소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LG화학과 팽팽한 소송전을 이어온 SK이노베이션이 중대위기를 마주하게 됐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핵심쟁점으로 떠오른 증거인멸을 인정하면서 ‘조기패소’ 결정을 내린 것이다. SK이노베이션은 이의제기 및 LG화학과의 합의 시도 등으로 대응에 나설 방침이지만, 수세에 몰리는 것은 불가피해졌다.

◇ 증거인멸 인정… 최종 패소 가능성 높아

LG화학과 ‘배터리 전쟁’을 벌여온 SK이노베이션이 직격탄을 맞았다.

LG화학이 SK이노베이션을 상대로 제기한 영업비밀 침해 소송을 다뤄온 ITC는 현지시각으로 지난 14일 SK이노베이션의 ‘조기패소’ 예비결정을 내렸다.

ITC의 이번 결정은 핵심쟁점으로 떠올랐던 SK이노베이션의 증거인멸을 인정한데 따른 것이다. LG화학은 지난해 11월 SK이노베이션의 증거인멸을 주장하며 ITC에 조기패소 판결을 내려달라고 요청했다. 증거보존은 ITC는 제1원칙인데, 이를 조직적·고의적으로 인멸하고 포렌식 역시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는 주장이었다.

이로써 해당 소송의 남은 변론 절차는 전면 중단됐으며, 오는 10월 ITC의 최종결정만 남겨놓게 됐다. 전례를 감안했을 때, 판결이 뒤집힐 가능성은 희박하다.

SK이노베이션 입장에선 발등에 불이 떨어지게 됐다. 예비결정대로 최종결정이 확정될 경우, SK이노베이션은 배터리 셀, 모듈, 팩 등 주요 부품 및 소재를 미국 내에서 수입·판매할 수 없다. 2022년 양산을 목표로 짓고 있는 배터리 공장의 정상 가동도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SK이노베이션은 “이번 소송이 시작된 이후 법적인 절차에 따라 충실하게 소명해왔다”며 “ITC로부터 공식적인 결정문을 받아야 구체적인 결정 이유를 알 수 있겠지만, 당사의 주장이 충분히 받아들여지지 않은 점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결정문을 검토한 후 법적으로 정해진 이의절차를 진행해 나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9월, 경찰이 SK이노베이션에 대해 압수수색을 실시하고 있는 모습. /뉴시스
지난해 9월, 경찰이 SK이노베이션에 대해 압수수색을 실시하고 있는 모습. /뉴시스

◇ 걷잡을 수 없는 갈등, 중대 변곡점 맞다

ITC의 이번 결정으로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던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갈등은 중대 변곡점을 마주하게 됐다.

양사의 갈등은 지난해 4월 LG화학이 SK이노베이션을 상대로 ITC 및 미국 델라웨어주 연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면서 본격화됐다. 이후 양측은 소송과 맞소송을 이어가며 극한대립 양상을 보였다.

LG화학은 미국에서의 소송 제기에 이어 지난해 5월 국내에서도 SK이노베이션을 산업기술 유출 방지보호법 위반 혐의로 고소했다. 그러자 SK이노베이션은 명예훼손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고, 지난해 9월엔 ITC와 연방법원에 특허침해 소송을 제기하며 맞불을 놨다. 이에 LG화학도 SK이노베이션도 ITC와 연방법원에 특허침해 맞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이 자사 직원들을 데려가며 중대 영업비밀에 해당하는 핵심 기술을 빼돌렸다고 주장했다. 또한 이 같은 기술 탈취 덕분에 SK이노베이션이 대규모 수주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반면 SK이노베이션은 해당 직원들이 더 나은 급여 및 복지혜택에 따라 자발적으로 이직한 것뿐이며, 애초에 LG화학의 기술이 필요하지 않다고 맞섰다.

이 과정에서 양사는 각자의 주장과 상대 주장에 대한 반박을 수차례 내놓는 등 한 치도 물러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지난해 9월 양사 수장들의 회동이 성사됐음에도 입장차는 좁혀지지 않았다.

ITC에서 국내 기업끼리 충돌한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인데다, 재계 3·4위의 갈등이란 점에서 파문은 상당했다. 우리끼리의 ‘집안싸움’으로 인해 자칫 글로벌 시장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 SK이노베이션, 백기 드나

결과적으로 LG화학에 승기를 내준 SK이노베이션은 대응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반면 LG화학은 한결 여유를 되찾게 됐다.

SK이노베이션은 ITC의 조기패소 결정이 알려진 뒤 내놓은 입장문 끝에 “LG화학과는 선의의 경쟁관계이지만, 산업 생태계 발전을 위해 협력해야 할 파트너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 기조는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앞서도 꾸준히 밝혀왔던 원칙적 내용이지만, 온도차는 뚜렷하다.

LG화학 역시 SK이노베이션의 증거인멸을 규탄하면서도 대화의 문은 열려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글로벌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남아있는 다른 소송이 계속 진행될 경우 LG화학 역시 부담이 클 수밖에 없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LG화학이 훨씬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된 것은 분명 사실이다. ITC의 최종결정에 반전을 기대하기 어려운 가운데, SK이노베이션은 배터리 사업에 빨간불이 켜졌다. 과거 삼성과 소송전을 벌였다 패소한 애플이 그랬듯 미국 내 공익성을 강조하는 방안이 남아있긴 하지만, LG화학 역시 미국 투자에 나선 상황이어서 결과를 예상하기 어렵다. 더욱이 SK이노베이션은 만약 연방법원에서도 패소할 경우 막대한 손해배상금까지 마주해야 한다.

그동안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 측에 영업비밀 탈취 사실 인정과 공개사과, 그리고 손해배상 및 재방방지 대책 마련 등을 합의의 선결조건으로 제시해왔다. 사실상 ‘백기투항’을 요구해온 것이다.

서로 다른 입장에서 중대 변곡점을 맞게 된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이 극적으로 화해의 악수를 하게 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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