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6-05 21:00
[이영종 ‘평양에선 지금’] 아니면 말고 식의 대북정책 유감
[이영종 ‘평양에선 지금’] 아니면 말고 식의 대북정책 유감
  • 이영종 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장
  • 승인 2020.03.31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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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종 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장.
이영종 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장.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가 말 그대로 팬데믹(전 세계적 대유행)에 빠졌다. 중국 우한에서 발병해 걷잡을 수 없이 번진 코로나19는 이웃 국가로 번져 기세를 떨치더니, 유럽과 북미 지역 등 지구촌을 혼란과 공포에 빠트렸다. 개별 국가의 경제나 국민 생활은 물론 외교와 국제 교류에까지 파장이 심각한 상황이다.

남북관계와 한반도 정세에도 코로나19의 충격파는 크게 미쳤다. 7월 도쿄 올림픽 남북 공동참가 추진을 비롯한 문재인 정부의 2020년 대북접근 청사진은 기본 틀이 헝클어졌다. 무엇보다 코로나19 사태의 수습이 발등의 불로 떨어졌고, 북한도 외부세계와의 통로를 모두 차단한 채 감염병 대처에 올인하고 있다. 북·미 관계도 모멘텀을 상실한 채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이의 친서 외교로 명맥을 겨우 이어가는 형국이다.

위기 상황에서 요구되는 건 냉철한 상황파악과 현실적인 대응 전략의 마련이다. 특히 국가 이익과 국민의 명운이 걸린 대북문제와 외교·안보 이슈에서는 그 중요성이 커진다. 혼돈과 위기 속에서 국가 최고지도자와 공직자가 국가와 국민을 위해 얼마나 혼신의 힘을 기울였는지는 사태 수습 후에 명명백백하게 드러난다. 그 소명의식과 역량의 한계도 함께 노출되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최근 대북이슈를 둘러싸고 문재인 정부와 고위 당국자, 정치권 인사들의 쏟아내는 생각과 말은 유감스럽지 않을 수 없다. 심모원려(深謀遠慮)의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남북관계의 현실을 조금이라도 고민했으면 하는 안타까움까지 느껴지는 상황이 이어진다는 점에서다. 가히 ‘아무 말 막 하기’ 잔치를 방불케 하는 국면까지 치달으면서 혼란스러운 건 코로나19로 지칠 대로 지친 국민이다.

일부 정치인과 상공인 사이에서 불거진 개성공단 마스크 생산 주장이 대표적이다.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전 원내대표와 정의당 윤소하 원내대표가 지난 3월 12일 코로나19로 인한 마스크 부족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이라면서 가동이 중단된 개성공단 생산라인을 이용해 마스크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이들은 국회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당장 북한과의 채널을 열어 개성공단을 가동하자”고 주장했다. 비슷한 시기 민주당 박광온·설훈 최고위원도 개성공단 재가동을 통한 마스크 생산 확대를 제안했다.

이들의 주장은 언뜻 보면 그럴싸하다. 개성공단에 마스크 제조업체를 포함해 70여개에 이르는 봉제공장이 있으니 마스크와 방호복을 생산하면 부족사태가 해결될 것이란 얘기다. 개성공단에 ‘3만여 명의 숙련된 노동자’가 있으니 문제가 아니라는 식의 주장도 내놓았다. 미국 등 코로나19 확산 추세에 있는 나라를 도와줄 수도 있지 않으냐는 말도 덧붙였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말해 이들의 주장은 현실과 동떨어진 것으로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고 허황하기까지 하다. 무엇보다 개성공단에는 제대로 된 마스크 생산업체들이 없다는 점에서 팩트부터 틀렸다. 봉제공장이 마스크 생산으로 손쉽게 전환될 수 있다면 국내 업체들이 수급에 이리 애를 먹고 있을 리 없다.

공단 관계자는 마스크 생산 경험이 있는 한 입주 업체의 경우 월 100만장 생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하루 생산량으로 환산하면 겨우 3∼4만장에 불과하고 이는 공적 마스크 하루 생산량 1,000만장의 0.003∼0.004% 수준에 그친다. ‘3만 명의 숙련된 노동자’는 아마도 개성공단 중단 당시 근무하던 북한 근로자 5만3,000명 중 일부를 동원하자는 얘기로 보인다. 하지만 북한과 사전 협의나 논의 없이 공단가동이 뚝딱 이뤄지기는 어렵다. 

특히 코로나19의 확산 차단을 위해 체제의 명운을 건 듯한 모습을 보이는 북한이 남측 관리자가 투입되고 설비·원자재가 반입되는 공단 현장에 대규모 북측 인원을 보낼 가능성은 희박하다. 국제사회가 김정은 체제의 핵과 미사일 도발로 초래된 대북제재의 고삐를 조금도 늦출 생각이 없는 현실을 고려하면 개성공단 재가동의 벽은 더욱 높아 보인다.   

문제는 이런 정치권과 일부 생산 직능단체 및 업자들의 주장에 편승한 무책임한 언행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김진향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 이사장은 3월 5일 한 언론 기고에서 개성공단 내 한 업체가 월 100만장의 위생 마스크를 생산할 수 있고, 50여개 사는 면 마스크 제조, 64개 업체는 방호복 제조가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이 재단은 개성공단 운영과 관리를 책임진 곳으로 사실상 정부 관할 하에 있다. 무분별한 정치권과 일부 집단의 주장에 대해 책임 있고 균형감 있는 판단을 갖고 자제를 당부해야 할 기관이나 인사가 부화뇌동하는 모습에 비판 여론이 제기된 것도 무리가 아니다. 

코로나19와 관련해 최근 일부에서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대북 보건·의료 지원이나 남북협력 문제도 마찬가지다. 청와대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낸 코로나19관련 위로 친서를 공개하면서 마치 방역 관련 남북 협력이 추진될 것처럼 분위기를 띄웠다. 정부·여당 일각에서 대북지원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통일부 등 관계부처도 다각적인 방안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민간단체와 기관에서도 북한에 진단키트와 마스크·방호복 등의 제공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제기되고 있다. 

그렇지만 1월 말부터 일찌감치 북·중 접경지역을 전면 차단하고 코로나19 방역에 나선 북한이 ‘확진자 0명’을 주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의 관련 지원을 수용하기는 쉽지 않다. 보건·의료 협력이나 지원의 특성상 남북 당국 사이의 긴밀한 접촉이 이뤄져야 하고, 특히 일각에서 주장하는 의료진의 대북파견 등은 폐쇄적인 북한체제의 특성상 수용이 절대 불가능한 사안이란 점에서 불가능성에 가깝다.

1990년대 말 북한은 대홍수로 인한 집단 아사 사태를 겪게 되자 우리에게 대북지원의 손길을 요청했다. 옥수수에 이어 쌀과 비료가 제공됐고 북한의 체제위기를 가까스로 넘겼다. 이후에도 북한의 식량난은 크게 호전되지는 않고 있다. 북한 최고지도자와 노동당 간부들에겐 여전히 민생보다는 체제유지가 우선순위에 놓여있다. 

오랜 기간 비공개리에 대북지원에 공을 들여 북한 주민들의 배고픔 해결에 기여했다고 평가받는 인도주의 단체가 적지 않다. 이들의 활동을 이끌어온 인사들은 “자존심 강한 우리 민족의 특성이 북한 당국과 주민들에게 더 강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대북지원은 ‘주는 기술’이 필요한 사업”이라고 입을 모은다. 실현 가능성도 꼼꼼히 살피지 않고 마스크 부족사태라는 시류에 편승해 얄팍한 주장을 내놓는 일부 정치권과 인사들이 새겨들어야 할 조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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