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재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박영재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성찰배경: 전 세계적으로 분야에 따라 꼭 직장으로 출근하지 않고도 집에 머물며 직장 동료들과 비대면(非對面)으로 맡은 일을 무난하게 할 수 있는 직업들이 적지 않기에 ‘재택(在宅)’ 근무라는 용어도 존재해 왔습니다. 반면에 한국은 직장인의 경우 대부분 주 5일 동안 직장에 출근해 9시에서 6시까지 하루 8시간 일하는 것이 주류였습니다. 그러나 최근 중국 우한에서 발생했다고 사료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19(이하 줄여서 ‘코로나-19’) 감염증이 급격히 퍼지며 지구촌 곳곳으로 감염 공포가 확산되면서 우리도 사회적 거리두기의 일환으로 재택근무의 활성화를 앞당기게 된 것 같습니다.

한편 대학가의 경우 지난 2월 코로나-19의 여파로 대체로 개강을 2주간 연기했으며, 이어 개강을 대면이 아닌 비대면 온라인 강의로 맞이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주로 재택근무를 하고 있으면서도 적극적인 필자의 최근 일상을 중심으로 ‘비대면’에 대한 단상(斷想)을 함께 살피고자 합니다.

◇ 좌충우돌 동영상 제작 익히기

필자는 현재 정년을 1년 앞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 37년간 대면 강의만 해오다가 최근 난생처음 2주간 좌충우돌하며 온라인 동영상 강의를 진행해 왔습니다. 먼저 개강 직전 학과회의에서 온라인 강의 동영상 준비 요령, 특히 ppt 강의 자료에 목소리를 담아 비디오 동영상을 제작하는 방법에 관해 후배 교수의 시연(試演)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필자는 다음날 비대면 첫 번째 동영상 자료 제작에 들어갔는데, 먼저 ppt 강의자료를 pdf 파일로 변환시킨 후 사이버강의실에 게시했습니다. 그런 다음 가장 쉬운 방식인 스마트폰을 거치대에 고정시키고 pdf 파일을 읽어 내려가며 설명을 하다가 자세한 부연 설명이 필요한 경우 화이트보드 위에서 생략된 과정을 구체적으로 유도하며 녹화를 마쳤습니다. 그런데 막상 이 동영상 자료를 사이버강의실에 게시하려 하니 용량을 초과해 ‘게시불가’라는 메시지가 떴습니다. 잠시 난감해 하다가 매뉴얼을 뒤져서 동영상 자료를 둘로 나누어 올리며 마침내 게시에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1시간 15분 강의에 해당하는 1회분 자료를 쪼개어 만드는 것이 번거로워, 두 번째 동영상 제작은 차선책으로 ppt를 활용한 방식으로 마음을 정했습니다. 그래서 시연을 떠올리며 ppt 강의자료를 강의실에서 강의하듯이 읽어 내려가며 열심히 목소리를 입힌 30분 분량을 녹화했으나, 이번에는 조작 미숙으로 최종 비디오 자료 만들기에 실패했습니다. 그 직후 다시 심기일전해 30초짜리 샘플 테스트를 통해 전 과정을 철저히 재확인한 다음, ppt 강의자료 가운데 설명하려는 해당 위치로 마우스를 움직여 가며 마치 강의실에서 강의하듯이 열심히 30분 분량의 동영상 자료를 만들어 사이버강의실에 게시하였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중간에 건너 뛴 부분이 있다는 두 수강생의 제보에 다시 살펴보니 중간에 3쪽 정도 설명이 빠져 있었으며 또한 녹화할 때 화면에서는 보이던 마우스의 움직임이 전혀 담겨 있지 않았습니다. 우선 급한대로 빠진 부분에 대한 보충 동영상을 올린 다음, 매뉴얼을 좀 더 세밀히 살펴보니 레이저포인터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마침내 2주째에는 이런 시행착오 끝에 수강생들이 동영상 자료를 비교적 이해하기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다고 사료됩니다.

◇ 동영상 제작의 멋진 활용

한편 필자가 속한 선도회 참선모임도 정부시책에 따라 지난 3월부터 모든 지부모임을 중단해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현재도 지속되고 있는 우려스러운 감염 상황 때문에 공식적으로 4월 참선모임도 모두 중단하기로 지난주 공지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비대면 강의를 위한 온라인동영상을 만들면서 문득 그냥 손을 놓고만 있을 것이 아니라 ‘비대면 재택 참선모임’을 위한 법문자료를 동영상으로 만들어 배포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간화선 수행의 경우 대면(對面) ‘입실점검’은 필수입니다. 마침 3월 모임 중단 이후 최근 몇 분이 간절히 입실점검을 원하셨는데, 지난 해 정년퇴직 직후 선도회에 입문하신 경상대 명예교수님의 카톡 문자를 하나 소개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법사님! 강녕하신지요? 저는 나름대로 열심히 참구하고 있습니다. 조금 전 4월 모임도 못한다는 소식 접했습니다. 2달 동안 입실 점검을 못 받고 있어서 혹시 달리 점검 받을 방안이 없을지 여쭈어 봅니다. 제가 서두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만, 혹시 스스로 수행 리듬을 놓치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생겨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송구합니다. 정안 합장”

그래서 이런 요청에 부응해 3월 마지막 월요일 오후에 요청하신 네 분과 함께, 마스크를 쓴 채 입실점검을 포함한 특별 대면 참선모임을 가졌습니다. 앞으로 몇 차례 5인 이하의 이런 특별 모임을 가지면서 얻은 결과들을 수정보완 해가면서 보다 안전한 소모임을 적극 활성화할 계획입니다.

◇ ‘인생지도’ 과제의 효과

사실 비대면 강의의 경우 온라인 강의자료 제공뿐만이 아니라 적절한 과제 부여도 매우 중요합니다. 이번 학기 필자는 주로 이공계 1,2학년을 대상으로 한 일반물리와 물리학과 3,4학년을 대상으로 한 ‘기초입자이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필자가 부여한 첫 과제는 다음과 같은 ‘인생지도’였습니다. “2020년 1학기 수강생 여러분께, 이번 학기 함께 하게 된 이 희유한 인연因緣을 끝까지 잘 이어가시기를 간절히 염원念願드립니다. 이번 비대면 강의기간 동안 자신이 선택한 전공(선택 이유 포함)을 바탕으로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의 꿈을 새롭게 꾸어보고 이의 실현을 위해 현재 구체적으로 어떤 실천 계획을 세우고 있는지가 담긴 ‘인생지도’를 글로 서술한 다음 사이버캠퍼스로 제출하기 바랍니다. 담당교수로부터”

물론 피상적으로 생각하면 이런 과제가 교과내용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 하고 의아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수강 학생들이 제출한 다음의 발췌본들을 살펴보면 그 이유가 자명하실 겁니다.

2020학번: “마지막으로, 과거, 현재, 미래의 저의 모습을 생각하고 정리하면서 조금이나마 내가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을 진지하게 생각해보고 앞으로의 모습을 생각해 볼 수 있어 의미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때까지 내신, 수능에 신경 쓰느라 많이 생각하지 못했던 저의 인생지도를 이번 과제를 하면서 할 수 있어서 정말 의미 있던 시간을 보낸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과제가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 가끔씩은 내가 과거에 생각했던 내 인생, 현재 나의 인생을 개척하기 위한 나의 태도, 그리고 내가 꿈꾸는 나의 모습에 대해서 생각해 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2019학번: “인생 계획을 머릿속으로 가지고는 있었으나 글로 적어본 적은 없었는데 글로 적으니 좀 더 정리가 되고 스스로 해야 할 일을 다시 상기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COVID-19) 때문에 사이버 강의를 시작하게 되었을 때 처음에는 교수님들마다 방식이 달라 혼란스러웠으나 1~2주 지나니 적응이 되는 것 같습니다. 요즘에는 COVID-19 관련 기사를 찾아보면서 우리나라의 보건복지에 힘써주시는 분들을 보게 되는데 저도 한국은 물론 세계의 보건에 기여하는 삶을 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2014학번: “분에 맞지 않게 사업 컨설팅도 해 보고, 스스로가 기획한 강연도 진행했다. 스타트업을 준비하고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부족하나마 길라잡이 역할을 해 줄 수 있었고, 나 덕분에 창업에 대한 꿈을 꾸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무거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내가 누군가의 인생의 갈림길에서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현재 다시 새로운 출발선에서 어떻게 팀을 꾸리고 창업을 해야 할지 고민하면서 이 과제를 받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전공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을 하고 있는 셈이고, 혹자는 상당히 돌아가는 것이 아니냐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생의 자취에 있어 의미가 없는 부분은 존재하지 않는다. 미래의 그림을 맞추기 위한 퍼즐 조각이란 건 지나치게 운명론적이고, 스스로의 성향을 반영하자면 탐험에 필요한 도구가 늘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떠한 청사진을 그리고 가기보다는 주어진 하루를 충실히 살아가면서 스스로를 날카롭게 벼려가는 것, 이것이 미래를 위한 실천 계획이다.”

사실 저학년들의 경우 오직 좋은 대학 들어가기에만 급급하다가, 또한 고학년들의 경우 취업을 위한 스펙 쌓기에 바빠 자신의 내면을 돌아볼 기회가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니 100세 시대를 살아내야만 하는 젊은이들의 경우 비대면 강의기간 동안 틈을 내어 전공 진로를 포함해 자신을 진지하게 돌아보는 일은 그 무엇보다 가치 있는 과제일 겁니다.

◇ 생업과 수행은 둘이 아니다.

한편 비대면 강의 실시로 거의 자택에 머물고 있는 필자의 최근 근황을 소개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지난 주 목요일 저녁때 금요일 오전 9시와 오후 3시에 예정된 온라인강의를 위해 먼저 일반물리 동영상을 만든 다음, 1시간 좌선(坐禪) 후 오후 10시 30분쯤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다음날은 새벽 3시 30분에 기상하자마자 1시간 좌선 후 입자물리 동영상을 만든 다음 아침식사를 마쳤습니다. 이어 오전 11시쯤 사이버강의실에 동영상 자료들을 게시하며 금요일 담당 강의들의 책무를 무사히 마쳤습니다. 그런데 이런 재택 유연근무 덕택으로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이날 오후 위례에 사는 지인 부부의 초대로 그곳을 방문해, 근처 식당에서 점심식사 후 마스크를 벗고 홀가분하게 덕풍천 둘레길을 4시간 정도 산책하면서 즐겁게 담소를 나누며 봄기운을 만끽하다 귀가하였습니다. 사실 이 날을 돌이켜 보니 ‘생수불이(生修不二)’, 즉 생업(生業)과 수행(修行)이 둘이 아닌 그런 멋진 하루였다고 여겨집니다.

◇ 죽음 직시하기

끝으로 서두에서도 언급했듯이 ‘코로나-19’로 인해 지구촌 곳곳으로 감염과 죽음의 공포가 확산되고 있는 이때 시기적절하게 죽음에 관해 진지하게 성찰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필자의 경우 봄꽃이 피었다가 지는 요즈음 매년 떠오르는 ‘비가 오지 않아도 꽃은 지고, 병에 걸리지 않아도 사람은 반드시 죽네. [불우화유락不雨花猶落 무병인필사無病人必死]’라는 선어(禪語)가 있습니다. 이 선어는 봄 학기마다 강의를 맡은 과목 시간에 한 번은 꼭 칠판에 쓰면서 학생들과 함께 그 뜻을 새기곤 합니다.

사실 오늘날 젊은이들의 수명이 평균 100세 시대를 맞이했다고는 하나, 우주의 역사인 138억년 세월에 비하면 찰나보다도 짧은 시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능한 집에 머물며 활동을 최소화하면서 단지 기계적인 수명만을 연장하기보다는 그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루빨리 죽음의 공포를 떨쳐버리고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세상 떠나는 날까지 우리 모두 각자 있는 그 자리에서 늘 틈날 때마다 자기성찰을 이어가는 동시에, 함께 더불어 가치 있는 일에 온몸을 던져 몰입하는 태도를 익히는 것이 가장 시급한 일이라 판단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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