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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씨네
[인터뷰] 끊임없이 ‘틀’을 깨는 배우, 정우성
2020. 02. 25 by 이영실 기자 swyeong1204@sisaweek.com
배우 정우성이  영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감독 김용훈)로 연기 변신을 선보였다.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배우 정우성이 영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감독 김용훈)로 연기 변신을 선보였다.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정우성은 이래야 한다’는 이미지를 늘 깨고 싶었고, 주어진 수식어 안에 머물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그 결과의 시간을 이제 맞이한 것 같다.”

배우 정우성이 ‘호구’가 돼 돌아왔다.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매 작품,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그는 영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감독 김용훈)을 통해 기존 이미지를 완전히 뒤집는 캐릭터 변신을 선보여 호평을 받고 있다. 정우성의 오랜 노력과 고민의 값진 결과물이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은 인생 마지막 기회인 돈 가방을 차지하기 위해 최악의 한탕을 계획하는 평범한 인간들의 범죄극이다. 전도연부터 정우성‧배성우‧윤여정 등 화려한 캐스팅 라인업으로 제작 단계부터 화제를 모았고, 제49회 로테르담 국제영화제 심사위원상 수상에 이어 5개국 국제영화제에 초청받는 등 일찌감치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그리고 지난 19일 개봉한 뒤 지난 24일까지 박스오피스 정상의 자리를 지켜오고 있다.

극 중 정우성은 사라진 옛 애인 연희(전도연 분)이 남긴 빚 때문에 마지막 한탕을 준비하는 태영을 연기했다. 지난해 영화 ‘증인’으로 제55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대상, 제40회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 2관왕을 수상하며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그가 거침없는 연기 변신으로 ‘도전’을 택해 눈길을 끈다.

정우성은 어둡고 진지했던 태영에 자신만의 해석을 더해 색다른 인물로 탈바꿈시켰다. 긴장감 넘치는 이야기의 전개 과정에서 벌어지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위트 있게 표현한 캐릭터로 완성, 영화의 재미를 배가시켰다. 특히 그동안 보지 못한 그의 새로운 매력을 볼 수 있는데, 정우성표 ‘호구’ 연기가 묘한 중독성을 느끼게 한다.

정우성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촬영 비하인드를 공개했다.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정우성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촬영 비하인드를 공개했다.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개봉에 앞서 <시사위크>와 만난 정우성은 ‘새로운 얼굴을 봤다’는 기자의 말에 “전도연도 ‘어떡해’라며 놀라더라”면서 웃었다.

-어떤 점에 가장 끌렸나. 
“인간의 욕망에 대해 다루는 작품들은 여러 인물들을 한 사건에 의해 희생시켜야 한다. 쓰고 버리는 거다. 사건을 위한 도구,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도구로 사용하는데 우리 영화는 그렇지 않다. 돈 가방이 앞에 놓인 사람들에 대한 욕망을 보이지만, 개개인의 사연을 짧지만 밀도 있게 보여준다. 어떤 캐릭터도 버려지지 않고, 영화가 끝난 후에도 함께 있는 것이 큰 장점이다. 각 캐릭터들의 사연이 살아있다 보니 옴니버스식의 영화지만, 하나의 스토리 안에 존재하는 것이 특별한 점인 것 같다.”  

-태영이 정우성을 만나 결이 바뀌었다고.
“처음부터 나한테는 태영이 그렇게 보였다. 완성될 때까지 그랬다. 어두운 얘기이다 보니 위트 있는 인물이 필요했고, 태영의 생각이나 성격 속 허점들을 극대화해서 표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블랙코미디적인 요소를 담은 인물로, 웃긴 코미디는 아니지만 헛웃음 치면서 쉴 수 있는, 여백을 줄 수 있는 캐릭터가 되겠다 싶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태영을 통해 연희의 존재감을 계속해서 궁금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첫 현장에서 태영을 표현하니 다 놀라더라. 전도연도 당황했다. ‘어떡해 우성씨, 이래도 돼?’라고 하더라. 하하. 그래서 ‘그래도 돼. 태영이니까’라고 했다. 어떻게 보면, 캐릭터보다 배우 정우성에게 갖고 있는 이미지나 바람이 뒤섞여있었던 것 같다. 나는 정우성은 이래야 한다는 이미지를 늘 깨고 싶었던 사람이었고, 그런 바람을 실행할 수 있었던 현장이기도 했다.”

-현장에서 의견을 맞춰가는 과정도 필요했겠다.
“다행히 김용훈 감독이 열린 생각과 마음으로 현장에 임했다. 내가 태영을 왜 그렇게 표현했는지 설명할 수밖에 없는 작업 과정이 있었는데, 빨리 잘 받아들이더라. 애정해주고 지지해줬다. 그래서 더 자신이 생겼고, 표현을 잘 해낼 수 있었다.

사실 신인감독이 아무리 준비를 하고 현장에 나오더라도 모든 상황이 즉흥적으로 벌어지고 예측하지 못했던 새로운 상황이 펼쳐진다. 그런데 김용훈 감독은 본인이 그렸던 그림 안에 갇혀있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열고 더 큰 그림을 그리려는 여유가 있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에서 태영을 연기한 정우성 스틸컷.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에서 태영을 연기한 정우성 스틸컷.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정우성의 새로운 얼굴을 발견했다는 호평이 나오고 있는데, 본인도 그동안 보지 못했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한 점이 있나.
“어떤 얼굴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지만, 전체적인 성향의 한 인물을 완성하는 것도 중요하지 않나. 그래서 어떤 표정이나 모습을 발견한다는 건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성향의 인물을 만들었을 때 공감대가 형성이 되느냐, 설득력이 있느냐가 중요하다. ‘정우성이 연기한 거네’가 아니라 그냥 ‘태영이네’라고 했을 때 완성이 되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봐주시는 것 같아 다행이고 안심이다.”

-성취감도 느끼겠다.
“성취감보다는 안심이다. 내가 해내야 하는 당연한 임무였다. 이걸 해내지 못하면 좌절이 있고 상처가 있을 거다. 그래서 성취보다 안도감이 더 크다.”

-전도연과 처음으로 호흡을 맞췄는데, 어땠나.
“몇 장면만으로 태영과 연희의 ‘케미’를 만들어야 하는 밀도 있는 작업이 필요했다.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연희와 태영의 서사, 관계에 있어서의 갈등 등이 한 장면만으로 전달이 돼야 했다. 두 배우가 처음으로 만나서 작업을 했기 때문에 각자 기대도 있었을 것이고, 짧아서 아쉬움이 컸을 거다. 나는 배우 전도연이 캐릭터를 구현하는 능력보다 현장에 임하는 자세도 보고 싶었는데, 역시 전도연이었다. 오랫동안 서있을 수 있던 이유는 현장에 대한 애정과 책임, 영화 전체에 대한 밸런스를 보는 깊은 사고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걸 확인했고 기뻤다. 그래서 다음 작품을 또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극 중 태영이 ‘럭키’라는 담배가 인생에 행운을 가져다줄 거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데, 실제 정우성에게도 그런 게 있나.
“신념. 신념이라는 단어는 결국 삶이고 내가 어떤 삶을 살아야겠다는 자기 생각이다. 신념이라는 것은 나이가 먹어감에 따라 혹은 내가 처한 상황에 따라 확장되고 긍정적인 요소로 나를 운반할 수 있는 자기 철학이 될 수 있는 거다. 고집이 아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깨우쳐 나가야 한다. 삶에 대한 이해도 그렇고 관찰도 그렇고 관계에 대한 것도 그렇다. 끊임없이 새로운 것들을 담아내고 생각을 확장시키는 것이 내 인생의 신념으로 자리하는 거다.”

-신념이 흔들리게 하는 외부적 요소로부터 차단하고 지키는 방법이 있나. 
“계속해서 자기의 실수를 인정하는 거다. 자기의 실수나 나의 부족함, 그걸 인정했을 때 나라는 사람을 인정하게 되고, 나를 인정했을 때 나를 지킬 수 있는 거다. 나를 인정하지 못하면 남들과의 관계에서 나를 감추려고 할 거다. 괜찮은 사람으로만 보이려고 하고 그렇다 보면 자신이 없는 거다. 그렇기 때문에 신념이라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을 온전히 인정하고 바라볼 때 생기는 거라고 생각한다.”

정우성이 신념에 대해 언급했다.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정우성이 신념에 대해 언급했다.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영화 속 인물들처럼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을 만큼 절박했던 순간이 있다면.
“학교 자퇴하고 나왔을 때. 얼마나 막연했겠나. 무섭기도 하고 외롭기도 하고, 막연한 무언가에 대한 기대도 있다. 절박했지만 아무거나 막 잡지는 않았다. 내가 어떤 사람이 될까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던 시기다. 내가 어떤 사람이 될지, 배우가 된다면 어떤 배우가 될지, 또 나라는 사람이 세상과 어떤 관계를 맺고 설 수 있을지. 그때의 막연함을 힘든 감정으로 받아들이진 않았다. 그 시절의 정우성을 돌이켜보면, 외로움을 참 잘 즐겼구나 생각이 든다.”

-현재 절박한 시기를 지나고 있는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
“함부로 조언을 할 수 없는 거 같다. 그리고 지금은 막연함조차 가질 수 없는 시대인 것도 같다. 현실이 너무 냉정하게 그들을 내몰아버린 것 같다. 막연한 희망도 없이, 기대조차 못 갖는 냉정한 시대가 됐다. 조언도 할 수 없는 시대라는 게 비참한 것 같다. 또 어느 순간부터 선배, 어른이 사라졌다. 기성세대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시대다. 그렇기 때문에 먼저 살아봤다는 이유로, 나이를 먹었다는 이유로 누군가에게 나의 삶을 이야기하며 조언한다는 것이 굉장히 무서운 일이 될 수 있다.”

-선배, 혹은 어른으로서 책임감도 느끼나. 
“있다. 분명히. 그런데 말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줘야 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말만 한다고 바람직한 모습이 아니지 않나. 계속해서 행동하려고 한다.”

-지난해 영화 ‘증인’으로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대상 등을 수상했다. 수상 이후 생각의 변화나 달라진 점이 있나.
“그렇진 않다. 다만 나를 응원해준 분들이 있고, 나 자신보다 더 바랐던 분들에게 작은 보답을 한 기분이라 기쁘다. 상이라는 것은 한 캐릭터에 대해 쏟은 정우성의 노력에 대한 작은 칭찬이지 절대 연기 수준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매 작품마다 또 다른 캐릭터를 표현해야 하고 연기를 해야 하기 때문에 각 캐릭터에 대한 인정이 다 같을 순 없다. 한편으로는 ‘증인’이라는 영화가 상을 받을만한 주류의 소재가 아니었는데, 상을 받고 인정을 받았다는 것에 대한 뿌듯함과 기쁨도 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이 정우성의 필모그래피에 어떤 의미로 남을 것 같나.
“젊은 날의 정우성이 ‘똥개’를 선택했을 때 상응되는 반응들이 있었다. 너무 좋다는 반응도 있었고, ‘왜 정우성이 어울리지도 않는 사투리를 쓰면서 무릎 나온 트레이닝복을 입고 방바닥을 기어야 하느냐’하며 인정을 해주지 않는 반응도 있었다. 그런데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태영을 보면서는 ‘재밌다, 의외의 표현인데 잘 어울리고 잘했다’는 평가가 더 많더라. 그런 의미에서 내가 계속해서 끊임없이 어떤 규정지어짐에 혹은 주어진 수식어 안에 머물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했던 결과의 시간을 이제 맞이한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