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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가 답이다③] 지역구도 타파 결국 '투표'에 달렸다
2020. 03. 25 by 김희원 기자 bkh1121@sisaweek.com

현대 민주주의에서 국민 여론을 가장 확실하게 전달하는 방법 중 한가지가 투표다. 투표를 통해 지도자를 바꿀 수 있고, 투표를 통해 새로운 정치 패러다임을 만들 수도 있다. 과거 우리나라의 암울한 정치사는 유권자인 국민들이 투표를 잘 못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한 대가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왔다. 또 미래의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지도자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투표다. 젊고 유능한 인재를 선량으로 뽑아 경험을 쌓게 할 수도 있다. 이처럼 투표는 지금의 대한민국 뿐 아니라 미래의 대한민국을 바꿀 힘이다. 그래서 투표는 중요하다. <편집자 주>

전라북도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들은 25일 전북 전주시 전라북도 선거관리위원회 대회의실에서 제21대 총선을 앞두고 비례대표 투표용지 수작업 모의 개표 시연회를 하고 있다./뉴시스
전라북도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들은 25일 전북 전주시 전라북도 선거관리위원회 대회의실에서 제21대 총선을 앞두고 비례대표 투표용지 수작업 모의 개표 시연회를 하고 있다./뉴시스

시사위크=김희원 기자  21대 국회의원 선출을 위한 4‧15 총선이 20여일 앞으로 다가왔다. 이번 총선에서 유권자의 힘인 투표로 한국 정치의 오랜 과제인 지역구도 타파를 이룰 수 있을까.

지역구도 정치는 오랜 시간 한국 정치를 지배해왔다. 영호남을 기반으로 하는 거대 정당들이 선거에서 유리한 국면을 조성하기 위해 갈등과 대립을 유발하고 증폭시켜왔다. 정당들은 정책지향점이 아닌 지역 기반으로 뭉치면서 이합집산을 반복해왔다.

지역구도는 각 정치 세력들의 정치 생명 연장을 위해 악용돼왔고, 각 정당들의 지역주의 영합 행태는 정책 결정 과정의 부실이라는 폐해를 불러왔다. 거대 정당은 선거에서 쉽게 표를 획득하기 위해 선의의 정책 경쟁보다는 지역구도에 기대왔다.

역대 총선에서 대체적으로 보수세가 강한 영남에서는 미래통합당 계열 정당이, 진보세가 강한 호남에서는 더불어민주당 계열 정당이 싹쓸이 하는 현상이 반복돼왔다.

지역구도에 편승한 투표 행위는 국민들이 각자의 정책적 지향점을 정치에 반영하지 못하게 가로 막게 된다. 또 지역에서 특정 정당의 일당 독재가 지속될 경우 견제와 감시는 상실되고  ‘끼리끼리 나눠먹기’ 행태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한국정치의 최우선 개혁 과제로 항상 지역구도 타파 문제가 꼽혀왔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지역구도 타파를 그의 필생의 과업으로 여겼다. 서울 종로를 버리고 2000년 16대 총선에서 부산 북강서을에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출마해 낙선하면서 ‘바보 노무현’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노 전 대통령은 지난 2007년 12월26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출입기자단과 송년 만찬을 가진 자리에서 지역구도가 극복되지 못한 상황에 대해 “가장 가슴 아프다”라고 개탄하기도 했다.

최근 지역구도는 과거와는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영호남 지역 감정을 기반으로 한 지역구도는 많이 희석되고 대신 ‘보수(영남) 대 진보(호남)’ 진영 대결을 기반으로 한 지역구도 현상이 강화되고 있다.

지역 감정과 진영 대결이 복합적으로 얽히면서 여전히 거대 정당들의 텃밭 정치는 진행 중이다. 지역구도 정치를 완전히 뿌리 뽑기 위해서는 정치인들의 노력으로는 한계가 있으며, 결국 유권자들의 현명한 ‘투표’만이 가장 빠르고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 ‘투표의 힘’ 지역구도 크게 완화

깨트릴 수 없는 거대한 벽으로 여겨졌던 지역구도는 ‘투표의 힘’에 의해 최근 점차 약화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 2016년 20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 계열 정당이 독식해오던 호남에서 ‘녹색 돌풍’이 일어나며 안철수 전 의원이 이끌던 국민의당이 호남 28석 가운데 23석을 싹쓸이했다. 민주당은 전북 익산갑과 완주ㆍ진안ㆍ무주ㆍ장수, 전남 담양ㆍ함평ㆍ영광ㆍ장성 등 3곳에서만 겨우 승리했다. 특히 새누리당(현 미래통합당)에 대한 반감이 강한 호남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이정현(전남 순천시)‧정운천(전북 전주시을) 의원이 당선되는 이변이 일어났다.

또 2012년 19대 총선에서 대구 수성구갑에 출마해 떨어졌고, 2014년 지방선거 대구시장 선거에서도 낙선한 김부겸 의원이 미래통합당 계열의 정당이 깃발만 꽂으면 당선된다던 대구에서 2016년 20대 총선 때 파란을 일으키며 당선됐다. 당시 대구에서는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된 후 민주당으로 복당한 홍의락 의원(대구 북구을)까지 진보계열 인사가 2명이나 당선됐다.

부산·울산·경남(PK)에서는 민주당이 부산 18석 가운데 5석을 확보해 PK에서 거점 확보에 성공했다. 민주당은 이후 2018년 6‧13지방선거에서 자유한국당(현 미래통합당)을 밀어내고 PK 광역단체장 3석을 모두 싹쓸이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고향 경북 구미시장 선거에서도 민주당 소속 장세용 후보가 당선됐다.

그러나 이번 총선에서 지역구도 타파가 어느 정도 실현될 것인지는 미지수다. 통합당은 호남 28개 지역구 가운데 18곳에 공천을 하지 못했다. 영남 지역의 경우 민주당 소속 김부겸, 홍의락 의원의 생존 여부와 PK지역의 민주당 확보 의석 수로 지역구도 완화 여부를 판가름해 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일부 지역에서는 지역구도에 여전히 기대려는 움직임도 보인다. 통합당 지도부로부터 험지 출마를 요구 받았던 홍준표 전 대표와 김태호 전 경남지사는 공천을 받지 못하자 통합당 텃밭인 대구 수성을과 경남 산청·함양·거창·합천에서 무소속 출마를 각각 선언한 상태다. 

호남에서는 과거 일당 독재가 이어지던 지역구도 정치가 새로운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지난 총선에서는 민주당과 국민의당의 싸움이 펼쳐졌고, 이번 총선에서는 민주당과 민생당이 호남 맹주 자리를 놓고 혈투를 벌이고 있다. 일각에서는 민생당 소속 중진 의원들이 호남 지역 기반에 기대 정치 생명을 연장하려고 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제21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지난 23일 오전 부산 영도구 부산해양경찰서 전용부두에 정박 중인 3000t급 경비함정에서 부산시선거관리위원회와 부산해경 직원들이 총선 선상투표를 시연하고 있다./뉴시스
제21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지난 23일 오전 부산 영도구 부산해양경찰서 전용부두에 정박 중인 3000t급 경비함정에서 부산시선거관리위원회와 부산해경 직원들이 총선 선상투표를 시연하고 있다. /뉴시스

◇ 지역구도 기댄 ‘박정희‧박근혜·김대중 마케팅’

대선과 총선, 지방선거 등 굵직한 주요 전국선거에서 그동안 각 정당들은 생산적인 정책 대결보다는 지역구도에 편승한 선거 전략을 펼쳐왔다. 특히 영호남 지역 정서를 겨냥한 ‘박정희‧박근혜, 김대중 마케팅’은 단골 메뉴였다.

지난 대선에서 민주당 문재인 후보와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는 ‘김대중 정신 계승’ 문제를 놓고 신경전을 펼쳤다. 문 후보는 지난 2017년 4월 29일 전남 순천을 찾아 안철수 후보가 '햇볕정책도 공과가 있다. 지금의 북핵 위기에 김대중·노무현 정부도 책임이 있다'고 언급한 것을 거론하며 “보수표를 받으려 햇볕정책을 계승하겠다 똑부러지게 말을 못한다”고 비판했다. 이어 “한 손으론 김대중 정신 말하면서 호남표를 받고자 하고, 다른 손으론 색깔론으로 보수표를 받으려는 후보”라고 주장했다.

TK 지역에서도 매 선거 때마다 ‘박정희·박근혜 향수’를 이용한 마케팅이 펼쳐진다. 이번 총선에서도 다수의 예비후보들이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인연을 내세우며 민심을 공략했다.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을 지낸 천영식 통합당 대구 동구갑 예비후보는 ‘박 전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관’임을 내세웠으며, 박 전 대통령의 변호인단으로 활동했던 도태우 통합당 대구 동구을 예비후보는 ‘박근혜 변호인’을 부각시켰다.

최근 지역 감정을 기반으로 했던 지역구도가 ‘보수 대 진보’ 진영 대결을 기반으로 한 성격이 더욱 강화되면서 보수진영이 단골 메뉴로 꺼내들었던 ‘색깔론’도 여전히 주효하게 활용되고 있다.

남북 평화 분위기가 급물살을 타던 지난 2018년 6·13 지방선거에서 홍준표 대표 체제의 자유한국당은 지방선거 구호를 “나라를 통째로 넘기시겠습니까?”라고 정하고 대대적인 색깔론을 펼쳤지만 선거에서 참패했다.

◇ 전문가, 유권자들의 투표가 답

전문가들은 최근 굵직한 선거에서 투표를 통한 지역구도 타파가 입증된 만큼 투표만이 지역구도 정치를 무너뜨릴 수 있는 해법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지역구도가 크게 완화된 현상을 보이고 있지만 진영 대결 양상이 더욱 강화된 점과 아직도 정치권이 지역구도에 기대는 행태들을 보이고 있어 지역구도의 완전한 해소까지는 갈 길이 멀다는 점도 지적했다.

차재원 부산가톨릭대 특임교수는 24일 <시사위크> 통화에서 “각 당의 강세 지역에서 서로 경쟁당의 표가 많이 나오면 지역구도는 깨지기 마련이다”며 “90년대와 2000년대까지만 해도 영남과 호남에서 전통 지지 정당이 아닌 다른 당이 들어가기는 거의 힘들었지만 최근 2016년 총선과 2018년 지방선거 유권자들의 투표가 지역구도에 금을 내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차 교수는 “그러나 아직도 지역구도는 뿌리가 깊기 때문에 낙관하기는 빠르다. 통합당이 지금도 지역구도에 많이 기대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이번 총선은 민주당이 얼마만큼 영남 선거에서 지역구도를 뿌리 뽑을 수 있을 것이냐의 싸움으로 보이는데 쉽지는 않을 것 같다”고 전망했다.

박창환 장안대 교수는 “지난 2018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영남지역 자치단체장을 대거 당선시키는 등 투표의 힘을 통해 지역 감정이 사실상 무너졌다고 평가할 수 있을 만한 결과가 나왔었다”며 “지난 20대 총선에서 호남에서 국민의당이 선전하면서 지역구도 정치가 바뀔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지적했다.

이어 “유권자들이 많이 변했다. 투표를 통해 지역구도를 해소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며 “전통적인 지역 감정에 기반했던 지역구도는 크게 무너졌고, 이제는 보수냐 진보냐에 따른 투표 성향이 지역에서 남아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