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갈민 기자
대한항공과 제주항공, 티웨이항공 등 국내외 항공사들 항공기가 인천국제공항 계류장에 주기된 채 비행할 날만을 기다리고 있다. / 제갈민 기자

시사위크=제갈민 기자  국내 항공업계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존폐 기로에 섰다. 항공사들은 비상경영체제를 가동하면서 자구책을 시행하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정부가 지원을 약속하기는 했으나 현재까지 자금 지원 규모는 단 1,000억원 수준에 머물고 있으며, 대형항공사(FSC)는 지원 대상에서 아예 배제됐다.

정부가 ‘국가기간산업’ 지원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어 조만간 업계 근간이 송두리째 무너질 것이라는 우려마저 나온다.

◇ 업계, 무급휴직·셧다운·구조조정… 대한항공마저

국내 항공업계는 전례가 없는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해외로 나가는 하늘길이 대부분 차단되면서 여객 수요가 급감, 매출에 직격타를 맞았다. 이에 업계는 너 나 할 것 없이 직원 무급 휴직·항공편 대거 감편·임원급 급여 반납 등 비상경영체제를 가동 중이다. 이는 항공사뿐만 아니라 공항공사와 하도급업체들도 마찬가지인 상황이다.

코로나19 사태에 가장 먼저 날개를 접은 항공사는 이스타항공이다. 이스타항공은 지난해부터 실적악화로 인해 매각설이 지속적으로 들려오다 지난해 12월 결국 제주항공에 지분을 매각하는 절차를 밟기 시작했다.

이후 올해 초 코로나19가 국내 산업계를 강타하면서 이스타항공은 지난 2월 직원들의 급여를 40%만 지급했으며, 급기야 3월에는 전 직원 급여를 미지급하기에 이르렀다. 이어 항공기를 띄울 때마다 적자가 쌓여만 가는 상황에 전 항공기 비행을 멈추는 ‘셧다운’을 발표했다. 이스타항공은 셧다운으로 수익을 낼 구멍조차 보이지 않게 되자 결국 지난 6일, 직원 350여명을 구조조정 하기로 결정했다.

항공업계 종사자들이 이스타항공 사태를 보면서 불안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대한항공마저 지난 7일 전 직원 대상 6개월 휴업을 진행한다고 초고강도 자구책을 밝혔다.

대한항공의 이번 조치는 이스타항공이 구조조정을 발표하고 하루 만에 내려진 조치다. 이에 일각에서는 항공업계 전체가 본격적인 인력 구조조정에 돌입했다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항공업계에 따르면 대한항공은 지난 7일 오후, 코로나19로 인한 경영환경 악화에 대응하기 위한 자구 노력의 일환으로 전 직원을 대상으로 한 휴업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대한항공 직원 휴업은 오는 4월 16일부터 10월 15일까지 6개월간으로 업계 최장기간이다. 대상은 국내지역에서 근무하는 전 직원이며, 부서별로 필수 인력을 제외한 여유 인력이 모두 휴업을 실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직원 휴업의 규모는 전체 인원의 70%를 넘는 수준이다.

대한항공은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경영환경 악화에 대처하기 위해 전사적 대응체제를 구축하는 한편, 4월부터 부사장급 이상은 월 급여의 50%, 전무급은 40%, 상무급은 30%를 경영상태가 정상화될 때까지 반납키로 했다.

또한 기존에 발표한 송현동 부지 등 유휴자산 매각과 더불어 이사회와 협의해 추가적인 자본 확충 등 회사의 체질을 한층 더 강화하기 위해 노력할 계획이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는 국내 항공업계 맏형인 대한항공마저 위태롭게 하고 있다.

항공업계가 이렇게 초고강도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는 배경에는 정부의 더딘 지원이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국내 항공사들이 2분기 줄줄이 적자를 면치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뉴시스
정부가 국내 항공사에 지원을 약속했으나 지원 규모가 해외 국가들에 비해 낮은 수준이며 지원 속도 또한 더뎌 항공업계에서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뉴시스

◇ 정부, 3,000억원 대출 약속이 고작… 해외 국가, 항공업계 무한대 지원과 상반

정부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항공업계가 위기에 처하자 지난 2월 항공사 최고경영책임자(CEO) 간담회를 개최 후 경제장관회의를 거쳐 저비용항공사(LCC)에 최대 3,000억원의 대출 및 항공사들의 공항시설사용료 납부 유예·감면 등 조치를 약속했다.

그러나 정부가 약속한 지원금 3,000억원은 LCC에 한정됐으며, 공항시설사용료도 면제가 아닌 납부 유예 및 일부 감면이라 실효성이 있냐는 지적이 잇따랐다.

LCC 업계에서는 정부의 지원 규모와 방식을 두고 “실효성이 없다. 현실적인 대안을 마련해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정부의 자금 지원 대상에서 대형항공사(FSC)는 배제돼 현재까지 논란이 일고 있다. 정부가 항공업계에 소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는 것으로 비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LCC 업계 사장단 일동은 급기야 지난 2월 28일 “항공산업의 근간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 어떠한 자구책도 소용없고 퇴로도 보이지 않는다”며 정부차원의 즉각적이고 실질적인 지원을 호소했다.

하지만 정부는 아직 이렇다 할 입장을 명확히 밝히지 않고 있어 항공업계는 답답하기만 하다. 그나마 정부가 최근 제주항공·진에어·티웨이항공·에어부산·에어서울 등 LCC 5곳을 대상으로 1,260억원의 금융 지원에 나섰지만, 절체절명의 위기를 극복하기에는 빈약하다는 지적이 많다.

지적이 끊이지 않자 정부는 현재 항공업계에 1∼2조원 수준의 자금을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코로나19 사태로 항공업계가 지난 2월 자금 지원을 호소한지 약 두 달이 지났음에도 아직까지 검토만 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자금 지원을 확대 검토하고 있긴 하지만 아직 해외 여러 나라의 항공업계 지원 규모와 비교하면 상반된다.

독일은 자국 항공사인 루프트한자와 유로윙스 등에 무한대로 금융지원을 약속했으며, 프랑스는 에어프랑스-KLM 등 자국 항공업계에 450억 유로(약 60조원)을 지원한다. 아시아 국가들 중에는 싱가포르가 항공산업에 133억 달러(약 16조원)를, 대만이 2조원 규모의 긴급 금융 지원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도 항공산업에 500억 달러(약 65조원)를 지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 각국에서 자국 항공사에 지원을 아끼지 않는 이유는 항공산업은 ‘국가기간산업’이면서, 무너지면 재건이 힘들기 때문이다.

한 항공업계 관계자는 “다른 해외 국가들은 자국 항공업계에 지원을 아끼지 않는 반면 현재 우리나라 정부는 이런저런 이유를 들면서 자금 지원을 계속 미루는 모양새다”며 “정부의 안일한 대처로 국내 항공업계가 무너질 경우 향후 코로나 사태가 종식된 이후에는 외국항공사들이 한국의 항공시장을 장악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코로나 사태가 마무리될 때까지 국내 항공업계가 버티지 못하면 이후에는 국내 항공시장을 외항사에 뺏기는 것뿐만 아니라 항공권 가격이 급등해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정부는 항공업계의 요구를 전부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FSC 경우 당장 기업이 부실화될 수준의 유동성 위기에 내몰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대한항공은 지난달 30일 6,000억원 규모의 유동화증권(ABS)을 발행했다. 아시아나항공도 지난해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영구채 인수와 한도 대출 등으로 1조6,000억원의 자금을 지원했다.

정부는 항공사들이 이런 방식의 자금 조달을 우선 진행하고 자구 노력도 전제돼야 한다는 방침이다.

앞서 지난 6일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언론과 민간 자문위원들에게 보낸 공개서한을 통해 “항공산업은 금융지원과 함께 자본확충, 경영개선 등 종합적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며 “관계부처, 정책금융기관 등과 함께 상황을 모니터링하면서 다각적·종합적 대안을 심도 있게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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