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넘게 재직한 경농의 사외이사가 마침내 교체된다.
20년 넘게 재직한 경농의 사외이사가 마침내 교체된다.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정부가 시행령 개정을 통해 사외이사 임기를 제한하며 ‘장수 사외이사’에 철퇴를 내린 가운데, 20년 넘게 자리를 지켜온 경농의 사외이사가 교체를 앞두게 됐다.

농약 생산기업 경농의 허근도 사외이사는 1998년 처음 선임됐다. 우리나라에 사외이사 제도가 도입된 시기다. 이후 허근도 사외이사는 20년이 훌쩍 넘는 세월 동안 자리를 지켜왔다. 지난해 3분기 기준 경농 직원들의 평균 근속연수가 10.7년인데, 그보다 2배나 길게 재직해온 셈이다. 처음 선임될 당시 40대 중반이었던 그의 나이도 어느덧 60대 후반에 이르고 있다.

사외이사 제도는 1990년대 후반 금융위기를 겪는 과정에서 IMF의 권유로 도입됐다. 경영진 및 최대주주를 견제·감시하는 사외이사를 통해 기업의 투명성을 제고하고 소수주주의 권리를 보호하겠다는 취지에서다.

하지만 사외이사 제도는 줄곧 유명무실한 상태로 전락한 채 방치돼왔다. 상당수 기업들은 사외이사 자리에 경영진 및 최대주주의 측근을 앉혔고, 장기간 재직하며 거수기 역할을 하는 사외이사들이 많았다. 심지어 전관예우 등 다른 목적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마치 직장처럼 꼬박꼬박 보수를 수령하며 장기 재직한 사외이사에게 경영진 및 최대주주에 대한 견제와 감시의 역할을 기대하긴 어렵다. 이를 가리켜 ‘장수 사외이사’ ‘불사조 사외이사’ ‘거수기 사외이사’ 같은 표현과 비판이 제기된 이유다.

20년 넘게 이어진 경농의 사외이사 역시 전형적인 ‘장수 사외이사’에 해당한다. 더욱이 경농은 그동안 사외이사가 단 1명뿐이었다.

그런데 최근 변화가 감지됐다. 경농은 오는 3월 예정된 정기 주주총회 안건으로 신규 사외이사 선임 안을 상정했다. 경농이 신규 사외이사 선임에 나서는 것은 1998년 허근도 사외이사 이후 처음이다. 무려 22년 동안 경농 사외이사 자리를 지켜온 허근도 사외이사는 이제 물러난다.

다만, 이것이 경농과 허근도 사외의사의 ‘자의적 결정’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보단 정부의 시행령 개정에 따른 ‘강제적 결정’에 가깝다. 정부는 지난달 시행령 개정을 통해 상장사 사외이사 임기를 최대 6년으로 제한했다. 이에 따라 때마침 기존 임기 만료가 다가온 허근도 사외이사는 더 이상 연임이 불가능해진 상황이다.

한편, 앞으로도 이 같은 ‘장수 사외이사’ 퇴출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개정된 상법 시행령이 기존 임기를 보장하고 있는 가운데, 아직 1~2년의 임기를 남겨놓은 ‘장수 사외이사’들이 여전히 적지 않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