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내1당 빼앗길라” 확산되는 비례정당 창당론... 역풍 가능성도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시사위크=김희원 기자  4·15 총선이 50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더불어민주당의 ‘미래한국당’ 공포증이 폭발하면서 비례대표용 위성정당 창당 불가피론이 확산되고 있다.

민주당 지도부는 지금까지 미래통합당이 비례대표 의석을 최대치로 확보하기 위해 만든 위성정당 미래한국당에 대해 “꼼수정당”, “가짜정당”이라고 맹공을 퍼부어왔다.

지도부는 당 내에서 조심스럽게 거론되던 비례정당 창당 목소리에 대해 선거제도 개혁 명분에 어긋난다며 가능성을 일축했다. 그러나 민주당의 공식 입장과는 별개로 총선이 임박하자 다시 비례정당 창당 필요성이 봇물 터지듯 공개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했다.

‘비례정당 창당’ 불가피론은 문재인 대통령의 복심 윤건영 전 청와대 국정기획상황실장의 발언이 기폭제가 됐다. 윤 전 실장은 최근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장기적으로 보면 원칙의 정치가 꼼수 정치를 이긴다고 생각하지만 이번 선거에서는 민심이 왜곡될 우려가 있다는 걱정이 있다”면서 “만약 그런 비상한 상황이 벌어진다면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출신인 무소속 손혜원 의원도 가세했다. 손 의원은 지난 2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소나무당인가 하는 비례당 빨리 만드세요. 정치에 무슨 도덕성을 개입시킨다는 건지. 무슨 공자 같은 소리하고 있어. 정치하고 패싸움에서는 무조건 이기고 봐야하는 겁니다”라며 “그제 존경하는 선배로부터 받은 메시지”라고 강조했다.

민주당의 비례정당 창당 불가피론은 통합당이 비례대표 의석을 싹쓸이해 원내1당을 차지할 것이라는 위기감에서 기인한다. 선거제도 개혁이라는 명분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통합당에 원내 1당을 빼앗기게 된 상황을 수수방관 할 수 없다는 인식 때문이다.

지난해 말 개정된 공직선거법에 따라 이번 총선에서 처음 도입되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기존 1, 2당에게 불리하게 작용될 수밖에 없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지역구에서 획득한 의석수가 전국 정당 득표율에 미치지 못할 경우 비례대표 의석을 통해 총 의석을 보장하는 선거제도다. 이번에 도입되는 방식은 정당 득표율만큼 의석수를 배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정당 득표의 연동률을 50%인 절반만 보장한다는 의미에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로 불린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지역구 의석을 많이 획득하면 정당 득표율이 높다고 해도 비례대표 의석을 챙길 수 없거나 확보할 수 있는 의석이 줄어들게 설계돼 있어 정당 지지도보다 지역 기반이 약한 소수 정당에 유리한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결사적으로 반대했던 미래통합당이 비례대표 의석 확보를 위해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을 창당한 이유다.

◇ “비례정당 창당 안한다”는 지도부 속내
  
홍익표 수석대변인은 24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최근에 위성정당 미래한국당에 대한 지지율이 상대적으로 매우 높게 나오면서 자칫 비례의석에서의 불균형이 21대 국회운영에 큰 부담이 되지 않느냐, 이런 우려를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당내 분위기를 전했다.

민병두 의원은 이날 YTN라디오 ‘노영희의 출발 새 아침’에 출연해 “지금 비례의석이 47석이다. 대개 예측을 해보면 미래통합당이 비례에서 26석, 민주당이 6석, 정의당이 6석을 가져가면 나머지 5석은 반오름 반내림 혹은 기타 당, 이렇게 배분될 가능성이 크다”며 “그러면 민주당 입장에서는 비례에서 20석을 밑지고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면 원내 1당을 뺏긴다는 얘기”라고 강조했다.

최근 발표된 여론조사 결과는 민주당의 위기감을 부채질하고 있다. 한국갤럽이 지난 18~20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2명(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1%포인트)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이번 총선에서 비례대표 정당 투표 시 민주당과 미래한국당을 선택하겠다는 응답이 각각 33%, 25%였다. 뒤이어 정의당은 12%, 바른미래당 3%, 국민의당 2%로 집계됐다.

이 조사에서 통합당 지지자의 88%가 비례대표 정당 투표에서 미래한국당을 지지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통합당 지지자 대부분이 미래한국당을 통합당의 위성정당으로 인지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 같은 지지가 실제 투표로 이어질 경우 미래한국당은 20석에 근접한 비례대표 의석을 확보할 가능성이 높다. (여론조사 관련 자세한 사항은 한국갤럽이나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

민주당 내에서는 선거제도 개혁 명분을 훼손하기 때문에 비례정당을 공식적으로 창당할 수는 없지만 당 밖 지지 세력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비례정당으로 위기를 돌파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손혜원 의원과 정봉주 전 의원 등이 참여하는 비례정당 창당 가능성도 거론된다.

여권 지지 그룹이 당 밖에서 사실상 민주당의 비례정당을 만들 경우 민주당은 야당으로부터 비례정당 창당을 사주했다는 비판을 받으면서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이인영 원내대표는 전날 기자들과 만나 “(비례정당을 창당하지 않겠다는) 기본 입장에 변함이 없다”면서도 “여러 의병이 만드는 것을 내가 말릴 수는 없지 않느냐”라고 말했다.

민병두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범보수연합에 원내 제1당을 뺏길 수 없다는 민병대들이 비례정당을 만드는 것은 상상할 수 있다”며 “여기서 10석을 가져가게 되면 미래통합당 위성정당의 효과가 사라지게 된다. 시민들의 자발적 논의를 거쳐 민병대가 조직되는지 지켜보고 있다”고 밝혔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민주당이 그동안 공언해온 바가 있기 때문에 명분상 당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비례정당을 만들 수는 없다”며 “통합당이 탄핵까지 운운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문재인 정부를 지키자는 흐름 속에서 우당 개념으로 당 밖에서 자발적으로 비례정당 창당이 진행될 수도 있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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