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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위크가 만난 사람들
영화 ‘기생충’ 제작사 바른손이앤에이 곽신애 대표
[인터뷰] 곽신애 대표에게 ‘기생충’이란
2020. 02. 26 by 이영실 기자 swyeong1204@sisaweek.com
영화 ‘기생충’(감독 봉준호)의 제작사 바른손이앤에이 곽신애 대표. /CJ엔터테인먼트
영화 ‘기생충’(감독 봉준호)의 제작사 바른손이앤에이 곽신애 대표. /CJ엔터테인먼트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지금도 그만둘 생각이 있냐고 했을 때 ‘여기까지 왔는데 더 해봐야지’라고 대답하게 된 것이 가장 큰 변화.”

곽신애 대표는 1995년 영화기자로 출발해 마케터와 프로듀서를 거쳐 2015년 바른손이앤에이 대표가 됐다. 누구에게나 그렇듯 힘든 시기도 있었다. 이 길이 맞나 확신이 들지 않았고, 민폐 제작자가 아닐까 의심도 됐다. 영화를 그만둬야 하는 게 아닌가 고민도 했다. 그런 그를 잡은 건 봉준호 감독과 ‘기생충’이었다.

그 누가 봉준호 감독과의 작업을 마다하겠는가.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도전을 택했고, 모든 걸 쏟아부었다. 비로소 완성된 ‘기생충’은 국내를 넘어 해외에서까지 ‘최초’라는 수식어를 달고 연달아 수상 소식을 전하며 한국영화의 저력을 전 세계에 알리고 있다. 지난해 제72회 칸 국제영화제부 황금종려상에 이어 지난 9일(현지시각) 열린 제92회 아카데미(오스카) 시상식까지 장악하며 한국영화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그리고 ‘기생충’의 제작자 곽신애 대표는 오스카 작품상을 수상한 ‘아시아 최초의 여성 제작자’라는 영광스러운 타이틀을 얻게 됐다. 지난해 8월부터 약 6개월간 이어진 아카데미 캠페인 여정을 마치고 돌아온 곽 대표는 바쁜 일정 속에서도 취재진과 만나 오스카 비하인드부터 여성 제작자로서의 삶 등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곽신애 대표가 오스카 비하인드 스토리를 공개했다. /CJ엔터테인먼트
곽신애 대표가 오스카 비하인드 스토리를 공개했다. /CJ엔터테인먼트

최근 <시사위크>와 만난 곽 대표는 “갑자기 유명 인사 대접을 받는 게 어색하다”며 웃었다.

-아이돌급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는데, 정신이 하나도 없겠다.
“갑자기 유명 인사 대접을 받는 게 어색하고 ‘이게 뭐지’ 싶긴 한다. 예를 들면 가족이나 친구가 굉장히 흥분된 상태로 나를 대하고,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너무 많이 온다. 또 내 이름을 검색해서 기사를 찾아보는 일이 없었는데, 행여 잘못된 게 있을까 봐 체크하게 된다. 정신없고 혼란스럽고 그렇긴 하다. (웃음)”

-오스카 4관왕, 예상했나.
“역사를 세우는 일이고, 벽을 깨는 일이라서 쉽게 우리가 받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던 상황은 아니었다. 다만 우리끼리 국제장편영화상은 받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하. (오스카 시상식) 일주일 전에 내기를 했다. 국제장편영화상 빼고 후보에 오른 다른 부문(각본상‧감독상‧미술상‧편집상‧작품상)에 대해 내기를 했는데, 각본상이 제일 많았다. 나와 송강호 선배가 작품상을 뽑았다. ‘못 먹어도 고’라는 생각이었다. 터무니없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기대를 크게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봉준호 감독에 대한 현지 영화인들과 기자들의 관심과 애정이 느껴지니까 안 주는 것도 이상할 것 같은 느낌도 들더라. 봉준호 감독이나 송강호 선배를 만나면 ‘봉~송~’하면서 환호를 하고 포옹하고 악수하고 뛰어오고 그랬다. 외신들이 봉준호 감독의 인기에 대해 ‘록스타 같다’고 표현을 했었는데, 정말 그랬다. 그래서 뭐라도 받겠구나 생각은 했다. 감독상을 수상하고 나서는 ‘작품상도 가능성 있겠는데?’ 싶었다. 뭔가 뒤집어졌다는 느낌이 들긴 했다.”

-봉준호 감독의 ‘록스타’급 인기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일단 사람이 되게 재밌잖나. 어떤 기사에서 ‘기생충’이 어디 영화제 후보에 오른 것을 전하면서 ‘기자들이 이 핑계로 봉준호 감독을 또 인터뷰할 수 있어서 신나있다’라고 표현을 한 적이 있다. 그 정도로 (봉준호 감독을) 만나면 좋은가 보다.

칸에서도 외신 인터뷰를 할 때 보면 기자들이 다 봉준호 감독 쪽으로 몸이 잔뜩 기울어져서 그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다. 태도가 너무 재밌어서 사진도 찍어놨었다. 정말 좋아하는구나 싶었다. 또 봉준호 감독은 화법도 재밌고, 다른 감독들에 비해 덜 심각한 것 같다. 내용이 결코 가벼운 건 아닌데, 무겁지 않게 말하는 스타일이다. 우리 영화도 그렇잖나. 진지한 영화인데 무겁지 않고 유머러스하게 풀어냈다. 그게 봉준호 감독의 장점이 아닐까 싶다.”

오스카에서 작품상을 수상한 뒤 무대에 올라 소감을 전하고 있는 곽신애(가운데) 대표. /CJ엔터테인먼트
오스카에서 작품상을 수상한 뒤 무대에 올라 소감을 전하고 있는 곽신애(가운데) 대표. /CJ엔터테인먼트

-작품상을 예상했다면, 수상소감도 준비했나.
“맞다. 준비한 거 다 한 거였다. 정신적으로 긴장하지 않았는데, 물리적으로 입이 너무 말라서 입술이 잇몸 사이에서 안 움직이는 상태가 된 거다. 말을 하려고 하는데 입이 움직이지 않아서 겨우 말을 한 거였다. 흉하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다. 전 세계인이 보는데… ‘기생충’이 작품상을 받는다면 역사를 만든 것이고, 그 역사는 개인의 투표로 이뤄진 것이지 않나. 투표한 사람들이 정말 대단하고 용기 있다고 생각했다.

변화에 대해 두려움 없이 한 표를 던지는구나 생각이 들어서 정말 고마웠다. 다른 영화제에서도 여러 번 상을 받았기 때문에 (봉준호) 감독이 한 말을 또 하는 건 지루하고 의미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항상 감독이 안 한 말 위주로 보태기만 했다. 그래서 그날(오스카)도 사실 할 말이 없었다. 감독이 이미 다 하셔서, 한 문장 남더라. 하하. 그래서 아카데미 회원들 고맙다고 했고, 우리 영화의 대사를 인용했다. ‘시의적절하고 상징적인 변화의 역사가 만들어진 것 같다’고.”

-여성 제작자가 작품상을 받은 것이 아시아 최초의 기록이기도 한데.
“좋은 일이 됐겠구나 싶긴 했다. 그곳(미국)에 가서 느끼고 얘기를 들어보면 우리나라 영화계가 오히려 차별을 덜 받는 게 아닌가 싶더라. 차별을 대놓고 하지는 않지만, 그곳에서 일하는 여성 입장에서 (차별에 대한) 체감이 훨씬 더 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한 번은 봉준호 감독이 어떤 자리에서 나를 소개했는데, 사람들이 나를 보고 놀라더라. ‘여자네?’ 이런 시선과 느낌들이 있었다.

그런데 또 작품상 후보에 오른 영화의 프로듀서들이 모이는 모임이 몇 번 있었는데, 절반은 또 여자였다. 대체 왜 놀란 거지.(웃음) 나도 어릴 때 나보다 앞선 세대의 분들이 영화 제작자로서 일을 하는 것을 보면서, 불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고 나도 실력만 갖추면 할 수 있다는 마음이 있었다. 동양의 여성 제작자가 나와서 상을 받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좋은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다.”

-촬영지도 이슈가 되고 있다. 이를 이용한 지자체의 ‘숟가락 얹기’ 시도도 있는데. 
“진지하게 온 연락은 아직 없었다. 나도 언론을 통해 먼저 알게 됐는데,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비용부문이나, 유지 보수 등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지자체들이 의욕적으로 시작했다가 골치 아파하는 걸 너무 많이 봤고, 과연 서로에게 도움이 될까 싶다. 영화라는 것이 사실 이벤트성이고 붐업이 일어나는 거다. 지속적으로 가지 않지 않나. 폭발적으로 화제가 되고 있어도 시간이 지나면 애물단지가 될 수도 있다. 수상이나 기록, 영화에 관련된 세트장 등 외에 작품 자체로 기억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영화 자체가 더 중요하지 않겠나.”

아시아 여성 제작자 최초로 오스카 작품상을 수상한 곽신애 대표. /CJ엔터테인먼트
아시아 여성 제작자 최초로 오스카 작품상을 수상한 곽신애 대표. /CJ엔터테인먼트

-기자부터 시작해서 제작사 대표 자리에 오르기까지, 여성 영화인으로서 업계에서 지내온 시간을 되돌아보면 어떤가. 
“각자의 상황과 경험들이 다르니 내가 평균이거나 객관적이라고 할 수는 없는데, 나는 다른 영역에 비해 이 업계(영화계)가 여성들에게 공정하다는 생각을 역으로 하고 있다. 주변 친구들이나 지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렇다. 이 업계에서는 여자라서 못하는 건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촬영감독이나 조명 쪽은 일의 특성상 어쩔 수 없지만, 실제로 여자 제작자도 많고 그렇다. 좋은 시나리오나 좋은 의견이 더 중요한 업계인 것 같다. 다만 육아와 양육을 일과 함께 하는 것은 정말 힘들다. 최근 새로운 감독들 중 특히 여자가 많았다. 정말 반가웠고, 좋은 징후라고 생각한다. 해외 관계자들에게도 ‘10년 후 우리나라 여성 감독들이 이곳에 와있을 테니 기다려봐’라고 농담처럼 얘기하기도 했었다.”

-‘기생충’과 함께 하면서 많은 순간들이 기억에 남겠지만, 특히 더 떠오르거나 잊지 못할 순간을 꼽자면.
“정말 많다. 택하기 어렵다. 그냥 최근으로 치자면 미국배우조합상(SAG). 정말 너무 좋았다. 우리 배우들이 정말 잘했는데, 앙상블상 수상할 때 (봉준호) 감독님과 너무 기뻐서 소리 지르고 그랬다. 그때랑 오스카에서 감독님이 감독상을 수상한 타이밍부터 작품상까지 그때가 기억에 남는다. 칸도 정말 감동적이었다.”

-다음 작품에 대한 고민도 깊겠다. ‘기생충’을 뛰어넘어야 한다는.
“그런 생각 안 한다. 전혀 없다. ‘기생충’을 어떻게 뛰어넘나. 나, 그리고 앞으로 나와 함께 일하는 감독에게도 그러면 안 되는 거다. 하하. ‘기생충’은 봉준호 감독의 20년의 인생을 바쳐 이뤄낸 성과다. 한때는 내가 제작자의 길을 가는 게 맞는 건지 판단이 안 되기도 했다. 진행하다 멈춘 작품도 있었고, 다른 제작자가 했으면 더 진행을 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도 들었다. 영화를 그만둬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마음도 있었다. 그러던 중에 봉준호 감독과 2015년 초부터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시작하게 됐는데, 다음 작품이 봉준호인데 그걸 놔두고 일을 관두는 영화인이 어디 있겠나.

나도 이것까지만 하자는 마음으로 이 작품을 했던 셈이다. 2017~18년은 거의 올인하다시피 매달렸다. 그 과정이 너무 재밌고 즐겁고 행복했다. 많이 배우기도 했다. 봉준호 감독도 감독이지만, 참여한 많은 사람들에게 다 배울 게 많았다. 신나고 즐거운 과정이었는데, 칸도 다녀오고 개봉 스코어도 잘 나오고 좋은 식으로 연결이 되고 있지 않나. 지금도 그만둘 생각이 있냐고 한다면 ‘여기까지 왔는데 더 할 것’이라고 대답하게 된 게 큰 변화다. 실력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업계에서도 이런 타이틀을 지닌 사람이 없어지는 건 아쉽지 않겠나.(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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