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종 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장.
이영종 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장.

북한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확진 환자가 발생했는지를 놓고 관심이 쏠리고 있다. 발원지로 지목된 중국에 이어 한국과 일본은 물론 청정지역으로 알려졌던 일부 국가에까지 사태가 번지면서 ’코로나 포비아(공포증)’가 커졌기 때문이다.

북한과 중국이 ‘산과 물이 잇닿은 이웃’임을 강조하며 끈끈한 관계를 유지했다는 점에서 발병 소지를 점치는 시각도 있다. 일부 탈북 인사와 대북매체들이 북·중 접경지역을 중심으로 코로나19 환자가 발생했다는 보도를 잇달아 내놓으면서, 일단 발병 소지에 무게가 실리는 분위기다. 하지만 북한 당국은 ‘확진 환자 없음’을 연일 강조하고 있고, 세계보건기구(WHO)를 비롯한 국제기구도 아직 북한에 코로나19가 발생했다는 보고를 받지 못했다는 입장이다. 

물론 북한이 그동안 체제 이미지에 손상을 줄 수 있는 기아와 자연재해, 사건·사고 등을 외부에 알리는 데 매우 폐쇄적이고 제한적이었다는 점에서 볼 때 이미 발병했거나 퍼지고 있는데도 은폐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북한의 열악한 보건·의료 환경과 방역체계로 볼 때 코로나19 발병 자체도 문제지만 자칫 김정은 체제에 불똥이 튈 수 있다는 점에서다.

핵과 미사일 도발로 인해 유엔과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를 자초한 상황에서 코로나 사태까지 보태질 경우 비난의 화살이 김정은 국무위원장 쪽으로 향할 수 있다. 북한 당국으로선 이런 부담을 우려해 발병 사실을 덮어버리거나 폐렴 등 다른 질병으로 인한 사망 등으로 둔갑시킬 공산도 크다.

중국 우한에서 코로나가 창궐하기 시작하자 비교적 신속하게 국경 전면차단 조치를 취한 북한은 주변국 확산 추이에 바짝 긴장하는 분위기다. 김형훈 내각 보건성 부상(차관급)은 2월 27일 재일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와의 인터뷰에서 “현재 국경의 입국지점들과 항만·비행장들에서 일체 외국인들이 들어오는 것을 불허했다”고 강조했다.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에 불만을 드러내 온 북한이 스스로 문을 걸어 잠그고 인적교류나 교역을 완전히 중단하는 ‘셀프제재’에 들어갔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김 부상은 “진단 방법과 치료방법이 완전히 확립될 때까지는 이 사업을 계속 지금처럼 진행하려고 한다”고 말해 북한의 국경봉쇄 조치가 상당 기간 이어질 것을 시사했다. 지난 1월 31일부터 외부세계에서 평양으로 들어오는 국제항공과 육로, 해로를 전면 차단한 북한이 초유의 ‘봉쇄 조치’를 푸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을 예고한 것이다.

이런 움직임은 북한 당국이 코로나19 사태에 체제의 명운을 걸다시피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 심각성으로 볼 때 2002년 중국에서 발생해 퍼졌던 사스(SARS,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나 2012년 발병한 메르스(MERS, 중동호흡기증후군)보다 경제와 사회 전반, 그리고 체제에 미칠 충격파가 훨씬 클 수 있다는 점에서다.

감염병이나 방역 문제에 북한이 얼마나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지는 과거 남북 정상회담 과정에서도 확인됐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첫 정상회담이 열린 2018년 4월 27일 판문점에선 북측 경호·의전 요원 못지않게 방역 관계자들의 행보가 부산했다. 김정은이 서명할 방명록과 책걸상을 소독 처리하는 등 움직임이 포착된 것이다. 이들은 분무기로 소독약을 뿌리고 흰 천으로 팔걸이와 등받이 등 곳곳을 닦아냈다. 서명용으로 준비된 펜도 소독했다. 도청장치나 폭발물 등 위협 요소를 찾아내는 작업보다 소독에 더 공을 들이는 모습은 우리 관계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특히 이목을 집중시킨 건 김정은 위원장이 정작 방명록에 글을 남길 때 준비된 펜이 아닌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건넨 필기구를 사용했다는 점이다. 북측이 김정은의 신변 경호에 얼마나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지를 잘 알 수 있는 장면이다.

코로나 확산에 따라 북한에선 최근 관영 매체를 통한 방역과 예방 선전·선동도 전례 없이 강도 높고 빈번하게 이뤄지고 있다. 보건 및 방역 부문의 간부와 전문가가 총동원되다시피 하면서 “지금 코로나비루스 차단을 우리 국가의 안전과 인민의 생명과 관련된 중대한 사업으로 보고 전 국가적으로 힘있게 대책을 다그치고 있다”고 강조한다.

길거리에서도 ‘마스크를 쓰지 않는 건 죄를 짓는 것’이란 캠페인이 등장했고, 식당을 비롯한 공공장소에 모이거나 직장에서 회식하는 것조차 금지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노동신문은 2월 25일 자 보도에서 “일부 공민들 속에서는 각성 없이 식당들에 많은 사람이 모여앉아 식사하는 문제를 별치 않은 것으로 생각하는 편향이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 명의 감염자라도 발생한다면 재앙적인 후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대목에선 절박감마저 느껴진다. 김정은의 지시로 평양피복공장과 사동옷공장 등에선 생산 라인을 완전가동해 하루 수만 개의 마스크를 생산하고 있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코로나19 북한 발병설이 퍼지고 있지만, 아직 구체적인 정황이나 이를 입증할 신빙성 있는 증언이나 자료는 나오지 않고 있다. 때문에 보다 신중하게 사태를 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북한이 비교적 신속하게 국경 전면차단 조처를 했고, 북한 체제의 특성상 북·중 간 교류도 고위 인사나 핵심층을 중심으로 통제 가능한 범위 내에서 제한적으로 이뤄졌을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북·중 접경지역에서 밀무역 등을 통한 접촉과 감염 가능성도 제기되지만 동북 3성 지역과 코로나가 창궐하는 우한 및 주변 지역은 상당한 거리가 떨어져 있다. 북부 지역의 중국 국경지대를 코로나19 유입 루트로 확정하기엔 무리가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중국과 인접해 있으면서도 초기 전면차단에 나서 코로나 청정지역 중 하나로 꼽히는 몽골의 사례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 북한의 경우도 몽골처럼 신속하고 전면적인 차단의 효과를 보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김정은 체제 들어 북한 내부의 재해나 사고에 대한 대응방식이 달라진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매번 그런 건 아니지만 수해나 재해가 발생했을 때 이를 관영 매체로 신속하게 알리고 국제기구 등의 지원을 요청하는 모습은 김일성·김정일 집권 시기와 차이가 난다는 게 정부 당국과 대북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코로나 사태는 가뜩이나 팍팍한 북한 경제와 주민 살림살이에 주름을 더하고 있다. 지난해 2월 말 하노이 정상회담이 성과 없이 끝난 뒤 북미관계는 돌파구를 찾지 못했다. 남북관계도 꼬일 대로 꼬인 상황이라 코로나 관련 남북 협력이나 대북지원은 엄두도 내지 못할 판이다.

북한이 한반도의 코로나 무풍지대로 남아있을 수 있을지, 남북관계와 북미 비핵화 협상은 언제 다시 풀려나갈 수 있을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암울한 국면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한반도에는 ’봄이 왔지만 봄 같지 않은‘ 시간이 이어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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