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6-05 18:04
[윤여진의 ‘직설’] 성범죄 사건을 보도하는 언론의 문제
[윤여진의 ‘직설’] 성범죄 사건을 보도하는 언론의 문제
  • 윤여진 언론인권센터 상임이사
  • 승인 2020.03.31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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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성범죄’를 보는 근본적 시선이 필요하다
윤여진 언론인권센터 상임이사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위기, 준연동형비례제에 따른 비례정당 이슈로 시끄러운 21대 국회의원 선거보다 더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공분을 사고 있는 것이 ‘n번방’ 사건이다. 이 사건은 평범한(?) 청년 조주빈이 미성년자를 포함한 불특정 다수의 여성을 노예로 지칭하며, 개인정보 유포를 미끼로 성 착취영상물을 제작·유포한 범죄행위가 세상에 드러난 것이다. 그 범행수법이 가혹하고 악질적이라는 측면에서 문제가 됐지만 무엇보다 이 사이트에 가입된 사람이 26만명이라는 데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언론은 26세 청년이 어떻게 이런 음란사이트를 운영하게 되었는지, 그의 학력과 행적 그리고 봉사활동 이력까지 거론하며 그의 개인적인 성향과 어떤 과정을 거치며 ‘악마’가 되었는지 집중해서 보도하고 있다. 그리고 조주빈의 협박에 사기를 당한 거물급 인사들에 대한 이야기로 옮겨가고 있다.

2014년 고종석 사건(나주어린이 성폭행 사건)을 보도했던 언론사를 상대로 공익소송을 진행하며 성범죄보도가이드라인을 만들었던 우리단체의 입장에서 보면 피해자에 대한 선정적 보도가 현저히 적어진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고 하겠지만 여전히 범인 조주빈에 대한 개인적인 내용을 중심으로 선정적인 보도가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언론이 한 가지 놓치고 있는 것이 있다면 조주빈이 경찰의 포토라인에 서 ‘피해자에게 미안한 마음이 드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미동도 하지 않았던 이유다. 그는 전혀 반성의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 이유는 그의 사이트를 이용한 26만명의 사람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자신을 수사하는 형사, 자신에게 질문을 하는 기자들도 자신의 사이트를 이용한 사람들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고, 자신을 범죄자라고 하지만 재수없게 걸렸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전혀 죄의식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설사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더라고 솜방망이 사법시스템에서 두려울 것이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제2의 n번방 사건이 드러나면서 더 많이 사람들이 음란사이트를 이용해 왔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사이트를 운영한 사람들은 19세, 20세의 청년들로 이들은 아동·청소년 성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음란물 제작·배포 등)과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 등으로 구속이 되었으나 그동안의 양형기준들을 미루어 보면 1년6개월 정도의 실형을 받을 것이다.

2019년, 여성단체들의 꾸준한 문제제기와 경찰의 수사로 성매매 후기·알선 사이트들의 실체가 일부 드러났다. 경찰이 밝힌 바에 따르면 ‘밤의 전쟁’이라는 사이트는 70만명의 회원 수에 1일 접속 인원만 10만명, 모태가 되는 사이트까지 합하면 회원 수 110만명가량에 이른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은 성매매업소와 연결되어 불법수익을 얻고 있었다. 이미 우리사회는 그릇된 성문화가 일상화돼 있었고, 여기서 누구도 자유롭지 않은 상태에 놓여져 있었다.

n번방 사건을 계기로 국민들이 강하게 분노하며 강력한 처벌을 요청하는 이유는 성범죄에 너그러운 사회분위기로 더 이상 그냥 넘어갈 수 없다는 의지의 표현일 것이다. 31일 기준 ‘텔레그램 N번방 용의자 신상공개’를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은 268만명이 넘어가고 있다. 이에 대한 답변으로 경찰청장은 운영자 ‘조주빈’ 뿐만 아니라 ‘박사방’의 조력자, 영상제작자, 영상 소지·유포자 등 가담자 전원에 대해서도 철저하게 수사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여기에 멈추는 것이 아니라 언론은 디지털성범죄자에 대한 양형의 문제, 음란물 제작·유포 뿐 아니라 소지·시청하는 사람들에 대한 강력한 처벌도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해야 한다.

이번 n번방 보도는 ‘악마’와 ‘평범한 남성’ 간의 거리를 애써 벌리려 주범 조주빈의 생애 과정과 행적을 샅샅이 뒤지며 심리적 특이함에 범행의 이유가 있음을 밝히려 했지만 사이트 이용자인 26만명, 더 많은 남성들이 공범이라는 사실을 제대로 밝히지 않는다면 더 가학적인 형태로 디지털성범죄는 자가발전 하게 될 것이다. 힘없고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어린 학생과 여성들이 성범죄 피해자가 되어 그들의 인생을 송두리째 빼앗기는 현실이 이어지게 될 것이다. 

이제 성범죄 보도는 문제의 본질을 흐리는 개인사를 중심으로 하는 선정적인 보도에서 벗어나 분노와 혐오 속에 가려질 수 있는 구조적인 문제, 특히 여성의 성을 대상화 하고 상업적 도구로 이용하는 우리안에 내재되어 있는 가식과 위선의 문화를 들추어내고 국민의 관심이 계속 이어질 수 있는 끈질긴 취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제도와 사법시스템을 정비함으로써 언론이 ‘디지털 성범죄’를 공동체의 안전을 위한 관점으로 다뤄지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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